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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혼

  • 호텔 로비에서 나온 뒤에도 손지현의 가슴은 여전히 쿵쾅거렸다. 찬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나서야 정신이 조금 든 것 같았다.
  • 그녀는 정말로 박기성과 하룻밤을 보냈다!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 ‘상대는 박기성이야! 너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손지현!’
  • 손지현은 자신의 머리를 세게 내리치고는 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현금을 꺼내 택시를 잡았다.
  • ‘에라, 모르겠다. 집에 가서 다시 보자.’
  • 저택으로 들어가기 전 손지현은 자신의 몸에 수상한 흔적은 없는지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갔다.
  •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시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 “어머님.”
  • 그녀의 말투는 그래도 온화했다.
  •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 손지현이 어젯밤 자신에게 말대꾸하던 것만 생각하면 라인화는 분통이 터졌다.
  • “이혼해! 당장 내 아들이랑 이혼하라고!”
  • 시어머니에게 미운털이 박힌 그녀는 당장이라도 박씨 저택에서 나오고 싶었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 그녀의 가정 형편이 좋지 않기에 박우재와 결혼한 건 그야말로 로또 같은 일이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그동안 수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FS 그룹의 통역팀에서 통역 일을 했고 업무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 그런데도 그녀의 시어머니는 여전히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박씨 가문으로 시집온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임신 소식이 없자 쌀쌀맞게 대하는 건 물론이고 친척들 앞에서조차 그녀가 아이를 못 낳는다고 흉을 보곤 했다. 심지어 그녀가 보는 앞에서 박우재에게 친구 딸을 소개하기도 했다.
  • 박우재와의 사랑을 위하여,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그녀는 꾹 참기만 할 뿐 시어머니와 맞서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번 돈까지 전부 이 집에 갖다 바쳤지만 박우재는 결국 바람을 피웠다!
  • 손지현은 화를 참기 위해 깊은숨을 들이신 뒤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 “어머님, 저 일부러 병원에 안 간 건 아니에요.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거 처리하러 갔는데 회사 동료가 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홧김에 어제 그런 얘기를 한 거예요.”
  • 라인화는 그녀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 했고 손지현과 박우재가 한시라도 빨리 이혼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 “어머님이라고 부르지도 마. 아들 못 낳겠으면 당장 우리 아들이랑 이혼해!”
  • “어머님, 제가 이 집에 시집온 지 1년이나 됐는데 아이를 못 낳아서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아요.”
  • 손지현이 라인화의 팔을 붙잡고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도 아이를 못 가지면 우재 씨랑 이혼할게요. 더는 매달리지 않을게요.”
  • 그녀의 말에 라인화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라인화는 그녀의 배를 힐끔거렸다.
  • “이번에도 임신 못 하면 나도 더는 널 너그러이 받아줄 수 없어. 두 사람 꼭 이혼하게 할 거야!”
  • 손지현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박우재의 마음속엔 이젠 그녀가 없고 시어머니의 눈에 그녀는 그저 아이를 낳는 도구에 불과했다.
  • 그녀는 더는 시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뒤 회사로 출발했다.
  • 박우재와 그녀 모두 FS 그룹에 출근하지만 팀이 달랐다. 박우재는 기획팀에, 그녀는 통역팀에서 일했다.
  • FS 그룹 빌딩은 총 삼십여 층 되는 큰 건물이다. 몇 년 전 FS 그룹에 처음 왔을 당시, 박우재가 손지현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비밀로 하자고 했었기에 회사 전체에 두 사람이 부부라는 걸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 지금 생각해보니 손지현은 자신이 너무 어리석은 것 같았다.
  • FS 그룹은 전국 100대 대기업이라 훌륭한 인재도 많고 예쁜 여자도 득실거렸다. 박우재는 유부남이라는 칭호가 그가 예쁜 여자를 꾀는데 방해될까 봐 출근할 때 결혼반지도 끼지 않았다.
  • 차 키를 가방 안에 넣다가 커프스단추 하나를 발견했다. 브랜드를 보니 비싼 명품이었고 커프스단추 하나에 4천만 원 정도 되었다.
  • 손지현은 커프스단추를 꺼내 자세히 살폈다. 박우재 형편에 이런 비싼 크리스털 커프스단추를 샀을 가능성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누군가의 얼굴에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