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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남편이 나를 안을 때

맹인 남편이 나를 안을 때

환상수

Last update: 2024-05-12

제1화 죽는 게 무섭지 않아?

  • “저기… 제가 먼저 옷을 벗고 침대에 올라가 있을까요? 아니면… 당신 옷 먼저 벗겨 드릴까요?”
  • 몸에 타월을 두른 소이녕이 조심스럽게 묻고 있었다.
  • 오늘은 그녀의 결혼 첫날 밤이었다.
  • 눈에 검은색 비단을 두르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었다.
  • 소이녕은 오늘 처음으로 남편을 보는 날이었다. 남편은 사진보다 실물이 나았다.
  •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남자는 짙은 눈썹에 오뚝한 콧날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다.
  •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휠체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장님이었다.
  • 누군가 심강운은 천성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했다. 아홉 살에 부모가 죽고 열세 살에 누나가 죽고 성인이 된 후에는 약혼녀가 세 명이나 죽었으니 말이다.
  • 처음 소문을 들었을 때 소이녕도 겁이 났다.
  • 하지만 삼촌은 그녀가 심강운과 결혼만 한다면 심씨 가문에서 그녀의 할머니 병원비를 대주겠다고 했다.
  • 할머니를 위해서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에 응했다.
  • 남자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소이녕은 그가 듣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말을 반복했다.
  • “허.”
  • 차가운 기운을 풍기는 남자는 느릿하게 눈을 가린 비단천을 내리고는 그녀를 싸늘하게 훑어보았다.
  • “그쪽이 누구와 결혼한지 알아?”
  • 차가운 그의 시선에 소이녕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겁먹을 게 없었다.
  • ‘아, 앞을 못 보지 참. 그런데 장님의 눈빛이 저럴 수 있나?’
  • 맹인을 처음 보는 소이녕은 확신할 수 없었다.
  • 하지만 그녀는 그의 대답에 고분고분 대답했다.
  • “알아요.”
  •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물었다.
  • “무섭지 않아?”
  • 눈을 가리던 천을 내린 뒤로 그는 더욱 차갑고 고풍스러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 소이녕은 두근대는 심장을 애써 눅잦히고 말했다.
  • “네.”
  • 그녀는 그를 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 “제 할머니를 살려주셨으니 당신은 제 은인이십니다. 전 꼭 당신에게 아이를 낳아주고 평생 당신을 돌보겠어요!”
  • 소이녕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심강운은 말없이 그녀를 응시하더니 한참 뒤, 피식 웃었다.
  • “그럼 나부터 씻겨 줘.”
  • 소이녕은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네.”
  • 그녀가 심씨 가문의 어르신에게 심강운과 결혼할 것이라고 약속한 순간부터 후회할 생각이 없었다.
  • 혼인신고를 마쳤으니 그녀는 심강운의 아내가 되었다.
  • 몸이 불편한 남편을 씻겨 주는 건 당연히 아내가 할 일이었다.
  • “물 받으러 갈게요.”
  • 말을 마친 그녀는 욕실로 들어갔다.
  • 심강운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그도 사람을 보내 소이녕에 대해 알아보았었다.
  • 소이녕은 이상할 정도로 배경이 깨끗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소녀가 가족의 치료비 때문에 불길하다고 소문난 그와의 결혼에 승낙한 것이다.
  • 그와 결혼할 뻔했던 세 명의 약혼녀는 모두 A시티 상류사회 아가씨였다. 집안 배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 그들은 결혼식 전에 모두 각이한 방식으로 살해당했다.
  • 그러나 순진하고 약간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 소이녕이 첫날밤까지 살아 있다니?
  • 그렇다면 결론은 두 개뿐이었다.
  • 그녀가 너무 멍청해서 범인이 움직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거나 그녀가 멍청한 척 연기하는 것.
  • 심강운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욕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고개를 든 그의 시선에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 욕실에서 퍼져 나오는 뿌연 안개가 흩어지자 몸집이 아담한 여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 검은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그녀의 쇄골에서 찰랑찰랑 흔들리고 있었다.
  • 몸을 두른 타월도 물에 젖은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자 아까 옷을 입었을 때는 몰라봤던 볼륨감도 느껴졌다.
  • “잠시만요.”
  •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침대 아래서 캐리어를 꺼냈다.
  • 캐리어 안에는 그녀의 속옷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 그녀는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속옷을 꺼내 입었다.
  • 심강운이 앞을 못 본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녀는 그의 앞에서 거리낌 없이 타월을 내리고 옷을 입었다.
  • 하지만 단순한 행동이 심강운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 ‘이 여자, 내가 진짜로 앞을 못 보는지 확인하려고 이러는 거야?’
  • “후~”
  • 옷을 입은 소이녕은 심강운의 옆으로 와서 휠체어를 욕실 입구로 밀어 갔다.
  • 심강운을 부축해 욕실로 들어간 뒤, 그녀는 그의 옷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 뜨거운 수증기에 심강운은 실눈을 뜬 채, 그녀를 지켜보았다.
  • 소이녕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그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함의 결정체였다.
  • 그녀는 먼저 심강운의 시계를 풀고 그의 셔츠를 풀었다.
  • 마지막 속옷 한 장이 남겼을 때, 소이녕은 손을 움츠리며 말했다.
  • “이거… 입고 씻어도 돼요?”
  • 심강운은 약간 장난기 도는 말을 했다.
  • “이걸 입으면 어떤 부분은 못 씻을 텐데 말이야.”
  • “네… 그렇긴 하죠.”
  • 소이녕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뻗었다.
  • 심강운의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 그는 열심히 움직이는 소이녕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정말 멍청한 거야? 아니면 멍청한 척하는 거야? 부끄럼이 뭔지 모르나?’
  • “여기로 욕조에 들어가시면 돼요.”
  • 소이녕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심강운을 부축해서 욕조로 들어갔다.
  • 하지만 얼굴이 저도 모르게 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 그녀는 얼굴을 두드리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그에게 물었다.
  • “아파도 괜찮죠?”
  • “응.”
  • 소이녕은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긴 뒤, 부시럭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 잠시 뒤, 그녀는 때 타월을 들고 돌아섰다.
  • 심강운의 이마에는 저도 모르게 실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 ‘첫날 밤에 때를 밀어주겠다는 거야?’
  • 소이녕은 그의 생각은 묻지도 않고 그의 등을 북북 문질렀다.
  • “아프면 말해요. 살살할게요.”
  • 심강운: “…”
  • 소이녕은 열심히 때를 밀기 시작했다.
  • 심강운과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몸이 안 좋은 할머니를 오랫동안 모셨다. 할머니는 그녀가 때를 밀어주는 걸 아주 좋아했는데 때를 밀고 나면 시원해서 잠도 잘 온다고 했었다.
  • 그래서 소이녕은 심강운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녀는 욕조 옆에 앉아 때 타월로 열심히 그의 몸을 밀었다.
  • 소이녕은 힘을 주어 미는 것이었지만 심강운에게는 간지럽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하지만 그녀가 열심히 하는 건 심강운도 느낄 수 있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소이녕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 심강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 그는 자신이 소이녕을 오해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 ‘멍청할 정도로 단순해 보이는데 다른 꿍꿍이가 있겠어?’
  • “저기…”
  • 다른 곳을 다 씻은 뒤, 소이녕은 상기된 얼굴로 그의 그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 “여기도 씻겨 드릴까요?”
  • 심강운은 조용히 그녀를 보며 물었다.
  • “그럼?”
  • 소이녕은 잠깐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 “그럼… 씻을게요.”
  • 말을 마친 그녀가 때 타월을 들고 다가왔다…
  • 심강운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 순간 욕실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 소이녕은 때 타월로 그곳을 씻을 수 없다는 걸 모르는지 고개를 들고 순진한 눈빛으로 물었다.
  • “이렇게 잡고 있으면 어떻게 씻겨 드려요?”
  • 심강운은 한기가 흐르는 까만 눈동자로 말했다.
  •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