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아줌마가 해고된 일에 대해서 그녀는 그저 장씨 아줌마의 말만 들었을 뿐,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장씨 아줌마가 먼저 소이녕을 모욕했다니.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렇게 된 일인 줄 알았다면 그녀는 절대 먼저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심동욱이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강운이 역시 남자네! 이녕이는 우리 심씨 가문의 며느리인데 일하는 사람에게 모욕당하면 안 되지!”
황영은 무안하여 입을 꾹 다문 채 콧방귀를 뀌었다.
심 회장도 화제를 돌려 소이녕의 안부를 물었다.
이때, 심동욱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발신자 번호를 보더니 순간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저 잠깐 나가서 전화 받고 올 테니 얘기들 나누고 계세요.”
“살펴 가세요.”
심강운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동욱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문한이 거들먹거리며 들어왔다.
그는 거실 안을 빙 둘러보더니 소이녕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에게 윙크했다.
그의 망나니 같은 모습을 보자 심 회장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네 제수씨야!”
“알고 있어요.”
심문한은 소이녕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아까 대문 앞에서 잠깐 마주쳤어요. 제수씨랑 깊은 대화도 했는걸요.”
그는 일부러 ‘깊은 대화’에 힘을 주며 말했다. 소이녕은 그런 그가 역겨워 미간을 찌푸렸다.
고개를 든 그녀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는 고용인들을 보았다.
“주방에 도우러 갈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심문한이 그녀의 맞은편에 있으니 그녀는 이 자리에 일 분도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힘센 손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할아버지 댁에는 사람이 많아서 당신이 돕지 않아도 돼.”
“그래, 시골 출신이 아니랄까 봐 일을 찾아서 하네? 하지만 여기는 일하는 사람이 많으니 사모님답게 얌전히 앉아 있기나 해.”
황영이 비아냥거렸다.
소이녕은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저택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집사가 다급한 걸음으로 들어와 말했다.
“어르신…”
집사는 건들거리는 자세로 과일을 먹고 있는 심문한을 힐끗 보았다.
심 회장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말해!”
집사는 그제야 겁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밖에… 고씨 가문의 어르신이 그 댁 아가씨를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문한 도련님이 며칠 전에 고씨 가문 아가씨에게 무례를 범했다고 하면서요…”
심 회장은 차가운 얼굴로 심문한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
심문한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계속해서 과일을 먹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오버하는 거죠. 그날 클럽에서 술에 취한 상태라 고자연의 엉덩이를 살짝 건드렸거든요.”
거실에 정적이 맴돌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심 회장은 재떨이를 들고 심문한에게 던졌다.
“너 이 자식, 그게 무례를 범한 게 아니고 뭐야!”
고씨 가문도 A시티에서는 명망이 있는 명문가였다. 이번 일이 소문이라도 난다면 심씨 가문의 체면은 뭐가 된다는 말인가?
심문한은 바로 몸을 피해서 재떨이에 머리를 맞지 않았지만 몸에 맞고 말았다.
깔끔하던 정장이 재떨이의 재로 얼룩이 갔다.
“할아버지, 오버가 너무 심하잖아요.”
심문한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 일은 제 탓이 아니라고요! 그날 고자연이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고 클럽에 간 게 다 절 꼬시려고 그런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살짝 건드려 줬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요.”
심 회장은 화가 나 쿠션을 그에게 던졌다.
“형.”
말없이 잠자코 듣고 있던 심강운이 입을 열었다.
“형도 나이가 어리지 않은데 고씨 가문 사람이 찾아온 걸 보고도 해결하지 않고 뭐해? 할아버지가 형 뒤처리까지 해주기를 바라는 거야?”
심문한은 그를 흘기며 말했다.
“내가 지금 나가면 고씨 가문 사람들이 날 때릴 거 아니야?”
심강운의 한결같이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었어?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형더러 한 자회사의 대표직을 위임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작은 일까지 할아버지의 등 뒤에 숨기 바쁜 사람이라는 걸 주주들이 안다면 대표 자리가 위태롭지 않겠어?”
심강운의 말에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심문한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황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심문한을 끌고 일으키며 말했다.
“이 정도 일은 우리 문한이가 잘 처리할 거야. 네가 이렇게 비아냥거릴 필요가 없다고!”
소이녕은 황영이 심문한을 끌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심문한 이 작자는 자신이 잘못한 걸 깨닫지도 못했는데 이대로 나가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그러나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심강운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심 회장은 골치 아픈 얼굴로 집사를 불러와 그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집사가 떠난 뒤, 심 회장은 심강운을 보며 냉소를 하였다.
“고씨 가문은 원래도 상대하기 어려운 가문으로 소문이 났어. 문한이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뉘우치고 있지 않으니 걔가 나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넌 예상했겠지.”
심 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이녕은 심문한이 높은 목소리로 고자연을 욕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상황이 더 나빠졌네.’
“너희 후문으로 빠져나가. 오늘은 너희가 오지 않은 거로 치지!”
심 회장은 노기 띤 얼굴로 일어나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네가 어려서부터 몸이 안 좋기에 오늘 이간질을 한 걸 따로 묻지 않을게. 하지만 다음에는 이러지 말거라.”
말을 마친 노인은 그대로 떠나갔다.
심강운은 휠체어에 앉은 채, 싸늘한 냉소만 지었다.
소이녕은 고용인에게 후문의 방향을 물은 뒤에야 다급히 심강운의 휠체어를 밀고 그쪽으로 갔다.
밖의 떠드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본가에서 나갈 때까지 심강운은 말 한 마디 없었다.
소이녕은 후문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문으로 가는 지형이 복잡한데다 알록달록한 장식품이 많아 그녀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저 길 잃은 것 같아요.”
소이녕은 절망스러운 눈길로 열 번은 넘게 걸은 것 같은 돌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용인더러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하는 건데.”
“여기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길을 안내해 주지 않을 거야.”
소이녕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럴 리가요? 여기는 할아버지 댁이고 당신은 할아버지 손자잖아요!”
심강운이 피식 냉소했다.
“당신은 당신 남편에 대해 전혀 모르나 봐. A시티의 유명한 불길한 존재 심강운, 9살 때 부모를 모두 여의었지. 13살 때, 놀다가 부주의로 화재를 일으켜서 사이가 가장 좋은 누나와 그를 보살피던 두 고용인을 죽였고 그도 앞을 못 보고 다리 한 쪽을 절게 되었지. 이런 불길한 신분 때문에 심씨 가문 사람들 모두 그를 꺼리고 접근조차 안 하려고 해. 그래서 본가에서 나가 밖에서 살고 있는 거야. 나 홀로 그 별장에서 산 지 13년이 되었어.”
소이녕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어제의 그 별장에서 혼자 13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거야?’
심강운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13년 동안 명절 때가 되어서야 난 본가에 와 밥을 먹을 자격이 생기는 거야. 오늘 당신과 함께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어제 우리가 결혼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