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이 나를 저지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나는 주 선생의 앞길을 막아서고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선생님, 공명정대한 사람은 뒷공론을 하지 않는다고 하죠. 의사들은 부모의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해 준다고 하던데 지금 이러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주 선생이라는 이 의사는 나이는 50살 가까이 돼 보였고 입가에는 긴 털이 난 커다란 검은 점 하나가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점 위의 긴 털도 같이 움직였다. 그는 혀를 차더니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이봐요, 젊은 총각.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이건 병원의 규정이라고요!”
“병원의 규정이라고요? 저 방금 다 봤거든요? 빈 병실 침대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입원을 못 하게 해요? 다들 한 번 말해보세요. 오늘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주임 의사를 찾아갈 거예요.”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환자와 간호사들 그리고 구경하고 있던 의사들까지 전부 모여들게 하였다.
이 층은 전부 입원 병실이라 많은 환자 가족들이 있었다. 다들 딱히 할 일이 없던 터라 자신의 병실 문 앞에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임연은 나를 잡아당기며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옆에 있으면 안전감이 있다고 했지? 그럼 나 한 번만 더 믿어봐.”
임연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너 진짜 진주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네가 걔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걘 너한테 거짓말을 했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주 선생도 그제서야 창피한지 도망치려 하였다.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이 뚱뚱보가 어찌 나의 힘을 당해낼 수가 있겠는가! 그는 꽥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를 벽 쪽으로 밀어내며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
“이렇게 계속 안 된다고 억지만 부려서는 안 되죠. 오늘 똑바로 설명하지 않으면 절대로 못 가요! 다들 이 사람 좀 봐봐요. 다른 사람한테서 이득을 받고서 저희를 입원 못하게 병원에서 내쫓으려 하고 있어요!”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아마 진작에 임연 아버지의 일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 선생한테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했다. 주 선생도 더 이상 예의를 갖추지 않고 반말을 했다.
“이 미친놈아, 이거 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능력이 있으면 가서 신고나 해.”
주 선생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쓱 닦고는 머리를 숙여 또 도망가려 하였다. 쉽게 도망가게 내버려 둘 리가 없는 나는 다리를 내밀어 그의 무릎을 걸었다. 그 바람에 그는 앞으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아이고!”
바닥에 드러누운 주 선생은 엉덩이를 부여잡고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몇몇 간호사들한테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넘어진 게 안 보여? 얼른 와서 일으켜 세우지 않고 뭐해. 씨X!”
평소에도 자주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는지 간호사들 모두 동시에 눈을 희번덕거렸다. 하지만 그의 위엄이 두려워 하는 수없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치지 못하겠고 말로도 나를 당해낼 수 없었던 주 선생은 뭔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너 방금 의사를 때리는 걸 찍어서 SNS에 올렸어. 두고 봐, 내가 널 유명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 말에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하였다. 내가 주 선생이 한 짓을 폭로하지도 않았는데 방귀 뀐 놈이 먼저 성낸다고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웃고 있는 나를 본 주 선생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 뜨며 말했다.
“왜 웃어?”
“네가 찍기를 기다리고 있잖아. 네가 찍으면 나도 찍으려고 그래. 병실 침대가 다 비어있는데 입원을 못 하게 하는 건 대체 무슨 도리야? 설마 이 병원이 너네 집안 것이라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네 이름이 주원식 맞지? 우리 다 SNS에 올려서 누가 먼저 유명해지는지 보자고.”
주 선생은 뭔가 찍는 척하다가 갑자기 달려와 나의 핸드폰을 빼앗으려 하였다. 다행히 내가 꽉 쥐고 있어서 빼앗지는 못했고 오히려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제멋대로 돌진하는 멧돼지처럼 말이다.
“그만해요, 주 선생,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신 의사 맞아요? 환자가 이미 20일이나 입원을 했는데 왜 아직도 퇴원하지 않고 있죠? 환자한테 퇴원하라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오후에 다른 환자가 이 병실 침대로 입원한단 말이에요.”
우리가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던 그때 사람들 속에서 가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경하던 사람들 그리고 나는 일제히 바깥을 내다보았다.
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여자를 보기 전에 진주호가 먼저 눈에 띠였다. 검은 옷차림의 체격이 우람한 두 남자가 진주호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비록 이 두 검은 옷차림의 남자들과 겨뤄보지는 않았지만 어젯밤 진주호가 데리고 온 네 명의 건달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두 사람은 어두운 표정으로 진주호의 뒤를 따라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빛은 늑대처럼 사나워 보였다. 말수는 적었지만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무술을 배운 사람이거나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틀림없다.
내가 쳐다보자 진주호는 무의식적으로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이내 사람 둘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그들이 사람들 속을 빠져나온 뒤에야 앞쪽에 서있던 키가 작은 여인을 발견하였다. 40여 살 돼 보이는 그 여인은 삐쩍 마른 체격에 얼굴은 누른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눈빛을 보니 좋은 사람은 같지 않았다.
“연아, 너 이미 와있었구나. 이분은 나의 큰이모야.”
진주호는 다급히 임연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 자식 성질이 정말 급하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게다가 스스로 관계까지 실토를 했으니 자기가 한 짓이라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된 게 아닌가? 그리고 이런 수단으로 임연을 가진다고 해도 임연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그를 미워할 게 뻔한데 말이다.
임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뇌에 빠졌다. 임강은 그녀를 슬쩍 밀며 다그쳤다.
“누나, 진짜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왔는데 대체 뭘 머뭇거리고 있는 거야?”
주임의 가슴 쪽에 달린 이름표를 슬쩍 확인해보니 진효연이라 적혀있었다. 참 괜찮고 예쁜 이름이지만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할 얼굴이었다.
진효연은 진주호보다 더 역어 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굳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주호야, 이 친구가 네 친구야? 하지만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특혜를 줄 수는 없어. 난 심장외과 입원부의 주임이야. 공적인 명목으로 주머니를 채울 수 없어.”
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다들 어찌 된 상황인지 대충 알고 있었던 터라 얼굴에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흥분하며 임연을 도와주려 하였지만 그 자리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 가족이 있어서 입원을 하였거나 진효연의 사람들인지라 그 누구도 나서서 진효연의 체면을 깎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임연은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
“진 주임님, 제발 부탁드려요. 저의 아버지 며칠만 더 입원하게 해주세요. 저 돈 있어요, 지금 바로 낼게요.”
진효연은 정색하며 큰소리로 말했다.
“이게 지금 돈 문제로 보여요? 병원에는 병원의 규정이 있다고요. 이미 20일이나 넘게 입원했으면 다시 입원 수속을 밟아야 하는데 지금 병원 병실에 빈 침대가 없어 먼저 집으로 가서 빈 침대가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고요!”
주 선생은 즉각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시골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기서 함부로 떠들고 있다니까요!”
진주호에게 부탁을 하는 것 외에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임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주호가 갈수록 더 심한 요구를 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진주호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임연의 그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고 임강도 옆에서 그녀를 계속 다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