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말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담우석은 여전히 냉랭한 얼굴이었고 은은한 분노를 알게 모르게 내뿜고 있었다. 주설화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담우석의 품에 안겨 그의 방으로 가게 되었고 그는 얇은 담요로 그녀를 꽁꽁 싸맸다. 뒤따라 오던 담이안은 의사를 데리고 와서 주설화의 상태를 살피게 했다.
그리고 담우석은 내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그의 그윽한 검은 눈동자는 시종일관 다소 창백하지만 정교한 그녀의 작은 얼굴에 닿아 있었다.
방안의 공기는 무딘 담이안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삼촌이 내뿜고 있는 짙은 냉기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담이안은 괜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 일은 그녀의 잘못이 명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떠난 뒤 그녀는 바로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설화야. 내가 널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를 살폈어야 했어. 내 잘못이야…”
“담이안!”
주설화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담우석이 한보 앞서 무겁고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두운 빛의 검은 눈동자가 쏘아보자 담이안은 반사적으로 심장이 철렁하며 움츠러들게 되었다.
“사람 목숨이야!”
담우석은 결국 심한 말은 뱉지 못했다. 하지만 짧은 여섯 글자의 한마디 말에 충분한 무게가 실려 있는 것도 확실했다.
담이안은 눈시울을 붉히며 주설화를 쳐다보다 불현듯 그녀에게 폭 안기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설화야. 이제 다시는 널 소홀히 하는 일 없을 거야…”
주설화는 한껏 놀란 모습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내보냈다.
“담우석 삼촌, 이 일은 이안이 잘못이 아니에요. 그런 심한 장난을 칠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거예요. 삼촌도 화내지 마시고요.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주설화의 사과는 담우석의 분노를 삭히지 못했고 되레 그의 어둠이 깃든 눈동자에 주설화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저 입술을 오므리게 되었다.
담우석은 그녀를 깊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고 테이블 위의 담배를 챙겨서 바로 자리를 떴다.
담우석이 떠난 뒤 담이안은 눈물을 닦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설화야, 진짜 잘못했어. 작은 삼촌은 거의 사람을 잡아먹을 기세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네가 친조카인 줄 알겠어.”
“진짜 괜찮아. 이 일은 네 잘못이 아닌 거잖아. 나도 방심했어. 대신 이번 일이 있고 나서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네.”
“좋아, 내가 가르쳐 줄게.”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담이안은 주설화더러 우선 쉬고 있으라고 했다. 그녀는 나가서 사태를 벌인 녀석에게 따질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주설화는 사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단지 담이안 앞에서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혼자 있는 지금 그녀는 우선 몸을 일으켜 앉았고 그로 인해 얇은 담요는 허리춤으로 흘러내리게 되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귓불을 잡은 채 스스로를 다독였다.
“설화는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은 거야…”
몇 번이고 되뇌어야만 스스로에게 위안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 그렇게 주문을 되뇌다 고개를 든 그녀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있는 담우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방금 전 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던 복장 그대로였고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다. 미처 갈아입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생쥐꼴의 차림에도 그의 고귀한 아우라와 사람을 홀리는 성숙미는 가려지지 않았다.
주설화는 눈을 깜빡이다 순식간에 작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재빨리 손가락을 내렸다. 하지만 어안이 벙벙했던 탓에 작은 면적의 천 쪼가리로 된 비키니가 그녀의 하얀 속살을 가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담우석의 타오르던 검은 눈동자가 서서히 어두워지던 그때에야 그의 초점이 잡힌 지점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주설화는 크게 깨닫고 고개를 숙여 담요를 끌어와 제 몸을 가렸고 그녀의 얼굴은 하도 빨개서 피가 나는 듯한 꼴이 되었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소리를 내어 물었다.
“담우석 삼촌, 혹시…더 볼일 있으신가요?”
“여긴 내 방인데.”
“아…”
주설화는 문득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침대에서 내려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그녀가 침대 가장자리를 벗어나기도 전에 담우석이 재빠르게 걸어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그녀의 어깨를 눌러버렸다. 이어 몸을 기울여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담…담우석 삼촌!”
주설화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짙은 검은색의 긴 속눈썹은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팔랑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또 어찌나 사람을 홀리는지.
담우석의 검은 눈동자는 날카로움이 스치듯 반짝였다. 그는 자세를 고치며 입을 열었다.
“누워있어!”
이어 그는 옷장 안에 있던 옷을 꺼낸 뒤 빠르게 욕실로 향했다.
주설화는 욕실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스크럽 유리는 남자의 실루엣을 흐릿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아아아아…
그녀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쑥스러움에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그가 씻는 틈을 타 담요를 두른 채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고 있었고 동시에 속으로 자책하고 있었다. 주설화, 그만 좀 생각해. 윗분한테 너무 큰 결례를 범하는 마땅치 않은 생각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