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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만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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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블루

Last update: 2023-12-30

제1화 무슨 말이야 그게!

  • 1주년 결혼기념일 날, 손지현은 남편이 바람 피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아니, 어쩌면 진작 바람피웠지만 그녀가 인제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녀는 지금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어야 했다.
  • 몇 번이고 고민한 끝에 출발하기 전 그녀는 이번 출장 스케줄을 취소하고 케이크와 와인을 주문하여 남편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다.
  • 그런데 아마 이보다 더 큰 서프라이즈는 없을 것이다...
  • 손지현의 귓가에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우재 씨, 난 이미 이혼했는데 우재 씨는 언제 이혼할 생각이야? 빨리할수록 좋아. 오랫동안 괴로움을 견디느니 잠깐만 참고 철저히 해결하는 게 나아.”
  • “언젠가는 이혼하게 돼 있어. 그러니까 안 급해.”
  • 박우재가 대답했다. 그는 남녀 사이에 사랑만 있으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두 사람은 포옹 말고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갔고 그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 다만 아직 이혼이라는 단어가 너무 갑작스러워 손지현에게 뭐라 얘기를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녀를 ‘맨몸으로 내쫓을’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 손지현은 휴대폰을 꽉 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쩐지 요즘 박우재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했더니 밖에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었다.
  • 그 여자가 누구인지 그녀는 어렴풋이 기억났다. 박우재와 한 회사에 다니는 상사였다.
  • 그리고 전에 박우재가 승진하려면 이 여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가 말한 잘 보인다는 게 바로 이런 거란 말인가?
  • 손지현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문을 열고 쳐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마지막 이성의 끈을 잡은 덕에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안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전부 찍었다.
  • ...
  • 아파트 대문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온 손지현은 들고 있던 물건을 전부 휴지통에 버렸다. 손을 내밀고 택시를 잡는데 주머니 속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 손지현은 전화를 받지 않고 택시 뒷좌석에 앉았다. 휴대폰 화면이 끊임없이 번쩍이는 걸 보니 받을 때까지 전화할 기세였다. 결국 그녀는 참다못해 전화를 받았다.
  • 전화를 받는 순간 시어머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손지현! 너 무슨 뜻이야? 내가 널 위해서 최고의 산부인과 교수님을 얼마나 어렵게 예약했는데 병원에 안 간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전화까지 안 받아? 우리 박씨 가문 손주를 낳기 싫으면 일찌감치 말해! 당장 이혼시켜버리게. 우리 가문에 시집오려는 여자는 많고도 많아!”
  • 시어머니의 서슴없는 욕설과 말끝마다 ‘박씨 가문’이라는 말에 손지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 그렇다. 그녀가 박씨 가문에 시집온 그날부터 시부모는 그녀를 그 집안사람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 그들의 눈에 손지현은 그저 집안 형편이 가난하고 아무런 배경도 없는 여자였다. 하여 박씨 가문을 위해 대를 잇는 걸 영광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땐 왜 박우재의 그런 허튼소리를 믿었을까?
  • 박우재는 그녀에게 평생 잘해주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그녀를 받아들이게 할 거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녀가 예전에 받았던 사랑의 상처 때문에 그와 잠자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면서 그녀가 마음을 열길 기다리고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 그녀가 드디어 그에게 마음을 열 준비를 마쳤는데 박우재는?
  • 시어머니의 욕설에 조금 전 아파트에서 본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화가 난 손지현이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는지 창백해질 정도였다.
  • 그녀는 휴대폰을 꽉 쥐고 또박또박 말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이 재촉하지 않아도 이혼할 거니까. 손주 원하시죠? 그래요. 낳을게요, 저.”
  • 하지만 절대 박우재의 아이는 아닐 것이다.
  • 박우재가 바람피웠으니 이혼하기 전에 그녀도 그대로 복수할 생각이다.
  • “천한 것 같으니라고. 버르장머리 없이 무슨 말이야 그게!”
  • 전화를 끊기 전까지도 시어머니는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손지현은 아예 휴대폰을 꺼버리고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 “기사님, 스카이 캐슬 클럽으로 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