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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날 초대할 생각은 없나?

  • 장예원은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
  • 주설화는 그제야 기나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다시금 액세서리를 착용한 뒤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면서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 “주설화, 꺾이지 말자. 파이팅!”
  • 그녀는 일말의 미소를 지으며 양손으로 작은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여전히 아름답고 영특한 분위기의 아가씨였다.
  • 화장실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마주 오는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 담우석은 담배를 피우는 중인 듯했다. 긴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가 끼워져 있었고 손은 몸 옆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입체적인 그의 옆모습은 침묵 사이로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주설화는 흠칫했다. 그녀는 남자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건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 그녀의 볼은 홍조를 띠었고 예쁜 얼굴로 내는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뜨끔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 “삼촌.”
  • 담우석은 담배를 입가에 가져가 한 모금 빨아들였다. 위로 솟는 자욱한 연기 사이로 그의 검은 눈동자가 그녀에게 은근하게 닿았다.
  •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응시에 주설화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 “삼촌, 저 먼저 가볼게요.”
  • 담우석은 담배를 끄고 양손을 주머니에 꽂았다. 훤칠한 그는 긴 다리를 뻗었다.
  • 그렇게 주설화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 주설화는 얼빠진 모습이었고 속으로 구시렁대고 있었다.
  • ‘이 사람 설마 나를 기다렸던 건 아니겠지?’
  • ‘아닐 거야.’
  • 그 뒤로 주설화는 계속해서 담이안에게 잡혀 있게 되었다. 담이안은 그녀를 팔아버리려고 굳게 마음을 먹은 듯했다.
  • 그 효과는 사실 꽤나 이상적이었다.
  • 주설화는 예쁜 데다가 담이안을 절친한 친구로 두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점만으로도 남자들을 만나기에는 주설화가 밑지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 파티장을 떠나면서 담이안은 누굴 본 건지 주설화를 담우석에게 던져두고 먼저 가버렸다.
  • 담우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셔츠 단추를 풀었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그는 손 하나를 주머니에 꽂으며 나른한 모습을 드러냈다.
  • “가죠.”
  • 주설화는 그제야 어색하게 따라갔다.
  • 엘리베이터 안, 두 사람이 탄 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주설화는 제일 안쪽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 담우석은 주설화를 마주 보게 된 상태였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 정도 거리와 틈이 있는 정도였다.
  • 그러다 다른 층에 다다랐을 때 사람이 더 붐비게 되었고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손 하나를 벽에 대고 지탱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은 한 층 가까이 주설화에게로 다가가게 되었고 그녀를 품에 감싼 듯한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다.
  • 주설화는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랐고 그녀의 들숨 날숨 사이에는 담우석의 차갑고 맑은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 정수리 위로 담우석은 깊어진 눈으로 그녀의 새빨개진 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비어있던 손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왠지 모를 간질간질함을 느끼는 중에 있었다.
  • 일 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 흐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사람은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어느 정도 공간을 얻게 된 주설화는 한걸음 앞서 다소 조급한 상태로 걸어나갔다.
  • 차에 올라탄 주설화는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 시작은 침묵이었다. 그녀는 곁눈질도 마다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담우석의 나른한 눈빛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긴장 때문이었다. 얼굴이 뜨거워진 주설화는 창밖을 내다보며 열을 식힐 수 있기를 바랐지만 여전히 뜨거운 기운이 흩어지지 않았다.
  • “더워요?”
  • 담우석은 목소리마저 나른했다.
  • 주설화는 심장이 철렁했다.
  • “아니요…괜찮은데요.”
  • “파티에서 맘에 들었던 남자는 있었어요?”
  • “네?”
  • 주설화는 다소 벙찐 모습이었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담우석의 검은 눈을 마주하게 되었고 바로 고개를 숙여버리게 되었다.
  • “없었어요…아니다, 익숙하지 않았던 거예요. 사실…다 나쁘지 않았어요…”
  • 주설화 본인마저 제 입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 담우석은 얇은 입술에 곡선을 그렸다.
  • “많이 알아가는 게 좋죠. 급급하게 판단 내리지는 마요.”
  • 그가 뱉은 말은 정말로 윗사람이 건네는 조언 같았다.
  • 주설화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삼촌.”
  • “지난번에 만났던 원택이랑은 연락해요?”
  • “음…아니요.”
  • 그날 원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우석과 이야기를 나눴고 떠날 때까지도 그녀에게 연락처를 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담우석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원택 씨 멋진 분이시던데 그쪽에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 담우석은 잠시 침묵했다. 그 뒤로 목소리를 깔고 입을 열었다.
  • “주설화 씨가 원한다면 한 번 더 자리 만들어줄 수 있어요.”
  • “아니요, 아니에요…그러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 담우석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 “진짜 별로인 거 맞아요?”
  • “네. 전…정말 그런 뜻으로 한 얘기 아니에요.”
  • “좋아요!”
  • 그의 “좋아요”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주설화는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한시라도 빨리 귀가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다행이었던 것은 담우석이 그 뒤로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거처에 도착한 주설화는 한시 급히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릴 기세를 보였다.
  • 다만 차에서 내린 그녀는 예의상 일단 옆에 서서 차 안에 있는 담우석을 향해 얌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삼촌. 안녕히 가세요.”
  • 담우석이 입을 열지 않았으니 기사도 시동을 걸지 않았다.
  • 그는 차창을 사이에 두고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흐릿한 어둠이 반짝이고 있었다. 앙증맞고 감미로운 그녀는 마치 짙은 어둠 속 은은하게 피어난 요염한 꽃처럼 향기로 사람을 홀리고 있었다.
  • 주설화는 그가 떠나지 않는 모습에 결국 작은 손을 들어 올려 흔들었다.
  • “안녕히 가세요. 삼촌.”
  • 담우석은 그제야 입술을 움직여 입을 열었다.
  • “날 초대할 생각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