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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포르쉐

  • 나는 그가 곧 죽어도 체면을 차리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좀 더 괴롭히려고 그의 손목을 힘껏 비틀었다. 진주호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눈을 크게 부릅떴고 그 모습은 아주 우스워 보였다.
  • “일단 설명하자면, 나랑 임연은 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그날 내가 그녀를 구한 건 사실이었고 너도 이 일 때문에 더는 화내지 마. 그리고 넌 우리 회사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이곳에 왔잖아. 서로 감정싸움은 하지 말자고.”
  • 구경하는 사람이 점점 몰려들었지만, 그들의 눈에 우리 세 사람은 큰 갈등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선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가까이 서 있는 임연만이 고통에 눈시울을 붉힌 진주호를 똑똑히 보았다.
  • 나는 곁눈질로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윤 대표님을 발견했다.
  •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우리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거야. 나랑 임연은 너한테 사과할 테니, 계약은 이대로 진행하는 거지.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잖아?”
  • 진주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다.
  • “웃기지 마!”
  •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가로채며 나지막이 말했다.
  • “대답하지 않으면 T 시티에서 매장당하길 기다려.”
  • 나는 말을 마치고 그의 손목을 있는 힘껏 비틀었다. 진주호는 ‘웃기’까지만 얘기하다 톤이 확 바뀌면서 대답했다.
  • “걱정하지 마.”
  • 임연은 옆에서 똑똑히 지켜보았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입을 가린 채 몰래 웃다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정말 너무 예뻤다.
  • “비켜요.”
  • 인파를 비집고 들어선 윤 대표님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임연이 진주호의 뺨을 때렸지만, 진주호는 여전히 그들과 거래할 의향이 있다니! 아마 이 사건은 그의 상식을 뛰어넘었을지도 몰랐다.
  • 윤 대표님은 다시 확인하면서 물었다.
  • “진 사장님, 이 프로젝트는 정말 확정된 건가요?”
  • 진주호는 화를 억누르며 나한테 말했다.
  • “이거 놔, 약속할게!”
  • 우리 둘은 윤 대표님과 등지고 있었고, 그는 우리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나 역시 나지막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 “그럼 다행이고.”
  • 나는 그의 손목에서 손을 뗐고, 고통에 괴로워하던 그는 얼른 손목을 두 다리 사이에 낀 채 통증을 가라앉히려 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지만, 꼿꼿하게 정창을 차려입은 그가 이런 행동을 취하자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 임연은 웃으면서 나를 살짝 밀쳤다.
  • 나는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 “맞아요, 윤 대표님. 진 사장님은 말이 잘 통하네요. 아까 룸 안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는데, 그는 이미 저희랑 약속했죠. 어찌 됐든 우린 옛 동창이고 진 사장님은 관대한 사람이니까 이런 사소한 문제로 우리한테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죠? 다들 진 사장님을 아시죠? 진주호, JE 그룹 도련님이요.”
  • 나는 모두가 진주호의 정체를 알 수 있도록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가 약속을 어긴다면 개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일부러 그가 빼도 박도 못하게 몰아갔다.
  • 진주호는 화가 난 나머지 욕설을 참으며 나를 험상궂게 째려보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지만,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노발대발하면서 말했다.
  • “또 뭐?”
  • “주호, 계약서에 사인하고 가면 딱이네. 우리 윤 대표님이 계약서를 챙겨왔어.”
  • “계약서는 급한 게 아니야. 다음에 할게.”
  • 나는 일부러 그의 어깨를 꽉 쥐고 말했다.
  • “지금 사인 해. 사업에는 효율성이 생명이라고.”
  • 윤 대표님도 바보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눈치챈 그는 재빨리 계약서를 꺼냈다.
  • “맞아요, 진 사장님. 어차피 할 얘기는 거의 끝났으니까 계약을 체결하면 야근을 해서라도 열심히 할게요!”
  • 나는 말을 이어갔다.
  • “윤 대표님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진 사장님은 절대로 남을 속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계약한다고 하면 할 거예요. 사업은 신뢰가 제일 중요하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데, 만약 번복이라도 한다면 앞으로 T 시티에서 대체 어떤 사람이 그와 사업하고 싶겠어요? 저는 주호를 안 지 오래됐는데 그런 사람이 아니죠, 그렇지?”
  • 나는 몇 마디 말로 진주호를 높이 추켜세웠고, 그는 도망칠 수도, 발뺌할 수도 없어 계약서를 집어 들고는 그럴듯하게 두어 번 훑어보더니 서명했다.
  • 서명을 마친 그는 펜을 쥐고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고, 우리 네 사람은 화기애애한 척 룸으로 돌아갔다. 뭇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바로 가면을 벗어던진 진주호는 가방을 챙기고는 어두운 얼굴로 떠났다.
  • 그러나 나의 예상을 뛰어넘게도 윤 대표님이 전혀 개의치 않는 걸 보아하니, 진주호가 진심으로 우리와 협력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그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윤 대표님은 계약서를 들고 술 석 잔을 연이어 들이키면서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지 마. 내가 원하는 건 오직 사업이야. 어차피 계약은 그가 했고 JE 그룹은 발뺌할 수가 없어. 만약 계약을 위반하더라도 난 위약금을 두둑이 챙길 수 있지.”
  • 나와 임연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이 점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 윤 대표님은 꽤 희한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사업이 제일 중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임연에게 보너스를 주었고, 룸 안에서 바로 임연에게 이체했다.
  • “넌 이제 진주호한테 단단히 찍힌 셈이야. 나도 네가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난 배은망덕한 놈이 아니다. 이 랜드로버는 네가 일단 가지고 있어. 만약 언젠가 내가 널 자르면 그때 퇴직금이라도 챙겨줄게. 너, 넌 절대로 손해 볼 일이 없을 거야...”
  • “윤 대표님 혹시 취하셨어요? 아니면 먼저 우리 접에서 쉬세요.”
  • “여기, 여기가 너희 집이야? 우리 집에 돌아갈래.”
  • “하지만 전 대표님 집이 어딘지 몰라요. 집 주소가 뭐예요?”
  • 그는 한참 동안 멍하니 생각했지만, 주소가 떠오르지 않는지 제자리에 앉아서 웃기만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차할 장소를 찾았고, 생각지도 못하게 아파트 단지에 주차 공간이 전혀 없었다.
  • 나는 운전 중에 무심코 고개를 돌려 임연을 바라봤고, 마침 고개를 돌린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나의 얼굴은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척했다. 비록 나는 얼른 시치미를 뗐지만, 분위기는 이미 매우 어색해졌고 그녀가 무조건 무언가를 알아차렸을 거로 생각했다.
  • 바로 이때, 뒷좌석에 있는 윤 대표님이 입을 뗐다.
  • “너 이 자식, 너, 내가 너를 속인다고 생각하지 마. 이 차는 완전 신형 랜드로버야. 진짜 비싸지. 이 차를 끌고 다니면 나름 체면이 선다고. 기름은 네가 알아서 넣어... 너처럼 가난한 놈이 이렇게 좋은 차를 몰다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지도 모르지.”
  •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 “윤 대표님, 감사합니다. 일단 똑바로 앉으세요. 저 먼저 내려가서 주차할 공간을 만들고 오겠습니다.”
  • 나는 주차할 장소를 도무지 찾을 수 없어 내 포르쉐를 옮길 수밖에 없었고, 억지로 주차할 공간을 하나 만들어냈다. 사실 이 포르쉐는 한훈의 차였다. 나는 아직 차를 살 겨를이 없었고, 한훈은 자기가 가진 차 중에서 제일 무난한 차를 나한테 넘겨줬다.
  • 차를 옮기고 나서 나는 운전석에 올라탔고, 임연과 윤 대표님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 “다들 왜 그런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죠?”
  • “너, 너, 너 포르쉐를 몰고 다녀? 아까 말하지 그래?”
  • 윤 대표님의 목소리는 약간 흔들렸다.
  •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 “제 친구 차에요.”
  • “오, 어쩐지. 포르쉐는 기름을 많이 먹어. 너, 내가 준 랜드로버를 타고 다녀도 나쁘지 않아. 랜드로버도 포르쉐 못지않다고.”
  • 윤 대표님은 제 발이 저린 듯 고개를 움츠렸다. 나는 백미러로 그를 쳐다봤고, 이 뚱뚱한 악덕 기업주가 꽤 재미있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한훈이 준 자동차가 뜻밖에도 내 체면을 세워주게 될 줄은 더욱 생각지도 못했다.
  • 나는 윤 대표님을 내 침대에 눕혔고 그는 돼지처럼 쿨쿨 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임연을 그녀의 집에 데려다주었다. 임연의 집은 바로 우리 집 맞은편에 있었다.
  • “잠깐, 장우야!”
  • 내가 돌아서려는 순간, 임연은 갑자기 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