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 자리에 앉아 고개만 든 채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빛만 봐도 그녀가 삐딱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그녀가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궁금한 나는 술잔을 건네받아 한입에 털어 넣고 테이블에 잔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모두는 소리 내 분위기를 띄웠고 천소미는 두 번째 잔에 술을 부으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주 화끈한 사람인 거 같은데, 그럼 나도 대놓고 얘기할게. 넌 내 절친을 따라왔으니 그녀한테 대시하는 게 분명해.”
나는 방금 마신 술을 자칫하면 뿜을 뻔했다. 이 계집애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임연은 다급하게 외쳤다.
“소미야, 헛소리하지 마.”
천소미는 말을 이어갔다.
“내 친구는 숫기가 없어서 아마 널 거절하기 미안했을 거야. 그냥 까놓고 얘기하는데, 내 절친이랑 진주호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니까 제3자가 되지 말아줘. 그건 사내대장부가 하는 짓이 아니야. 그리고 넌 진주호의 정체도 알고 있잖아? 그를 궁지에 몰아넣으면 좋은 결과가 없을 거야. 이 잔을 마시면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연이랑 멀리 떨어져 있어.”
임연은 천소미를 끌어당기며 홧김에 얼굴마저 빨개졌다.
“소미야,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진주호랑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야. 장우도 마찬가지이고!”
“누가 아니래? 난 소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다들 경악하는 가운데 진주호가 일어섰다.
대체 이 자식이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누군가가 룸의 문을 열었고, 한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가 네 명 들어섰다. 이 네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진주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곁에 각각 멈춰 섰다.
네 사람의 움직임은 약간 경직되어 보였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나는 네 사람의 허리춤에 전부 쇠몽둥이를 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진주호가 부른 조력자이며 진주호의 한 마디에 바로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비록 그는 힘이 센 나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5년 동안 군 복무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네 사람만 부르면 나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천소미는 내게 술을 권하려 했고, 진주호가 부른 네 사람은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를 둘러쌌다.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은 아무리 눈치 없다고 해도 어찌 된 일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임연은 발만 동동 구르며 진주호를 여러 번 잡아당겼지만, 그에게 허리를 안긴 채 벽에 기대어 꼼짝 못 하고 있었다. 그의 손을 바라본 나는 갑자기 분노가 타올라 술잔을 움켜쥐고 깨뜨릴 뻔했다.
“장우, 오늘 나는 연이의 체면을 봐주는 거야. 이 술을 마시고 나서 우리 앞에서 알짱거리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 룸에서 걸어 나갈 수 없어.”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게임을 부대에서도 즐겨 했는데, 이는 신호가 안 들어오는 부대에서도 인터넷 연결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이토록 큰 스케일 속에서 다들 내가 이들을 안중에 두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한 게임을 마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안 마셔.”
천소미의 얼굴은 보기 안 좋게 구겨졌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고집 피우지 마. 술을 마시면 오히려 너한테 좋은 일이야. 우리는 백을 믿고 너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니까 너도 욕심부리지 마.”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임연과 거리를 두지 않으면 내가 욕심을 부리는 거라고? 그녀와 진주호는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
진주호는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구경하던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아이고, 생각났어. 너 바로 그 장우 아니야? 고등학교 때 나한테 붙잡혀 소변기에 머리를 집어넣고 오줌을 마실 뻔했잖아!”
줄곧 침착함을 유지하던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사건은 내 마음속 아킬레스건으로 건드리는 자는 끝장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가 방금 들어 왔을 때 불빛이 어두워서 나는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고 결국은 그를 못 알아봤지만, 이 자식은 바로 유호였다.
진주호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지자 나는 바로 눈치챘다. 그는 유호를 일부러 이곳까지 불렀고, 그 목적은 간단했다. 바로 나를 모욕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모를 수도 있으니 내가 소개해줄게. 저 사람이 바로 우리 T 시티 고등학교에서 오줌을 마시기로 유명한 장우야. 다들 기억해? 그 당시 학교에서 멍청이라고 했던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지. 게다가, 그는 집에서 변기 물을 즐겨 마신다고 하던데, 천소미, 네 술잔에 들어 있는 술을 안 마시는 이유가 있었나 보네, 그의 취향이 아닌가 봐.”
다들 박장대소하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비록 이 사람들을 몰랐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학교에서 유호에게 얻어맞아 퇴학당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진주호는 애써 측은한 척 말했다.
“난 이런 에피소드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장우야, 만약 네가 떠날 생각이 없다면 그냥 남아서 고등학교 때 얘기를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는 게 어때? 비록 우리 둘은 같은 반이었지만, 오늘날에야 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
“나 생각났어. 걔였구나. 바로 그 말하기 싫어하는 바보 아니야?”
“오줌 마시는 걔? 쟤네 집 엄청 가난했던 기억이 나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중학생 때 옷을 입었잖아. 뭘 입어도 전부 9부 바지였어.”
“하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생각났어. 그렇게 가난한데도 임연한테 대시해? 미친 거 아니야?”
“연아, 혹시 저 사람한테 속은 거 아니야? 요즘 그와 같이 가난한 찌질이들은 너처럼 착한 여자를 홀리는 것을 좋아해. 너는 순진하기만 하니 그의 정체를 똑똑히 파악해야 한다고.”
온갖 조롱이 섞인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혔고, 휴대폰을 쥔 내 손은 우두둑거리기 시작했다.
임연은 진주호를 밀면서 그만하라고 했지만, 진주호는 이를 악물고 임연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를 꽤 아끼나 본데? 너 한마디만 더 하면 오늘 그가 이곳에서 기어나가게 만들어 주겠어.”
“그러지 마. 저 사람은 너랑 아무런 원한도 없잖아. 그를 보내줘. 우리 얘기는 우리끼리 해.”
임연이 애원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천소미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꽤 놀았던 그녀는 역시나 남다른 배짱으로 겁 없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지만 전부 사실이기도 해. 너는 우리와 같은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곳에 남는다고 해도 난처해지기만 할 뿐, 이 술을 마시고 자리를 뜨면 각자 알아서 제 갈 길을 가는 거야. 아무도 곤란하질 필요가 없는 거지.”
나는 속으로 구역질이 나서 차갑게 비웃었다.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네. 이해심이 꽤 깊은걸? 넌 네가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
천소미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처럼 가난한 사람은 자존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자존심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어. 나란 사람은 절대로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맹세할 수 있어. 그러나 내 친구는 끌어들이지 마. 만약 네가 다른 여자를 찾는다면 나는 절대 참견하지 않을 거야.”
“그러게. 장우야, 네 꼬락서니를 한번 생각해 봐. 너 따위가 임연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차라리 끼리끼리 어울리는 여자친구나 여러 명 찾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