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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 여자의 향수 냄새

  • ‘아니, 박기성의 커프스단추가 왜 내 가방 안에 있지? 그 사람은 돈이 많으니까 하나 잃어버렸다고 신경 쓰진 않을 거야.’
  • 그 생각을 하며 손지현은 커프스단추를 다시 가방 안에 넣고는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회사로 들어갔다.
  • 그런데 그녀가 고개를 든 순간 박우재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여자와 딱 마주쳤다. 두 사람은 웃음꽃을 피우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 손지현은 저도 모르게 그 여자를 힐끔거렸다. 그녀가 바로 그날 밤 박우재와 함께 있었던 여자였다.
  • 손지현을 보자마자 박우재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 ‘뮌헨에 출장 간다고 하지 않았나? 언제 돌아왔지? 아니면 아예 안 갔나?’
  • 바로 그때 박우재 옆에 있던 여자가 그에게 바짝 다가가 귓속말로 뭐라 속삭이자 박우재는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녀는 곧장 돌아서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그녀의 목에 옅은 키스 자국이 어렴풋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기 전 손지현을 향해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는데 그건 그녀에 대한 도발이었다.
  • 손지현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
  • ‘두 사람 사이가 생각 이상으로 가깝네?’
  • 박우재는 다가오는 손지현을 힐끗 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다른 엘리베이터에 탔다.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박우재가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 “아까 그 여자는 내 상사야. 지난주 업무 상황 물어보더라고. 아 참, 당신 뮌헨에 출장 간다고 하지 않았어?”
  • 손지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 대학교 시절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그녀는 성 장애가 생겼다. 박우재와 결혼한 후에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고 두 사람은 아직도 잠자리한 적이 없었다.
  • 정상적인 남자인 박우재가 지금까지 버틴 것도 어찌 보면 대단했다.
  • 그 생각에 어제 다른 사람을 찾아 박우재에게 복수했던 쾌감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손지현은 입술을 앙다물고 나지막이 말했다.
  • “어제는 우리 1주년 결혼기념일이잖아. 그래서 스케줄 미루고 당신이랑 축하하려고 했는데 야근한다길래 찾으러 안 갔지.”
  • 박우재의 표정이 흔들리다가 주머니 속 케이스를 확인하고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 “미안해. 내가 중요한 날을 깜빡했어. 하지만...”
  • 박우재는 주머니에서 케이스를 꺼내 열었다. 케이스 안에는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었다.
  • “선물 준비했어.”
  • 손지현은 그 반지를 보자마자 조금 전 상사가 낀 귀걸이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이 반지도 그 여자에게 주려고 산 모양이다.
  • 순간 그가 서먹서먹하게 느껴진 그녀는 손을 뒤로 뺐다.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려던 박우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 “왜 그래? 반지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 “마음에 들어. 하지만 여긴 회사잖아. 남들이 보면 어떡해.”
  • 손지현은 재빨리 반지를 건네받았다. 박우재는 손지현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오늘 저녁 같이 밥 먹자. 내가 제대로 보상해줄게.”
  • 그의 몸에 밴 그 여자의 향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손지현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를 밀어내려는데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밖에는 회사 동료가 서 있었다.
  • 엘리베이터에 타려던 그 동료는 두 사람이 가깝게 서 있자 의아한 눈빛으로 그들을 빤히 보았다.
  • “지현 씨, 조심하세요.”
  • 눈치 빠른 박우재는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았던 손을 내려놓으며 동료에게 손지현이 하이힐을 신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걸 부축해줬다고 설명했다.
  • 손지현은 마음이 심란했다.
  • ‘회사 로비에서는 여자 상사랑 시시덕거리면서 정작 우리가 부부라는 건 숨겨야 한다니. 정말 웃겨!’
  • “고마워요, 매니저님.”
  • 손지현은 덤덤한 말투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녀는 그의 몸에 밴 향수 냄새만 맡으면 역겨웠다.
  • 일 처리가 빠른 손지현은 그날 오후 바로 변호사를 찾아가 이혼 합의서를 작성했다.
  • 박우재가 먼저 바람을 피웠고 그녀도 나름의 복수를 했다. 이젠 박우재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그녀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면 너무 초라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지현은 아직 이혼 합의서를 챙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뉴욕 쪽에 일손이 필요하여 짐도 챙기지 못하고 바로 공항으로 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