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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나더러 밥을 먹으라고는 하지 않을까?

  • “아빠, 외투 들어드릴게요.”
  • 모여정은 살뜰하게 모경서의 손에서 외투를 받은 뒤, 아빠의 질문에 대답했다.
  • “엄마가 우리랑 얘기하시다 음식하시는 거 깜박하셨어요.”
  • 모경서는 좀 놀란 눈치였다. 친딸인 모여정은 되찾은 지 일 년이 지나도록 친아빠인 그와 데면데면했던 것이다. 집에서 마주쳐도 어색하게 ‘아빠’라고 부르는 게 다였다.
  • 그런데 오늘은 달콤하게 웃으며 그를 살갑게 맞이하는 거로도 부족해 외투까지 들어주다니.
  • 모여정의 팔목을 감고 있는 붕대를 보자 모경서는 어두운 얼굴로 모여정을 잡고 그녀의 다친 팔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 “여정아, 너 팔목이 왜 이래?”
  • 모여정이 대답하기 전에 모여희가 먼저 앞질러 대답했다.
  • “아빠, 여정이가 전씨 가문으로 가서 결혼하기 싫다며 자살 소동을 벌였지 뭐예요.”
  • 그 말을 들은 모경서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모여정의 팔을 들고 있던 손을 내려놓으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 “모여정, 결혼이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전강현에게 찾아까지 가서 자살 소동을 벌여? 너 정말 어쩌려고 그래? 사과는 했어? 용서하겠다고 하던? 사과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전씨 가문으로 가서 용서를 구해. 앞으로 절대 이럴 일 없다고 말이야.”
  • 모경서는 친딸이 전강현에게 크게 밉보였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모안그룹에 치명적인 피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그래서 전강현에게 사과해서 용서를 구해야만 모안그룹과 모씨 가문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아빠, 여정이가 이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으니까 아직 사과하지 않았을 거예요.”
  • 모여희가 옆에서 부추겼다.
  • ‘모여정, 내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인 화분을 그렇게 만들더니. 엄마는 여정이를 편애하지만 아빠는 모안그룹의 미래를 더 중시할 거야.”
  • 모여희의 깨고소한 표정을 본 모여정은 울먹거리며 말했다.
  • “아빠,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대표님께 사과했어야 했는데… 언니랑 같이 가서 사과하게 해줘요.”
  • 모여희가 거절하려고 하는데 모경서가 지시했다.
  • “여희야, 너 지금 동생 데리고 사과하러 가. 전 대표 앞에서 네 말 잘해주면 양가가 사돈을 맺지 못해도 원수가 되지는 말아야지.”
  • 전씨 가문에서 중매쟁이가 찾아왔을 때, 모경서는 아주 갈등되었다. 전씨 가문과 사돈을 맺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딸을 시집보내는 것은 싫었다. 시집간 딸이 평생 독수공방 지킬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모여희의 말대로 모여정에게 결정권을 넘겨주었다.
  • 그런데 모여정이 이렇게 큰 사고를 칠 줄이야.
  • 전강현의 딱딱한 표정이 떠오르자 모경서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 그래서 모여정에게 사과하라고 재촉하게 된 것이다.
  • “알았어요, 제가 여정이를 데리고 전씨 가문에 갈게요.”
  • 모여희는 아주 내키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장혜민은 거실의 기척을 듣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자매가 나란히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물었다.
  • “쟤네 어디 간대요?”
  • “전씨 가문에 사과하러 가.”
  • “사과요?”
  • 모경서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 “여정이가 혼사를 거절하려고 전 대표 앞에 가서 자살소동을 벌였단 말이야. 전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얘의 행위는 전 대표의 자존심을 상하는 하는 거라고. 그런데 사과를 안 해?”
  • “하지만…”
  • “자꾸 여정이만 감싸고 돌지 마. 우리 집에 여정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생각도 해야 할 것 아니야?”
  • 장혜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모여희는 차를 타고 모여정과 함께 전씨 가문으로 갔다. 가는 길 내내 그녀는 모여정더러 전씨 가문에 도착해서 전강현을 보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했다. 만약 전강현이 그녀를 용서해주겠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집으로 돌아올 수 없어.”
  • 조수석의 모여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 지난 생에 그녀는 팔목을 긋다가 기절해서 깨어난 뒤, 전씨 가문의 보디가드에 의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강천호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방에 박혀서 단식을 하느라 전씨 가문에 사과하러 간 적이 없었다.
  • 전강현의 성격상, 자신에게 망신을 준 사람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 하지만 그녀가 죽을 때까지 전강현은 그녀에게 복수하지도, 모씨 가문에 무슨 짓을 하지도 않았다.
  •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생에 그녀가 딸을 안고 밖으로 나가다가 아무 차나 가로막았을 때, 차 안에서 그녀임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던 전강현이었다.
  • 그리고 그는 기사를 지시해서 그들 모녀를 병원에 데려가게 했다. 하지만 딸은 결국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 ‘지난 생의 전 대표는 왜 나한테 복수를 하지 않은 거지? 너그러운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로?’
  • 모여정은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다.
  • “모여정, 내 말 들었어?”
  • 모여희는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모여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결국 언성을 높였다.
  • “응.”
  • 모여정은 정신이 번쩍 들어 대충 대답했다.
  •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대표님이 널 용서해 주실 거야. 사실 전씨 가문이 잘못한 거잖아. 전 대표가 저런 상태로 널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네가 시골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거 아니야? 여정아, 언니는 네가 너무 안쓰러워. 네가 강천호에게 한눈에 반한 거 알고 있거든. 만약 전 대표가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강천호가 전 대표보다는 못하겠지만… 네가 알아서 선택하겠지. 사과하면 내가 나서서 엄마 아빠를 설득해볼게. 그러면 부모님도 네가 강천호와 결혼하는 걸 허락해줄 거야. 네가 결혼만 한다면 전씨 가문에서도 널 노리지 않을 거고.”
  • 모여희는 모여정을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 모여정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가식적인 가면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 모여정이 담담하게 물었다.
  • “나 강천호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
  •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왜?”
  • “이유 없어.”
  • 모여정은 고개를 돌리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모여희와 대화하기 싫다는 무언의 항의였다. 모여희가 또 뭐라고 말을 걸어왔지만 모여정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전씨 가문에 도착할 때까지 모여정은 모여희와 말을 섞지 않았다. 모여희의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 같은 시각, 전강현은 정원의 장자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앞의 테이블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개코인 모여정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의 음식이 정신이 팔렸다.
  • ‘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거지? 과자 몇 조각 먹은 게 다인 것 같은데?’
  • “도련님.”
  • 한 보디가드가 정자에 들어서며 전강현에게 말했다.“
  • 도련님, 모씨 가문의 첫째 아가씨가 둘째 아가씨를 모시고 사과하러 오셨습니다.”
  • 전강현은 듣지 못한 듯, 대답이 없었다.
  • 보디가드는 더는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 침묵이 1분가량 흐른 뒤, 전강현은 서류를 덮고 차가운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 “주방에서 고추기름 한 병 가져와. 가장 매운 거로.”
  • 보디가드는 그가 왜 갑자기 고추기름을 가져오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더 묻지 않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뒤, 정자를 나갔다.
  • “그들을 데려와.”
  • “네.”
  • 곧 모여정 자매는 다른 한 보디가드의 안내를 받으며 정자에 들어섰다.
  • 모여정은 자신의 신랑이 고대의 임금처럼 격식을 많이 따진다고 생각하면서도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 ‘배고파! 이때 오는 게 아닌데. 나는 배가 고픈 상태인데 저 사람은 밥을 먹고 있잖아. 그래도 우리는 결혼한 사이인데 나더러 먹으라고 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