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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담우석의 의도가 불분명한 자리 마련

  • 주설화는 흠칫 놀랐다. 이건 뭐지?
  • 이렇게 늦은 시간에 초대하라고? 왜 이리 찝찝한 거지?
  • 아무리 연장자라 해도 집에 초대할 만큼 두 사람 사이의 친분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 “삼촌, 제가 오늘 이사를 해서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어요. 아니면…”
  • 주설화가 거절하려고 망설이던 그때 담우석은 이미 입가에 번졌던 미소를 거두고 시크한 모습으로 회복한 상태였다.
  • “알겠어요. 들어가 봐요. 출발합시다!”
  • 차창이 서서히 올라갔고 주설화는 그 자리에서 차가 떠나는 것을 눈으로 배웅했다.
  • 차가 자취를 감추고 나서야 그녀는 놀란 가슴을 달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속으로는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설마 그녀의 거절이 담우석을 기분 나쁘게 만든 건가?
  • 혹시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초대라도 해야 하는 건가?
  • 사실 이곳은 담우석이 제공한 거처였으니 집으로 잠시 초대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손윗사람이었으니 별다른 뜻을 품었을 리도 없었다.
  • 주설화는 속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다음에 좋은 차라도 준비해서 담우석 삼촌을 대접해야겠다고 말이다.
  • 주설화는 지난번 식사 자리에서 만났던 투자자 왕 대표가 만나자고 약속을 잡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 물론 투자자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좋을 게 없었기에 그녀는 왕 대표를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그 뒤에 바로 편집장 문희연에게 왕 대표와 만나는 자리에 함께 가자고 연락을 했다.
  • 문희연은 전화로 동의한 상태였지만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문희연은 그림자조차 비추지 않았다.
  • 왕진은 나름 학문이 깊고 의젓한 중년 남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외모는 그리 출중한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상냥한 모습이었다.
  • “설화 씨, 기다릴 거 없어. 방금 희연이한테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급한 일 생겨서 못 온다고 했어.”
  • 주설화는 다소 불편한 마음에 점점 더 경계하기 시작했다.
  • 왕진은 그녀의 경계를 눈치챘는지 피식 웃었다.
  • “설화 씨, 무서워할 거 없어. 내가 설화 씨를 좋게 보고 있고 더 많이 알아가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요하고 그러지는 않아. 우리 친구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
  • 주설화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가 하는 말들을 계속해서 들었다.
  • “그냥 식사하는 자리야. 그리고 이 기회에 설화 씨 시나리오에 대해서 작은 건의 같은 걸 얘기해 주고 싶은데 한 번 들어볼래?”
  • “네, 왕 대표님. 말씀하세요.”
  • 주설화는 깍듯하면서도 어색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왕진과 최대한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 왕진은 그런 그녀를 가소롭게 여기며 조급해하지 않았다.
  • 주설화는 아름다운 데다가 재능까지 구비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제힘으로 돈을 벌 줄 아는 사람이었고 별다른 욕망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고고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손에 넣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현시점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인내심이었다.
  • 그 뒤로 왕진은 그녀에게 적지 않은 건의를 얘기해 주었다. 그저 무심하게 뱉는 말들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의견이었다. 주설화는 속으로 놀랍게 생각하면서도 허심하게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 주설화의 경계심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 두 사람의 식사가 끝나고 대화도 마쳤을 때 왕진은 주설화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사양을 했고 그 사이 두 사람은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 “담 대표님?”
  • 옆에 있던 왕진은 갑자기 목소리가 변해버렸다. 예상 밖의 상황에 주설화는 놀란 눈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고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담우석이 서있었다.
  • 다만 오늘의 그는 혼자가 아니라 옆에 노련하고 지적인 타입의 아름다운 여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 담우석은 살짝 고개를 끄덕했다. 올블랙으로 차려입은 그는 고귀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 왕진은 경외의 자세를 취했다. 남들 앞에서 기세등등하던 사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 주설화는 속으로 비웃었다. 엷고 서늘한 시선이 그녀를 향했고 그 시선 끝의 주설화는 인사를 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 그러던 중 왕진이 먼저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 “담 대표님, 이쪽은 설화 씨에요. 제 여자친구입니다.”
  • “네?”
  • 주설화는 반박하려 했다.
  • “아니, 저 아니…”
  • “허허, 아직 구애하는 중입니다만.”
  • 왕진의 대답에 주설화는 기가 막혔다.
  • 담우석은 그 모습에 눈썹을 치켜 올렸다. 주설화는 그의 눈빛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 하지만 담우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여자는 재빨리 담우석 뒤로 따라붙었다.
  • 왕진은 영문을 몰랐던 탓에 주설화는 내팽개쳐 두고 두 사람 뒤를 쫓아갔다.
  • 그 기회를 틈 타 주설화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 주설화는 이 일이 이대로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 그 뒤로 주설화는 며칠 내내 외출하지 않고 집에 박혀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그러다 배달 음식을 시킨 바로 다음 순간에 담우석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 낯선 전화번호에 막 전화를 받은 주설화는 누구인지 묻기까지 했다.
  • “저예요. 지금 XX 레스토랑으로 와요.”
  • 말을 끝낸 담우석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 주설화는 한참 동안이나 생각을 거치고 나서야 담우석의 목소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긴 그녀에게 명령조의 말투를 쓰는 사람은 담우석 뿐이었다.
  • 그녀는 한참이나 망설이다 결국은 옷을 갈아입고 레스토랑으로 향하게 되었다.
  • 여전히 그 룸에 그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담우석을 제외하고 젊은 남자 한 명이 자리에 있는 것도 여전했다.
  • 주설화는 속으로 한껏 구시렁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 담우석의 시크한 눈망울이 주설화를 훑었다.
  • “주형 씨는 DC 그룹의 영업팀 팀장이에요. 주설화 씨는 저의 조카 친구에요.”
  • “안녕하세요, 주형 씨.”
  • “주설화 씨, 안녕하세요.”
  • 어색한 인사로 분위기는 다소 싸늘했다. 주형은 어느 정도 담 대표의 의도에 대해서 낌새를 알아차리긴 했지만 그래도 확신을 하기엔 부족했다.
  • 그는 전 과정 중에 모든 신경을 담우석에게 쏟을 수밖에 없었다.
  • 이번 식사 자리 역시 민망함의 연속이었다. 결국 주형은 자리를 뜨게 되었고 여전히 주설화와 연락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비추지 않았다.
  • 사실 주설화는 갑갑한 마음이었다.
  • 선보기를 원하지도 않는 주설화에게 담우석은 박력 넘치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건 그렇다 쳐. 왜 내내 자리는 지키는 거지?
  • 어떤 의미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