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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내가 너무 속 좁게 굴었어요

  • 주설화의 동그란 얼굴에는 교활한 미소가 걸렸다.
  • 그녀와 “친구”로 더 깊은 인연을 맺으려던 남자들은 옆에 있던 담우석을 보자마자 발걸음을 멈췄다.
  • “기분 좋은가 봐요?”
  • 담우석은 손에 잔을 들고 있었고 검은 눈동자의 빛은 주설화를 향하고 있었다.
  • 주설화는 웃으며 답했다.
  • “네. 삼촌을 만나게 돼서 너무 기분이 좋네요!”
  • “허-”
  • 담우석은 피식 웃었다.
  • “내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었나?”
  • “살짝 그렇긴 하죠. 근데 삼촌이 좋은 사람인 걸 아니까요. 그리고-”
  • 주설화는 잠시 멈칫하다 결국은 성실할 것을 선택했다.
  • “담우석 삼촌, 전에는 제가 너무 민감했어요. 너무 속 좁게 굴었죠. 죄송했어요.”
  • 몹시 성의를 담은 사과였다.
  • 주설화 그녀는 잘잘못에 대해서 대담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잘못을 했고 오해를 했으니 사과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었다.
  • 마주하지 못할 건 없었다.
  • 담우석은 다소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다.
  • 잔을 흔들고 있는 그는 눈이 반짝였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 잠시 침묵을 지키고 난 뒤 그는 입을 열었다.
  • “그래요.”
  • 이건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의미인가?
  • 주설화는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담우석은 정말로 좋은 사람인 게 맞았다. 겉으로는 냉랭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실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 그녀의 오해에 대한 사과를 그가 별다른 말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건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 앞으로 그녀는 진심을 담아 담우석 삼촌, 이 남자를 존경하기로 했다.
  • 담우석 역시 주설화의 미소를 따라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 “참, 그리고 있잖아요, 고마워요 담우석 삼촌.”
  • 담우석은 미간을 치켜 올렸고 언뜻 깨달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그녀가 무엇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 “뭐가 고마운데요?”
  •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게 도와주신 거 말이에요. 저 남자들 삼촌을 보고 차마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있잖아요.”
  • 주설화는 제 행동에 뿌듯해하고 있었다. 얼마나 똑똑한 선택이었나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담우석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 “저도 고맙네요.”
  • “네?”
  • 주설화는 단번에 알아챘지만 약간의 고민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 “설마 아니죠? 저 이안이 친구고 삼촌 조카뻘이잖아요. 언니들이나 이모들이 오해할 일은 없을 거예요. 삼촌의 감사 인사는 차마 받을 수 없네요. 지난번에 저 때문에 이미 그 여자분과의 만남에 차질이 생겼었잖아요. 만약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다시 한번 폐 끼치는 일이 생긴다면 제 과오는 그리 간단한 수준이 아닌 게 되는 거예요. 전 이만 가보는 게 좋겠어요.”
  • 주설화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왜냐면 담우석이 불쑥 그녀의 손목을 잡았으니까.
  •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두 사람의 동작으로 인해 차가운 숨을 들이마시게 되었다.
  • 담이안마저 그 상황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대로 영문도 모른 채 주설화의 목청이 높아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주설화는 고개를 돌려 담우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삼촌, 이렇게 잡고 계셔도 소용없어요. 제가 방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저 같은 조카뻘은 잡고 있어봤자 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거예요. 허허…”
  • 모든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담우석은 웃을 듯 말 듯 긴가민가한 얼굴을 한 채 손을 내려놓았다. 그런 두 사람 앞으로 담이안이 다가왔다.
  • “작은 삼촌, 이렇게나 많은 여자 중에 맘에 드는 사람은 없어? 할머니가 나한테 신신당부 하셨거든. 꼭 한 명이라도 고르게 하라고.”
  • 담우석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담이안의 설득을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 그 모습에 담이안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낮은 소리로 주설화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 “우리 작은 삼촌 뭔가 특별한 취향이 있는 것 같지 않아?”
  • “풉…”
  • 주설화는 다소 흥분한 탓에 통제하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녀는 차마 고개를 들어 담우석을 쳐다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괜히 헛기침만 해댔다.
  • 담이안은 머쓱하게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 “너도 웃고만 있을 때가 아니야. 아까 그 친구들이랑 왜 이야기 좀 더 나누지 그랬어. 가자, 오늘 내가 기필코 네 집순이 병을 고쳐버려야지.”
  • 그녀는 주설화를 사람들 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젊은 남녀들은 활력이 넘치는 싱그러운 청춘의 모습을 선사하고 있었다.
  • 담우석의 검은 눈은 실눈이 되었다. 이제 정말 세대 차이라도 생긴 걸까?
  • *
  • 장예원은 눈빛이 어두웠다. 그녀는 질투 어린 눈으로 재벌가의 아가씨들 사이를 누비는 주설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 촌년 주제에 언제부터 재벌가의 아가씨, 도련님들한테 들러붙은 거야?
  • 그녀는 오늘 저녁 파티 초대장을 구하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썼다. 그렇게까지 해서야 참석한 파티에서 망할 주설화 계집애를 보게 된 것이었다.
  • 그러니 그 영감탱이를 성에 차지 않아 하는 거지. 더 큰 목표가 있었던 거네.
  • 그녀는 음험하고 악랄한 눈을 번뜩였고 주설화가 화장실을 가는 모습을 보더니 재빨리 따라붙었다.
  • 주설화가 화장실로 들어서자 뒤에 있던 그녀는 곧장 힘을 실어 그녀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화장실 문을 잠가버렸다.
  • 그녀는 휘청거리며 고개를 돌렸고 눈앞에는 장예원이 서있었다.
  • 주설화는 눈썹을 찌푸렸다.
  • “네가 왜 여기서 나와?”
  • “흥, 난 서울 명문가의 아가씨인데 여기 나타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 그런데 너 말이야, 너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흥, 우리 집에서는 그리 고고한 척하더니 어쩜 돌아서자마자 이리 세속적이게 굴어? 그런데 너 야망도 크다. 조 사장을 성에 차하지 않더니 여기서 더 젊은 도련님 찾으려고 그랬던 거였어? 허허…주설화, 너 설마 진짜로 그 얼굴 하나로 명문가에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너 같은 거지년은 몸이나 대주고 그걸로 돈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대우를 받는 셈이야. 높은 가지에 오를 생각하지도 마. 꿈 깨라고 너.”
  • 장예원은 입만 열면 본인이 명문가의 아가씨니 뭐니 해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 밖으로 뱉어지는 말들은 참으로 저질스러우면서도 듣기 거북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 이런 사람과는 이야기를 더 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었기에 주설화는 그녀와 말다툼을 하는 것조차 꺼렸다.
  • 주설화는 냉담한 모습으로 입을 닫고 있었고 세면대 앞으로 걸어간 그녀는 손만 씻을 뿐이었다.
  • “주설화, 너 지금 찔리는 거지? 그래서 할 말이 없는 거야, 그치? 이제 네 분수를 알게 된 거야? 넌 그냥 얌전하게 조 사장 그 영감탱이한테 시집이나 가. 그럼 본처라도 되어볼 수 있는 거잖아. 도련님들한테 빌붙어 기어오를 생각은 하지도 마. 그건 헛된 망상일 뿐인 거야. 넌 그냥 기생으로 살아갈 팔자인 거지. 알아들어?”
  • 주설화는 손을 닦았다. 그리고 장예원이 주절대는 것을 끝내자 주설화는 불현듯 몸에 지닌 액세서리들을 풀기 시작하더니 전부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 이어 장예원 앞으로 걸어간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렸다.
  • “짝!”
  • 뺨을 때리는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힘을 제대로 실은 귀싸대기였다.
  • 주설화는 어안이 벙벙한 모습의 장예원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열었다.
  • “입에 걸레를 물었나. 너의 아빠 대신 제대로 혼내줘야 쓰겠어. 그 더러운 입으로 서울 명문가 아가씨라는 타이틀을 붙여? 가당치도 않아.”
  • “감히 날 때려? 주설화, 죽여버릴 거야!”
  • “너야말로 망할 년인 거지! 때렸는데 뭐 어쩔 거야? 세게 때리지도 않았어. 어디 한 번 다시 돌려주던지. 우리 또다시 제대로 한 번 싸워보는 거야. 미친년들처럼 제대로 싸워보자고. 밖에 있는 아가씨들이나 도련님들한테 다 보여줘. 그러고 나서도 네가 서울 명문가 아가씨라고 인정해주는지 한 번 볼까?”
  • “너-”
  • 이 말은 확실하게 장예원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차마 명문가 아가씨들과 도련님들 앞에서 정말로 쌈박질을 할 용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 하지만 그녀의 음험하고 매서운 눈은 주설화에 대한 살기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