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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 “그럴 필요 없어요. 테이블 위에 있어요.”
  • 그녀의 뜻을 오해한 박기성은 턱을 까딱이며 침대 머리맡을 가리켰다. 정교한 사물함 안에 여러 가지 모양이 들어있었다.
  • 손지현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 ‘지금 호텔 서비스가 이렇게나 좋아?’
  • “그... 그럼 저 씻고 나올게요.”
  • 손지현은 남자를 슬쩍 밀었고 심장이 터져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그녀는 박기성이 이따가 무엇을 할지 대충 예감이 들었다.
  • ‘젠장, 아까 주도권을 잡은 사람은 분명 나였는데 왜 지금은 내가 기를 못 펴고 있는 거지? 설마 작은삼촌이 일부러 발톱을 숨긴 건가?’
  • 그녀는 의심에 찬 눈빛으로 박기성을 빤히 보았는데 그 속에는 당황함이 섞여 있었다. 눈치 빠른 박기성은 이미 그녀의 속셈을 다 눈치챘다. 그의 옆자리를 탐내는 여자들이 많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도망치려는 여자는 그녀밖에 없었다.
  • ‘이거 점점 재미있어지는데?’
  •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날이 밝았다.
  • 잠에서 깬 손지현은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곤히 잠든 남자의 모습은 평소처럼 그리 무섭지 않았다. 마치 사자가 맹렬함과 난폭함을 거두고 깊이 잠든 것만 같았다.
  • 그녀는 그에게 바짝 다가가 곤히 잠든 남자를 이리저리 살폈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하얀 피부, 턱에는 수염이 살짝 자라있었고 속눈썹도 매우 길었다.
  • ‘뭔 남자가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
  • 손지현은 저도 모르게 질투심이 살짝 생겨났다. 그녀가 너무 대놓고 빤히 쳐다본 탓인지 남자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그녀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 누웠다. 다행히 남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그의 손을 옆으로 치웠다. 그가 혹시라도 깰까 그녀는 숨조차 쉬질 못했다.
  • 손지현은 박기성이 깨기 전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재빨리 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가방 안에 있는 모든 현금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은 뒤 황급히 도망쳤다.
  • 그녀가 나간 지 10분도 채 안 되어 박기성이 깨어났다. 그는 옆자리가 텅 비어있을 거라고 진작 예상한 듯 덤덤하게 옷을 입었다. 그러다가 침대 머리맡에 놓인 무언가를 발견하고 확인하러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현금과 쪽지 한 장이 놓여있었다.
  • “작은삼촌, 어젯밤에는 즐거웠어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대박 나길 바라요!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 박기성은 그녀가 쓴 쪽지를 보며 피식 웃더니 그대로 휴지통에 버리고 현금을 챙겼다.
  • 그때 장 실장이 전화를 걸어와 티켓을 끊었다고 했다.
  • “대표님, 만약 시간이 안 되시면 티켓을 내일로 바꿀 수 있어요.”
  • “괜찮아. 지금 바로 갈게.”
  •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박기성이 장 실장에게 분부했다.
  • “아 참, 호텔에 가서 어젯밤 그 여자에 대해 알아봐.”
  • “네,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