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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담가의 작은 삼촌

  • 담우석의 검은색 눈동자에 한줄기의 빛이 일렁였다.
  • 그는 곧바로 신사답게 뒤로 돌았지만, 여자의 고혹적인 몸매는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고 말았다.
  • 주설화는 서둘러 문 뒤로 숨어 남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채 입을 열었다.
  • “난… 난 이안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왜 여기에—”
  • 주설화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이 남자가 도대체 왜 난데없이 담가에 나타났지?
  • 설마 그는 담가의 사람인 건가?
  • 이때, 담이안의 외마디 비명이 문밖에서 전해지며 주설화의 의문에 해답을 제시했다.
  • “작은 삼촌? 작은 삼촌이 왜 집에 있어?”
  • 뭐? 담이안의 작은 삼촌이라고?
  •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다니.
  • 주설화는 그 순간 너무나도 창피하여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 “난 집에 있으면 안 되나?”
  • 담우석이 문짝을 슥 훑으며 되묻자 담이안은 곧바로 해명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가 분명 오늘 작은 삼촌이 소개팅을 하러 간다 했었거든, 아하하… 아, 맞다, 작은 삼촌, 여기는 내 절친 주설화, 두 사람 만난 적 있었나?”
  • 어디 만나기만 했겠어?
  • 담이안은 방 안에 들어서며 말을 이었다.
  • “설화야, 여기는 우리 작은 삼촌…”
  • 문 뒤로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주설화가 부끄러워 온몸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을 발견한 담이안은 덩달아 민망해져 다급히 뒤돌아서 몸으로 문을 가로막았다.
  • “저기, 작은 삼촌. 내 친구가 지금 상황이 좀 그러네. 아하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 잠시 고민에 잠긴 듯, 담우석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 “아니, 그냥 며칠 전에 출장을 갔다가 네 선물을 샀거든.”
  • 담이안은 그가 건넨 상자를 받고 곧장 감사 인사를 전했다.
  • 담우석 또한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온 담이안은 주설화를 보자마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푸하하하…”
  • 주설화는 자신이 비극적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 하지만 이토록 민망한 상황 앞에서 뭐라 더 할 말도 없어서 두 사람은 더 이상 이 화제를 꺼내지 않았다.
  • 주설화는 담이안의 옷 스타일이 도무지 적응이 안 되어 갈아입은 옷을 쭈뼛쭈뼛 잡아당겼다.
  • 짧은 끈 나시에 옆이 트인 롱스커트를 입으니 잘록한 허리라인이 훤히 드러났다.
  • “이건 좀 너무 시원하지 않니?”
  • “밖이 이렇게 더운데 당연히 시원하게 입어야지. 야, 시끄럽고, 예쁜 몸매는 원래 드러내야 하는 거야. 어차피 남자도 없고 나만 구경하는 건데 뭐 어때?”
  • 주설화는 투덜거리며 되물었다.
  • “그럼 밖에 있는 네 삼촌은 남자 아니야?”
  • 하지만 담이안은 오히려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 “남자 맞지, 근데 삼촌이잖아. 너도 똑같이 삼촌이라고 불러야 돼. 어르신이라고, 어르신. 그러니까 괜찮아. 게다가 작은 삼촌이 어떤 여자를 못 만나봤겠어? 삼촌한테 여자는 다 거기서 거기일걸? 무엇보다 넌 꼬맹이잖아. 그리고 삼촌은 지금쯤 이미 집에서 나갔을지도 몰라.”
  • 주설화는 담이안의 성화에 못 이겨 아래층으로 끌려갔다.
  • 그러나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때마침 계단을 내려오고 있던 담우석과 맞닥뜨렸다.
  • 주설화는 또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미 밖으로 나갔다고 하지 않았어?
  • “작은 삼촌, 가려고?”
  • 담우석의 검은색 눈동자가 주설화를 향하고 그녀의 허리와 트인 치마 사이로 드러난 허벅지를 알듯 말듯 하게 슥 훑고 지나갔다.
  • 주설화는 저도 모르게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 그녀는 담우석을 힐끔 쳐다봤지만, 마치 조금 전의 일은 그녀의 착각이라는 듯 담우석의 눈빛은 오히려 무척이나 담담했다.
  • 집을 나서려던 담우석은 불현듯 마음이 바뀌어 발걸음을 돌려 소파로 향했다.
  • 긴 다리를 꼬고 나른하게 앉아있는 그를 보며 주설화는 오히려 더더욱 긴장하기 시작했다.
  • 왜 아직도 안 가는 거야?
  • 담이안은 주설화가 긴장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녀가 낯선 어른을 앞에 두고 긴장하는 것이라 생각해 분위기를 풀어보려 눈치껏 먼저 입을 열었다.
  • “설화야, 긴장하지 마. 나한테 삼촌이면 너한테도 삼촌인데, 안 그래 작은 삼촌?”
  • 담이안은 담우석을 힐끔 바라보며 팔로 주설화를 툭 쳤다.
  • “설화야, 그냥 나 따라 작은 삼촌이라 부르면 돼.”
  • 눈썹을 추켜세우던 주설화는 담우석의 검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눈을 내리깔고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입을 열었다.
  • “작은 삼촌.”
  • 담우석은 나지막이 대답했다.
  • “네.”
  • 주설화는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고 담이안도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 “아, 설화야, 그나저나 이번에는 얼마나 있어야 돼? 너 일 때문에 왔다며.”
  • “최소 3개월, 반년 정도 걸릴 수도 있고.”
  • “정말? 꽤 오래 있네? 진짜 잘 됐다. 근데 난 네가 앞으로 쭉 서울에서 지냈으면 좋겠는데, 안 가면 안 돼? 설화야, 일은 어디에서든 다 할 수 있잖아. 나랑 함께 서울에서 지내자, 응? 앞으로 여기에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면 쭉 나랑 함께 있을 수 있잖아.”
  • 담이안은 주설화가 반박하기도 전에 또 뭔가 떠오르기라도 한 듯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 “그래, 그냥 여기에서 결혼하고 애도 낳는 거야. 헤헤, 작은 삼촌, 주위에 좋은 신랑감 많지 않아? 우리 설화한테 소개 좀 시켜줘.”
  • 그 대담한 제안에 주설화는 하마터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 담이안이 부탁한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부탁을 받은 대상 때문에 말이다.
  • 주설화는 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낯빛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 그녀는 담우석을 바라볼 용기가 없었고 담우석이 지금쯤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추측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 하지만 담이안은 주설화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이 일을 반드시 성사시키려는 듯 흥미진진한 모습이었다.
  •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해 담우석과의 의논을 이어갔다.
  • “작은 삼촌, 우리 설화 얼굴도 예쁘고 능력도 있고, 또 얼마나 똑똑한데…”
  • 담이안은 마치 주설화가 친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 담우석은 담이안의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그 한 쌍의 검은색 눈동자로 단 하나의 거리낌도 없이 마치 심사라도 하듯 주설화를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 다만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오직 자신을 피하는 듯한 주설화의 눈빛과 그녀의 정수리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 담우석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 “주설화 씨의 이상형은 어떻게 되죠?”
  • “아니요, 아닙니다. 전 아직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담우석 씨.”
  • “오해?”
  • 담우석의 차가운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 담이안이 몇 마디 덧붙이려는 찰나, 주설화는 그대로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꽉 붙잡았다.
  • 그녀의 팔을 잡고 있던 악력이 얼마나 셌던지, 담이안은 순간적인 통증에 고개를 돌려 주설화를 힐끔 쳐다봤다.
  • 만약 담이안이 또다시 헛소리를 했다가는 주설화는 개망신을 면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 주설화는 서둘러 해명했다.
  • “전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연애를 서두르고 싶지 않아요. 담우석 씨, 신경 써주셔서 고맙지만 이안이의 말은 그냥 무시하세요. 전 아직 일에만 몰두하고 싶거든요.”
  • 담이안은 절친의 눈짓에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잠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담우석은 입꼬리를 쓱 올리며 대답했다.
  • “주설화 씨는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사람이니, 당연히 최고의 남자를 골라야겠죠. 주위에 꽤나 괜찮은 신랑감들이 몇 명 있는데 나중에 시간이 되면 약속 한번 잡죠.”
  • 주설화는 순간 멍해졌다.
  • 아니, 혹시 이 남자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 굳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추진시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