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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간호사

  • 임연이 나를 저지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나는 주 선생의 앞길을 막아서고는 이렇게 말했다.
  • “의사선생님, 공명정대한 사람은 뒷공론을 하지 않는다고 하죠. 의사들은 부모의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해 준다고 하던데 지금 이러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요?”
  • 주 선생이라는 이 의사는 나이는 50살 가까이 돼 보였고 입가에는 긴 털이 난 커다란 검은 점 하나가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점 위의 긴 털도 같이 움직였다. 그는 혀를 차더니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 “이봐요, 젊은 총각.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이건 병원의 규정이라고요!”
  • “병원의 규정이라고요? 저 방금 다 봤거든요? 빈 병실 침대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입원을 못 하게 해요? 다들 한 번 말해보세요. 오늘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주임 의사를 찾아갈 거예요.”
  •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환자와 간호사들 그리고 구경하고 있던 의사들까지 전부 모여들게 하였다.
  • 이 층은 전부 입원 병실이라 많은 환자 가족들이 있었다. 다들 딱히 할 일이 없던 터라 자신의 병실 문 앞에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 임연은 나를 잡아당기며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 “내가 옆에 있으면 안전감이 있다고 했지? 그럼 나 한 번만 더 믿어봐.”
  • 임연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 “너 진짜 진주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네가 걔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걘 너한테 거짓말을 했을 수 있어.”
  •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주 선생도 그제서야 창피한지 도망치려 하였다.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 이 뚱뚱보가 어찌 나의 힘을 당해낼 수가 있겠는가! 그는 꽥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를 벽 쪽으로 밀어내며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
  • “이렇게 계속 안 된다고 억지만 부려서는 안 되죠. 오늘 똑바로 설명하지 않으면 절대로 못 가요! 다들 이 사람 좀 봐봐요. 다른 사람한테서 이득을 받고서 저희를 입원 못하게 병원에서 내쫓으려 하고 있어요!”
  •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아마 진작에 임연 아버지의 일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 선생한테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했다. 주 선생도 더 이상 예의를 갖추지 않고 반말을 했다.
  • “이 미친놈아, 이거 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능력이 있으면 가서 신고나 해.”
  • 주 선생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쓱 닦고는 머리를 숙여 또 도망가려 하였다. 쉽게 도망가게 내버려 둘 리가 없는 나는 다리를 내밀어 그의 무릎을 걸었다. 그 바람에 그는 앞으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 “아이고!”
  • 바닥에 드러누운 주 선생은 엉덩이를 부여잡고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몇몇 간호사들한테 큰소리로 말했다.
  • “내가 넘어진 게 안 보여? 얼른 와서 일으켜 세우지 않고 뭐해. 씨X!”
  • 평소에도 자주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는지 간호사들 모두 동시에 눈을 희번덕거렸다. 하지만 그의 위엄이 두려워 하는 수없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치지 못하겠고 말로도 나를 당해낼 수 없었던 주 선생은 뭔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너 방금 의사를 때리는 걸 찍어서 SNS에 올렸어. 두고 봐, 내가 널 유명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 그 말에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하였다. 내가 주 선생이 한 짓을 폭로하지도 않았는데 방귀 뀐 놈이 먼저 성낸다고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
  • 나는 팔짱을 낀 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 웃고 있는 나를 본 주 선생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 뜨며 말했다.
  • “왜 웃어?”
  • “네가 찍기를 기다리고 있잖아. 네가 찍으면 나도 찍으려고 그래. 병실 침대가 다 비어있는데 입원을 못 하게 하는 건 대체 무슨 도리야? 설마 이 병원이 너네 집안 것이라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네 이름이 주원식 맞지? 우리 다 SNS에 올려서 누가 먼저 유명해지는지 보자고.”
  • 주 선생은 뭔가 찍는 척하다가 갑자기 달려와 나의 핸드폰을 빼앗으려 하였다. 다행히 내가 꽉 쥐고 있어서 빼앗지는 못했고 오히려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제멋대로 돌진하는 멧돼지처럼 말이다.
  • “그만해요, 주 선생,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신 의사 맞아요? 환자가 이미 20일이나 입원을 했는데 왜 아직도 퇴원하지 않고 있죠? 환자한테 퇴원하라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오후에 다른 환자가 이 병실 침대로 입원한단 말이에요.”
  • 우리가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던 그때 사람들 속에서 가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경하던 사람들 그리고 나는 일제히 바깥을 내다보았다.
  • 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여자를 보기 전에 진주호가 먼저 눈에 띠였다. 검은 옷차림의 체격이 우람한 두 남자가 진주호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비록 이 두 검은 옷차림의 남자들과 겨뤄보지는 않았지만 어젯밤 진주호가 데리고 온 네 명의 건달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두 사람은 어두운 표정으로 진주호의 뒤를 따라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빛은 늑대처럼 사나워 보였다. 말수는 적었지만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무술을 배운 사람이거나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틀림없다.
  • 내가 쳐다보자 진주호는 무의식적으로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이내 사람 둘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 그들이 사람들 속을 빠져나온 뒤에야 앞쪽에 서있던 키가 작은 여인을 발견하였다. 40여 살 돼 보이는 그 여인은 삐쩍 마른 체격에 얼굴은 누른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눈빛을 보니 좋은 사람은 같지 않았다.
  • “연아, 너 이미 와있었구나. 이분은 나의 큰이모야.”
  • 진주호는 다급히 임연에게 소개해 주었다.
  • 이 자식 성질이 정말 급하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게다가 스스로 관계까지 실토를 했으니 자기가 한 짓이라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된 게 아닌가? 그리고 이런 수단으로 임연을 가진다고 해도 임연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그를 미워할 게 뻔한데 말이다.
  • 임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뇌에 빠졌다. 임강은 그녀를 슬쩍 밀며 다그쳤다.
  • “누나, 진짜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왔는데 대체 뭘 머뭇거리고 있는 거야?”
  • 주임의 가슴 쪽에 달린 이름표를 슬쩍 확인해보니 진효연이라 적혀있었다. 참 괜찮고 예쁜 이름이지만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할 얼굴이었다.
  • 진효연은 진주호보다 더 역어 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굳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 “주호야, 이 친구가 네 친구야? 하지만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특혜를 줄 수는 없어. 난 심장외과 입원부의 주임이야. 공적인 명목으로 주머니를 채울 수 없어.”
  • 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다들 어찌 된 상황인지 대충 알고 있었던 터라 얼굴에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흥분하며 임연을 도와주려 하였지만 그 자리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 가족이 있어서 입원을 하였거나 진효연의 사람들인지라 그 누구도 나서서 진효연의 체면을 깎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 임연은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
  • “진 주임님, 제발 부탁드려요. 저의 아버지 며칠만 더 입원하게 해주세요. 저 돈 있어요, 지금 바로 낼게요.”
  • 진효연은 정색하며 큰소리로 말했다.
  • “이게 지금 돈 문제로 보여요? 병원에는 병원의 규정이 있다고요. 이미 20일이나 넘게 입원했으면 다시 입원 수속을 밟아야 하는데 지금 병원 병실에 빈 침대가 없어 먼저 집으로 가서 빈 침대가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고요!”
  • 주 선생은 즉각 맞장구를 쳤다.
  • “그러니까 말이에요. 시골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기서 함부로 떠들고 있다니까요!”
  • 진주호에게 부탁을 하는 것 외에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임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주호가 갈수록 더 심한 요구를 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 진주호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임연의 그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고 임강도 옆에서 그녀를 계속 다그쳤다.
  • 임연이 절망에 빠진 그때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