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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가난뱅이

  • 술을 조금 마신 그녀의 피부는 분홍색을 띠고 있었고, 가슴 피부조차 마치 술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여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그녀보다 키가 큰 내 시선에서 내려다보면, 가슴이 파인 노란색 드레스 속 아찔하게 드러난 깊은 골이 눈에 띄었다.
  •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무슨 일이냐는 눈짓을 보냈다.
  • “네가 너무 많이 변해서 못 알아봤어.”
  •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군대에 갔어.”
  • “잘됐네.”
  • “응, 그러게. 별일 없으면 이만 쉬러 갈게.”
  • 나는 그녀와 대화를 이어갈수록 그녀의 가슴에서 눈을 뗄 수 없을까 봐 걱정했다. 탐스러운 가슴만 보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이야말로 남자들의 고질병이었다.
  • “장우야! 고등학교 때 일은...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못 했어. 그 당시 나한테 대시하는 진주호를 거절할 수 없어서 네가 내 남자친구라고 말했어. 그때는 너무 긴장되었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마침 전날에 나를 구해준 너밖에 없었어. 난 진주호가 너를 그렇게 대할 줄은 몰랐어. 정말 미안해, 나중에 그한테 해명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어.”
  • “괜찮아, 그는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을 뿐이야. 잠이나 자. 난 이미 잊었어.”
  • 임연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잘자.”
  • 나는 그녀가 방문을 닫는 것을 보고, 결국은 참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속으로 끊임없이 ‘예스’라고 외쳤다!
  • 다음 날 분노에 가득 찬 진주호가 회사에 들이닥쳐 윤 대표님한테 나를 자르라고 할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그는 그렇게 하기는커녕 나타나지도 않았다.
  • JE 그룹의 프로젝트를 따내자 회사의 모든 직원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윤 대표님을 모시고 매일 매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고, 나를 완벽하게 운전기사 취급을 하는 대표님 덕분에 며칠 사이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 그는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었고, 정말로 나한테 랜드로버를 넘겨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어찌 됐든 포르쉐는 너무 눈에 띄었고 나는 조금 평범한 차를 끌고 다니고 싶었다.
  • 나는 임연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출퇴근길에 항상 그녀를 픽업했다. 이렇게 자주 오가다 보니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무슨 일이 있으면 그녀는 나를 찾아와 종종 의논하곤 했으며 마트에 갈 때도 나를 불러서 같이 갔다.
  • 그녀는 몇 번이고 나한테 제집에 같이 가자고 해서 나는 그녀의 남동생인 임강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양아치나 다름없었고 하루가 멀다 하게 싸움이나 하러 다니면서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었다. 젊은 나이에 온라인 대출을 잔뜩 받고는 늘 염연에게 돈을 갚아달라고 했다.
  • “누나, 이 사람이 누나가 새로 꼬신 호구야? 저번에 그 사람보다 돈이 없어 보이는데?”
  • 임강은 문을 열어주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나한테 값비싼 시계조차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말했다.
  • 임연은 화가 나서 그를 밀쳤다.
  • “무슨 헛소리야? 이 사람은 내 직장 동료야. 장우야, 신경 쓰지 마. 내 남동생은 입이 싸지만, 성격은 착해.”
  • 비록 내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면서 임강한테 손을 내밀었다.
  • “괜찮아, 안녕? 난 장우라고 해.”
  • 임강은 혀를 찼다.
  • “됐어요. 동료면 다행이고, 돈이 없으면 우리 누나한테 치근덕거릴 생각하지 마요. 그녀가 예쁜 건 저도 알아요.”
  • “저 자식이!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대접할 줄 몰라?”
  • “지금 게임하고 있어. 시간 없어.”
  • 임연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나한테 빨리 앉으라 했고, 나한테 차를 따라주고는 장을 본 음식 재료들을 전부 냉장고에 넣었다.
  •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임연의 집안 형편은 절대 넉넉하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일 기본적인 가구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으며, 게다가 이런 가구들마저 오래되어 보였다.
  • 임연은 머쓱하게 말했다.
  • “몸이 편치 않은 아빠는 거의 매일 돈을 쓰지. 우리 엄마는 아버지를 돌봐줘야 해서 돈을 벌 수가 없어. 게다가 저딴 남동생까지 있으니, 집안은...”
  • “이해해. 우리 집은 옛날에 너보다 더 안 좋았어.”
  • “네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어. 예전에는 나한테 말도 잘 못 걸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하하.”
  •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핸드폰이 올리기 시작했다. 임연은 핸드폰을 흘끗 쳐다보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나가버렸다. 군 복무 기간에 나는 수색 중대를 나왔으며, 딱 봐도 진주호가 걸려 온 전화가 틀림없었다.
  •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풀이 잔뜩 죽은 채 돌아왔다.
  • “진주호가 너를 찾아?”
  • “어떻게 알았어?”
  • 임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 “아빠가 병 때문에 또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돈 빌려준다고 하네.”
  • 나는 서둘러 말했다.
  •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뻔하니까 그를 믿으면 안 돼.”
  • “하지만 난... 나는...”
  • 임연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조급했다.
  • “우리 아빠 수술비는 어쩌고? 천만 원을 어디 가서 구해?!”
  • 나는 그 자리에서 임연에게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타깝기만 했다. 천만 원을 내놓는 것은 나한테 식은 죽 먹기였고, 말 한마디면 해결된다.
  • 이때, 임강은 손에 핸드폰을 쥔 채 건들거리면서 거실까지 걸어 나왔다.
  • “누나, 결국은 스스로 답답한 일을 자처하는 꼴이랑 마찬가지 아니야? 주호 형 누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데, 공짜로 굴어 들어 온 돈을 사양할 필요가 있어? 여자한테 제일 값진 것은 청춘이야. 어차피 남자를 만나게 될 건데. 차라리 돈 많은 남자가 좋지 않겠어?”
  • “난 네 누나라고! 날 팔아먹고 싶어?!”
  • 임연은 버럭 화를 냈다.
  • “핸드폰 이리 줘! 진주호가 너한테 연락했니?”
  • 임연은 손을 뻗어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고, 임강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녀를 밀쳤다.
  • “그래서 뭐? 주호 형이 얼마나 좋은데? 돈도 많겠다. 우리 집사람한테도 잘 대해줘, 나한테는 게임 스킨도 사주는데 형 대신 좋은 말도 못 하냐? 누나가 주호형이랑 잘 되면 우리 가족은 앞으로 잘살게 될 것이고, 가난뱅이랑 만나게 되면 우리마저 가난에 시달리게 되겠지.”
  • 나는 소파에 있던 쿠션을 움켜주고 그를 향해 던졌다.
  • “사내새끼가 이런 말을 내뱉다니! 왜 네 누나가 이 집을 먹여 살려야 하고 너는 책임지지 않는 건데? 임연, 가자. 내가 해결 할 수 있어.”
  • 말을 마친 나는 눈물을 흘리는 임연을 끌고 임 씨 가문을 나섰다.
  • 밖으로 쫓아 나온 임강은 계단에서 우리를 향해 외쳤다.
  • “젠장, 빌어먹을 가난뱅이 같으니라고! 허풍은 정말 대단해. 어디 가서 돈을 구해오는지 두고 볼 거야! 임연, 너 돈이 없으면 집에 오지 마!”
  • 나는 임연을 다시 바라보았고, 그녀는 이미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 소매를 꼭 붙잡고 마치 힘없는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 “그만 울어. 일단 차에 타.”
  • 나는 임연을 차에 태우고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 “가끔은 어디론가 멀리 숨어버리고 싶어. 집 안이 이런 꼴이라서 아마 많은 동창은 몰래 비웃고 있을 거야. 너도 이런 내가 부끄럽지?”
  • 그녀는 눈이 빨개질 정도로 울었고,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속상하기 그지없었다.
  • 임연은 눈물을 훔치면서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돈 때문에 진주호에 접근한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지. 너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겠지? 다들 내가 돈 때문에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기겠지. 심지어 내 남동생마저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도 믿지 않겠지?”
  •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입을 떼기도 전에 임연은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 “괜찮아, 믿든지 말든지. 어차피 지금 난 모든 이의 웃음거리로 전락하였어. 오늘 나를 데려 줘서 고마워. 미안하지만 이 일은 비밀로 해줘.”
  • “잠깐.”
  • 나는 그녀가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몸을 날려 차 문을 잡아당겼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녀의 몸을 덮쳐버렸다. 마침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하얀 허벅지를 잡게 되었고, 그녀의 피부는 마치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결국, 균형을 잃은 나는 그녀의 몸 위로 미끄러졌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게 되었다. 그곳은 정말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