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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얼짱 임연

  • 진주호에 관해 얘기하자면, 나는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귀에 익다고 생각했고 본인을 보자마자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이 사람도 내 고등학교 동창이었으며 또한 재벌 2세였다. 그는 고등학교 우두머리로 반에서도 대장이었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임연을 좋아해서 그녀를 쫓아다니곤 했었다.
  • “넌 그 누구 아니야?”
  • 진주호는 임연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나를 향해 말했다.
  • 임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 “아는 사람이야?”
  • 나는 속으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임연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진주호가 나를 기억하다니!
  • “연아, 기억 안 나? 이 사람이 바로 고등학교 때 너희 집까지 미행하는 것도 모자라 길에서 너한테 추파를 던진 남자였잖아. 나중에 내가 유호에게 그를 화장실에 가두고 때리라고 했지. 너 정말 기억 안 나? 참, 그 변기 물을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 있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 임연의 동공은 갑자기 커지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너 장우였어?!”
  • 등 뒤로 감춘 내 주먹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유호한테 나를 때리라고 했던 사람이 그였다니!
  • 윤 대표님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 “다들 서로 아는 사이였어요? 차라리 잘됐네요! 진 사장님, 이게 바로 우리의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협력 건은 틀림없이 순조로울 것입니다. 장우야, 가서 음식을 좀 시켜, 내 이름으로 외상을 하면 돼.”
  • 군 생활을 통해 바뀌게 된 것은 내 몸매뿐만 아니라 성격도 있었다. 나는 더는 예전의 소심하고 겁이 많은 충동적인 장우가 아니었다.
  • 나 또한 진주호랑 따질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 신분으로 그와 따지게 되면 도리어 그를 추켜세우는 꼴이 된다.
  • 진주호는 오히려 나를 보내지 않으려 했고, 임연을 흘끗 쳐다보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 “어딜 가, 오랜만에 동창끼리 만났는데 같이 앉도록 하지.”
  • 나는 이 자식이 정신이 나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우리 둘은 피맺힌 원한으로 이어진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그에게 시비를 걸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그는 오히려 몇 번이고 나를 도발했다.
  • “됐어, 일이나 봐.”
  • “어쭈? 윤 대표님, 당신 운전기사는 내 체면을 봐주지 않는데요? 고작 운전기사 따위가 콧대는 높네요. 우리 이번 협력 건은...”
  • 나는 피식 웃었다.
  • “진주호, 네가 한편으로 임연을 좋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남자가 술 시중을 드는 걸 좋아할 줄은 몰랐네. 취향이 독특하군. 미안하지만 나한텐 그런 취미가 없어. 나는 이성 연애만 지향하는 사람이지. 먼저 간다.”
  • 룸에서 대기하던 종업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진주호의 얼굴은 차마 봐주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졌다.
  • 제일 난감해하는 사람은 바로 윤 대표님이었다. 그는 나와 진주호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감히 나를 붙잡지 못했지만, 진주호가 그런 말을 내뱉었으니 나를 내보내지도 못했다.
  • 차라리 본성을 드러낸 진주호는 더는 숨기지 않고 자리에 앉으면서 다리를 꼰 채 냉소를 지었다.
  • “고작 운전기사 주제에 나한테 허세 부리긴, 내가 오늘 너한테 자리에 앉으라면 앉고, 무릎을 꿇으라면 꿇어. 너 이 자식,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지 마. 고등학교 때부터 난 네 놈이 거슬렸어. 고작 너 따위가 감히 내 여자한테 치근덕거려? 간이 부었구먼! 잘 들어, T 시티에서 내 말 한마디면 넌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하고 밥이나 동냥하러 다닐 거야!”
  • 말을 마친 그는 임연의 허리를 한 손을 주물럭거렸다. 옆에 서 있던 여자 종업원들은 보다 못해 고개를 숙였고 임연의 얼굴은 볼썽사나울 정도로 빨개졌지만, 차마 그를 밀어내진 못했다. 그의 팔은 그녀를 단단히 옭아맨 채 마음대로 만지고 있었다.
  • 윤 대표님은 서둘러 말했다.
  • “진 사장님, 화를 푸세요. 지금 당장 해고할게요. 그는 더는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죠.”
  • “누가 자르라고 했어요? 그를 회사에 남기고 앞으로 항상 그와 동행하세요. 장우, 똑똑히 보라고. 임연은 내 여자야. 만약 내 물건에 손을 댄다면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얻어맞던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어 주지.”
  • 나는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엎으면서 이 자식을 때리려고 했다.
  • 하지만 나보다 더 빨리 행동을 취한 사람은 임연이었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바닥은 서슴없이 진주호의 뺨을 내리쳤다. 진주호는 넋이 나간 채 뺨을 감싸고 임연을 바라보았으며,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테이블 위에 있던 술잔을 들어 진주호의 얼굴을 향해서 뿌렸다.
  • “정신 차려, 남을 너무 업신여기는 거 아니야?”
  • 그녀의 손찌검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 임연이 진주호를 때릴 줄은 아무도 몰랐고, 반면 진주호의 성질은 더럽기만 했다.
  • 진주호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윤 대표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 임연은 옷을 정리하더니 말했다.
  • “화장실에 다녀올게.”
  • 진주호는 서둘러 쫓아갔다.
  • “연아, 화내지 마...”
  • 두 사람은 연이어 룸을 나섰고, 나와 윤 대표님만 남아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사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보면 임연은 나 대신 그의 뺨을 때렸다. 지금은 그녀는 감히 진실을 말할 용기조차 없어 결국 내가 억울하게 얻어맞은 상황까지 만들었던 임연이 아니었다.
  • “너, 무슨 낯으로 웃어? 이젠 망했다. 이제 우린 다 죽게 생겼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하필 JE 그룹 진 도련님을 건드리다니, 이제 우리 모두 끝장이야!”
  • 나는 실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애써 미소를 참은 뒤 그를 다독였다.
  • “윤 대표님, 일단 진정하시고 제가 나가 볼게요.”
  • 임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된 나는 문을 열고 따라나섰다. 나는 JC 가든에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었고, 종업원에게 확인하고 나서야 화장실을 찾았다. 결국, 화장실 입구에서 임연의 손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는 진주호를 발견했다.
  • “벌써 몇 년째인데 아직도 그를 잊지 못했어? 저 가난뱅이가 뭐가 좋은데?”
  • “너한테 이미 얘기했잖아. 그때는 널 속인 거라고! 사실 그날 밤 나를 구해준 그는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했지. 왜 날 안 믿어?”
  • “당연히 믿을 수 없지.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왜 나랑 만나주지 않는 거야?”
  • “진주호, 너 미쳤구나. 너랑 만나주지 않는 이유를 나한테 물어보다니! 그렇게 많은 여자랑 시시덕거리면서 그 여자들을 떼어내기도 전에 나한테 추파를 던져? 난 뭐야? 이거 놔!”
  • 진주호는 임연의 손목을 잡고 으르렁거렸다.
  • “이 천한 년아, 인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해? 너한테 돈 보낼 때 말하지 그래?"
  • “그건 네가 빌려준 거잖아. 난 돈을 갚는다고 얘기했어! 진주호, 네가 날 이렇게 볼 줄은 몰랐네, 내가 돈 때문에 이런 짓을 한다고 생각해? 이거 놔! 더는 나를 귀찮게 하지 마.”
  • 진주호는 화가 나서 상욕을 하며 손을 들어 임연을 때리려 했고 깜짝 놀란 임연은 눈을 감았다.
  • 하지만 뺨을 맞을 거로 생각했던 임연은 얼굴에 아무 감각이 없자, 잠시 후 눈을 떴고 허공에 들어 올린 진주호의 손목을 잡은 나를 발견했다.
  • 진주호는 나와 키가 비슷했고 체구도 엇비슷해 보였지만, 군대에 다녀왔던 사람은 내공이 탄탄했다. 비록 겉모습은 전혀 티가 안 나더라도 내면은 힘이 넘쳐났다. 진주호처럼 겉으로만 튼튼해 보이는 것과 달리 힘으로 따지면 그는 전혀 내 상대가 아니다.
  • 나는 그에게 고통을 안겨줄 만큼 그의 손목을 비틀었고, 콩알만 한 땀방울이 그의 이마에 맺히기 시작했지만, 그는 차마 애원할 수 없었다. JE 그룹 도련님이 고작 경비원에게 제압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그의 체면은 바닥까지 떨어질 것이고,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더더욱 굴복할 수 없었다.
  • “진주호, 다들 동창이잖아. 손찌검하는 건 좀 과하지 않나?”
  • 진주호는 나를 욕하려 했지만, 고통에 이만 악물고 있었다. 그는 입만 열면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