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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연장자에 대한 큰 결례

  • 주설화는 얼빠진 상태였다. 실망이고 자시고 따질 정신이 없었다.
  • 또 한 번 그녀가 고마움을 전해야 할 일이 생긴 건가?
  • “고마워요, 담우석 삼촌. 저…”
  • 그녀는 말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담우석은 여전히 냉랭한 얼굴이었고 은은한 분노를 알게 모르게 내뿜고 있었다. 주설화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그녀는 담우석의 품에 안겨 그의 방으로 가게 되었고 그는 얇은 담요로 그녀를 꽁꽁 싸맸다. 뒤따라 오던 담이안은 의사를 데리고 와서 주설화의 상태를 살피게 했다.
  • 그리고 담우석은 내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그의 그윽한 검은 눈동자는 시종일관 다소 창백하지만 정교한 그녀의 작은 얼굴에 닿아 있었다.
  • 방안의 공기는 무딘 담이안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삼촌이 내뿜고 있는 짙은 냉기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 담이안은 괜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 일은 그녀의 잘못이 명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떠난 뒤 그녀는 바로 사과를 건넸다.
  • “미안해, 설화야. 내가 널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를 살폈어야 했어. 내 잘못이야…”
  • “담이안!”
  • 주설화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담우석이 한보 앞서 무겁고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두운 빛의 검은 눈동자가 쏘아보자 담이안은 반사적으로 심장이 철렁하며 움츠러들게 되었다.
  • “사람 목숨이야!”
  • 담우석은 결국 심한 말은 뱉지 못했다. 하지만 짧은 여섯 글자의 한마디 말에 충분한 무게가 실려 있는 것도 확실했다.
  • 담이안은 눈시울을 붉히며 주설화를 쳐다보다 불현듯 그녀에게 폭 안기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 “미안해, 설화야. 이제 다시는 널 소홀히 하는 일 없을 거야…”
  • 주설화는 한껏 놀란 모습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내보냈다.
  • “담우석 삼촌, 이 일은 이안이 잘못이 아니에요. 그런 심한 장난을 칠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거예요. 삼촌도 화내지 마시고요.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 주설화의 사과는 담우석의 분노를 삭히지 못했고 되레 그의 어둠이 깃든 눈동자에 주설화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저 입술을 오므리게 되었다.
  • 담우석은 그녀를 깊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고 테이블 위의 담배를 챙겨서 바로 자리를 떴다.
  • 담우석이 떠난 뒤 담이안은 눈물을 닦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설화야, 진짜 잘못했어. 작은 삼촌은 거의 사람을 잡아먹을 기세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네가 친조카인 줄 알겠어.”
  • “진짜 괜찮아. 이 일은 네 잘못이 아닌 거잖아. 나도 방심했어. 대신 이번 일이 있고 나서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네.”
  • “좋아, 내가 가르쳐 줄게.”
  •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담이안은 주설화더러 우선 쉬고 있으라고 했다. 그녀는 나가서 사태를 벌인 녀석에게 따질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 사고에서 살아남은 주설화는 사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단지 담이안 앞에서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 혼자 있는 지금 그녀는 우선 몸을 일으켜 앉았고 그로 인해 얇은 담요는 허리춤으로 흘러내리게 되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귓불을 잡은 채 스스로를 다독였다.
  • “설화는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은 거야…”
  • 몇 번이고 되뇌어야만 스스로에게 위안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 그렇게 주문을 되뇌다 고개를 든 그녀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있는 담우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방금 전 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던 복장 그대로였고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다. 미처 갈아입지 못한 모습이었다.
  • 하지만 물에 빠진 생쥐꼴의 차림에도 그의 고귀한 아우라와 사람을 홀리는 성숙미는 가려지지 않았다.
  • 주설화는 눈을 깜빡이다 순식간에 작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재빨리 손가락을 내렸다. 하지만 어안이 벙벙했던 탓에 작은 면적의 천 쪼가리로 된 비키니가 그녀의 하얀 속살을 가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 담우석의 타오르던 검은 눈동자가 서서히 어두워지던 그때에야 그의 초점이 잡힌 지점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 주설화는 크게 깨닫고 고개를 숙여 담요를 끌어와 제 몸을 가렸고 그녀의 얼굴은 하도 빨개서 피가 나는 듯한 꼴이 되었다.
  • 그녀는 나지막하게 소리를 내어 물었다.
  • “담우석 삼촌, 혹시…더 볼일 있으신가요?”
  • “여긴 내 방인데.”
  • “아…”
  • 주설화는 문득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침대에서 내려갈 채비를 했다.
  • 그러나 그녀가 침대 가장자리를 벗어나기도 전에 담우석이 재빠르게 걸어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그녀의 어깨를 눌러버렸다. 이어 몸을 기울여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 “담…담우석 삼촌!”
  • 주설화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짙은 검은색의 긴 속눈썹은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팔랑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또 어찌나 사람을 홀리는지.
  • 담우석의 검은 눈동자는 날카로움이 스치듯 반짝였다. 그는 자세를 고치며 입을 열었다.
  • “누워있어!”
  • 이어 그는 옷장 안에 있던 옷을 꺼낸 뒤 빠르게 욕실로 향했다.
  • 주설화는 욕실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스크럽 유리는 남자의 실루엣을 흐릿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 아아아아…
  • 그녀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쑥스러움에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그가 씻는 틈을 타 담요를 두른 채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
  •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고 있었고 동시에 속으로 자책하고 있었다. 주설화, 그만 좀 생각해. 윗분한테 너무 큰 결례를 범하는 마땅치 않은 생각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