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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사람을 깔본다

  • “너 장우라고 했지? 참석한 이상 손님이니까 한잔해.”
  • 나는 제 자리에 앉아 고개만 든 채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빛만 봐도 그녀가 삐딱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나는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그녀가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궁금한 나는 술잔을 건네받아 한입에 털어 넣고 테이블에 잔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 모두는 소리 내 분위기를 띄웠고 천소미는 두 번째 잔에 술을 부으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 “아주 화끈한 사람인 거 같은데, 그럼 나도 대놓고 얘기할게. 넌 내 절친을 따라왔으니 그녀한테 대시하는 게 분명해.”
  • 나는 방금 마신 술을 자칫하면 뿜을 뻔했다. 이 계집애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 임연은 다급하게 외쳤다.
  • “소미야, 헛소리하지 마.”
  • 천소미는 말을 이어갔다.
  • “내 친구는 숫기가 없어서 아마 널 거절하기 미안했을 거야. 그냥 까놓고 얘기하는데, 내 절친이랑 진주호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니까 제3자가 되지 말아줘. 그건 사내대장부가 하는 짓이 아니야. 그리고 넌 진주호의 정체도 알고 있잖아? 그를 궁지에 몰아넣으면 좋은 결과가 없을 거야. 이 잔을 마시면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연이랑 멀리 떨어져 있어.”
  • 임연은 천소미를 끌어당기며 홧김에 얼굴마저 빨개졌다.
  • “소미야,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진주호랑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야. 장우도 마찬가지이고!”
  • “누가 아니래? 난 소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 다들 경악하는 가운데 진주호가 일어섰다.
  • 대체 이 자식이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누군가가 룸의 문을 열었고, 한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가 네 명 들어섰다. 이 네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진주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곁에 각각 멈춰 섰다.
  • 네 사람의 움직임은 약간 경직되어 보였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나는 네 사람의 허리춤에 전부 쇠몽둥이를 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
  • 그들은 진주호가 부른 조력자이며 진주호의 한 마디에 바로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 비록 그는 힘이 센 나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5년 동안 군 복무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네 사람만 부르면 나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 천소미는 내게 술을 권하려 했고, 진주호가 부른 네 사람은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를 둘러쌌다.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은 아무리 눈치 없다고 해도 어찌 된 일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 임연은 발만 동동 구르며 진주호를 여러 번 잡아당겼지만, 그에게 허리를 안긴 채 벽에 기대어 꼼짝 못 하고 있었다. 그의 손을 바라본 나는 갑자기 분노가 타올라 술잔을 움켜쥐고 깨뜨릴 뻔했다.
  • “장우, 오늘 나는 연이의 체면을 봐주는 거야. 이 술을 마시고 나서 우리 앞에서 알짱거리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 룸에서 걸어 나갈 수 없어.”
  •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게임을 부대에서도 즐겨 했는데, 이는 신호가 안 들어오는 부대에서도 인터넷 연결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많은 사람과 이토록 큰 스케일 속에서 다들 내가 이들을 안중에 두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나는 한 게임을 마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 “미안하지만 안 마셔.”
  • 천소미의 얼굴은 보기 안 좋게 구겨졌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 “고집 피우지 마. 술을 마시면 오히려 너한테 좋은 일이야. 우리는 백을 믿고 너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니까 너도 욕심부리지 마.”
  •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임연과 거리를 두지 않으면 내가 욕심을 부리는 거라고? 그녀와 진주호는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
  • 진주호는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구경하던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 “아이고, 생각났어. 너 바로 그 장우 아니야? 고등학교 때 나한테 붙잡혀 소변기에 머리를 집어넣고 오줌을 마실 뻔했잖아!”
  • 줄곧 침착함을 유지하던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사건은 내 마음속 아킬레스건으로 건드리는 자는 끝장날 것이다.
  •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가 방금 들어 왔을 때 불빛이 어두워서 나는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고 결국은 그를 못 알아봤지만, 이 자식은 바로 유호였다.
  • 진주호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지자 나는 바로 눈치챘다. 그는 유호를 일부러 이곳까지 불렀고, 그 목적은 간단했다. 바로 나를 모욕하기 위해서였다.
  • “다들 모를 수도 있으니 내가 소개해줄게. 저 사람이 바로 우리 T 시티 고등학교에서 오줌을 마시기로 유명한 장우야. 다들 기억해? 그 당시 학교에서 멍청이라고 했던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지. 게다가, 그는 집에서 변기 물을 즐겨 마신다고 하던데, 천소미, 네 술잔에 들어 있는 술을 안 마시는 이유가 있었나 보네, 그의 취향이 아닌가 봐.”
  • 다들 박장대소하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나는 비록 이 사람들을 몰랐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학교에서 유호에게 얻어맞아 퇴학당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진주호는 애써 측은한 척 말했다.
  • “난 이런 에피소드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장우야, 만약 네가 떠날 생각이 없다면 그냥 남아서 고등학교 때 얘기를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는 게 어때? 비록 우리 둘은 같은 반이었지만, 오늘날에야 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
  • “나 생각났어. 걔였구나. 바로 그 말하기 싫어하는 바보 아니야?”
  • “오줌 마시는 걔? 쟤네 집 엄청 가난했던 기억이 나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중학생 때 옷을 입었잖아. 뭘 입어도 전부 9부 바지였어.”
  • “하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생각났어. 그렇게 가난한데도 임연한테 대시해? 미친 거 아니야?”
  • “연아, 혹시 저 사람한테 속은 거 아니야? 요즘 그와 같이 가난한 찌질이들은 너처럼 착한 여자를 홀리는 것을 좋아해. 너는 순진하기만 하니 그의 정체를 똑똑히 파악해야 한다고.”
  • 온갖 조롱이 섞인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혔고, 휴대폰을 쥔 내 손은 우두둑거리기 시작했다.
  • 임연은 진주호를 밀면서 그만하라고 했지만, 진주호는 이를 악물고 임연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 “그를 꽤 아끼나 본데? 너 한마디만 더 하면 오늘 그가 이곳에서 기어나가게 만들어 주겠어.”
  • “그러지 마. 저 사람은 너랑 아무런 원한도 없잖아. 그를 보내줘. 우리 얘기는 우리끼리 해.”
  • 임연이 애원했다.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천소미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꽤 놀았던 그녀는 역시나 남다른 배짱으로 겁 없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 “다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지만 전부 사실이기도 해. 너는 우리와 같은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곳에 남는다고 해도 난처해지기만 할 뿐, 이 술을 마시고 자리를 뜨면 각자 알아서 제 갈 길을 가는 거야. 아무도 곤란하질 필요가 없는 거지.”
  • 나는 속으로 구역질이 나서 차갑게 비웃었다.
  •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네. 이해심이 꽤 깊은걸? 넌 네가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
  • 천소미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 “너처럼 가난한 사람은 자존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자존심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어. 나란 사람은 절대로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맹세할 수 있어. 그러나 내 친구는 끌어들이지 마. 만약 네가 다른 여자를 찾는다면 나는 절대 참견하지 않을 거야.”
  • “그러게. 장우야, 네 꼬락서니를 한번 생각해 봐. 너 따위가 임연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차라리 끼리끼리 어울리는 여자친구나 여러 명 찾아! 하하하!”
  • 유호가 말했다.
  • 그리고 진주호는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 “아니면 아무나 괜찮지, 너 따위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