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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깊은 대화

  • 황영은 당황하고 말았다.
  • 장씨 아줌마가 해고된 일에 대해서 그녀는 그저 장씨 아줌마의 말만 들었을 뿐,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고 있었다.
  • 그런데 장씨 아줌마가 먼저 소이녕을 모욕했다니.
  •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렇게 된 일인 줄 알았다면 그녀는 절대 먼저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 심동욱이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 “강운이 역시 남자네! 이녕이는 우리 심씨 가문의 며느리인데 일하는 사람에게 모욕당하면 안 되지!”
  • 황영은 무안하여 입을 꾹 다문 채 콧방귀를 뀌었다.
  • 심 회장도 화제를 돌려 소이녕의 안부를 물었다.
  • 이때, 심동욱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발신자 번호를 보더니 순간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 “저 잠깐 나가서 전화 받고 올 테니 얘기들 나누고 계세요.”
  • “살펴 가세요.”
  • 심강운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심동욱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문한이 거들먹거리며 들어왔다.
  • 그는 거실 안을 빙 둘러보더니 소이녕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에게 윙크했다.
  • 그의 망나니 같은 모습을 보자 심 회장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 “네 제수씨야!”
  • “알고 있어요.”
  • 심문한은 소이녕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 “아까 대문 앞에서 잠깐 마주쳤어요. 제수씨랑 깊은 대화도 했는걸요.”
  • 그는 일부러 ‘깊은 대화’에 힘을 주며 말했다. 소이녕은 그런 그가 역겨워 미간을 찌푸렸다.
  • 고개를 든 그녀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는 고용인들을 보았다.
  • “주방에 도우러 갈게요.”
  • 말을 마친 그녀는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 심문한이 그녀의 맞은편에 있으니 그녀는 이 자리에 일 분도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 그러나 그녀가 힘센 손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 “할아버지 댁에는 사람이 많아서 당신이 돕지 않아도 돼.”
  • “그래, 시골 출신이 아니랄까 봐 일을 찾아서 하네? 하지만 여기는 일하는 사람이 많으니 사모님답게 얌전히 앉아 있기나 해.”
  • 황영이 비아냥거렸다.
  • 소이녕은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 그러나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저택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 집사가 다급한 걸음으로 들어와 말했다.
  • “어르신…”
  • 집사는 건들거리는 자세로 과일을 먹고 있는 심문한을 힐끗 보았다.
  • 심 회장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 “말해!”
  • 집사는 그제야 겁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 “밖에… 고씨 가문의 어르신이 그 댁 아가씨를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문한 도련님이 며칠 전에 고씨 가문 아가씨에게 무례를 범했다고 하면서요…”
  • 심 회장은 차가운 얼굴로 심문한을 노려보았다.
  • “어떻게 된 일이냐?”
  • 심문한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계속해서 과일을 먹으며 말했다.
  • “별일 아니에요. 오버하는 거죠. 그날 클럽에서 술에 취한 상태라 고자연의 엉덩이를 살짝 건드렸거든요.”
  • 거실에 정적이 맴돌았다.
  •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심 회장은 재떨이를 들고 심문한에게 던졌다.
  • “너 이 자식, 그게 무례를 범한 게 아니고 뭐야!”
  • 고씨 가문도 A시티에서는 명망이 있는 명문가였다. 이번 일이 소문이라도 난다면 심씨 가문의 체면은 뭐가 된다는 말인가?
  • 심문한은 바로 몸을 피해서 재떨이에 머리를 맞지 않았지만 몸에 맞고 말았다.
  • 깔끔하던 정장이 재떨이의 재로 얼룩이 갔다.
  • “할아버지, 오버가 너무 심하잖아요.”
  • 심문한은 입을 삐죽거렸다.
  • “그 일은 제 탓이 아니라고요! 그날 고자연이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고 클럽에 간 게 다 절 꼬시려고 그런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살짝 건드려 줬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요.”
  • 심 회장은 화가 나 쿠션을 그에게 던졌다.
  • “형.”
  • 말없이 잠자코 듣고 있던 심강운이 입을 열었다.
  • “형도 나이가 어리지 않은데 고씨 가문 사람이 찾아온 걸 보고도 해결하지 않고 뭐해? 할아버지가 형 뒤처리까지 해주기를 바라는 거야?”
  • 심문한은 그를 흘기며 말했다.
  • “내가 지금 나가면 고씨 가문 사람들이 날 때릴 거 아니야?”
  • 심강운의 한결같이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형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었어?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형더러 한 자회사의 대표직을 위임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작은 일까지 할아버지의 등 뒤에 숨기 바쁜 사람이라는 걸 주주들이 안다면 대표 자리가 위태롭지 않겠어?”
  • 심강운의 말에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심문한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 황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심문한을 끌고 일으키며 말했다.
  • “이 정도 일은 우리 문한이가 잘 처리할 거야. 네가 이렇게 비아냥거릴 필요가 없다고!”
  • 소이녕은 황영이 심문한을 끌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심문한 이 작자는 자신이 잘못한 걸 깨닫지도 못했는데 이대로 나가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 그러나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심강운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 심 회장은 골치 아픈 얼굴로 집사를 불러와 그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 집사가 떠난 뒤, 심 회장은 심강운을 보며 냉소를 하였다.
  • “고씨 가문은 원래도 상대하기 어려운 가문으로 소문이 났어. 문한이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뉘우치고 있지 않으니 걔가 나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넌 예상했겠지.”
  • 심 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 소이녕은 심문한이 높은 목소리로 고자연을 욕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 ‘상황이 더 나빠졌네.’
  • “너희 후문으로 빠져나가. 오늘은 너희가 오지 않은 거로 치지!”
  • 심 회장은 노기 띤 얼굴로 일어나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 “네가 어려서부터 몸이 안 좋기에 오늘 이간질을 한 걸 따로 묻지 않을게. 하지만 다음에는 이러지 말거라.”
  • 말을 마친 노인은 그대로 떠나갔다.
  • 심강운은 휠체어에 앉은 채, 싸늘한 냉소만 지었다.
  • 소이녕은 고용인에게 후문의 방향을 물은 뒤에야 다급히 심강운의 휠체어를 밀고 그쪽으로 갔다.
  • 밖의 떠드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 본가에서 나갈 때까지 심강운은 말 한 마디 없었다.
  • 소이녕은 후문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후문으로 가는 지형이 복잡한데다 알록달록한 장식품이 많아 그녀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 “저 길 잃은 것 같아요.”
  • 소이녕은 절망스러운 눈길로 열 번은 넘게 걸은 것 같은 돌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고용인더러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하는 건데.”
  • “여기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길을 안내해 주지 않을 거야.”
  • 소이녕이 입을 삐죽거렸다.
  • “그럴 리가요? 여기는 할아버지 댁이고 당신은 할아버지 손자잖아요!”
  • 심강운이 피식 냉소했다.
  • “당신은 당신 남편에 대해 전혀 모르나 봐. A시티의 유명한 불길한 존재 심강운, 9살 때 부모를 모두 여의었지. 13살 때, 놀다가 부주의로 화재를 일으켜서 사이가 가장 좋은 누나와 그를 보살피던 두 고용인을 죽였고 그도 앞을 못 보고 다리 한 쪽을 절게 되었지. 이런 불길한 신분 때문에 심씨 가문 사람들 모두 그를 꺼리고 접근조차 안 하려고 해. 그래서 본가에서 나가 밖에서 살고 있는 거야. 나 홀로 그 별장에서 산 지 13년이 되었어.”
  • 소이녕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 ‘그럼 어제의 그 별장에서 혼자 13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거야?’
  • 심강운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13년 동안 명절 때가 되어서야 난 본가에 와 밥을 먹을 자격이 생기는 거야. 오늘 당신과 함께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어제 우리가 결혼했기 때문이지.”
  • 그는 피식 웃었다.
  • “이곳의 고용인은 쫓겨난 나를 존중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