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서이현은 목숨을 잃었다. 자신이 가장 믿고 따르던 친언니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손에 죽게 되었다.
숨을 거둔 서이현의 시체는 인적이 드문 황야에 버려졌다. 매일 강한 햇볕에 쪼이고 뱀과 각종 야생 동물에 살점이 물리고 뜯긴 탓에 삼일 만에 서이현의 시체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서이현은 이게 자신의 최후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영혼이 곧 사라지던 그때, 그녀의 남편 박하준이 나타났다.
박하준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어두컴컴한 서이현의 세상을 비췄다.
엉망진창이 된 서이현을 소중하게 품에 꼭 끌어안은 박하준은 서이현이 생전에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서이현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박하준은 손을 뻗어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아? 왜 날 기다리지 않은 거야? 왜 나한테서 도망친 거야?”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박하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이와 동시에 계속 켜져 있던 티브이에서 실시간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점심 해선 그룹 대표 고경민 씨와 시아 그룹 회장 딸 서아린 씨가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폭발 사고가 일어나 두 사람 모두 사망했습니다. 현재, 범인은 태우 그룹 대표 박하준 씨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뉴스에 서이현은 떨리는 눈빛으로 부패된 자신의 시신에 입을 맞추고 있는 박하준을 바라보았다.
“하준 씨.”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하준에게는 서이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박하준은 침대 곁에 놔둔 독약을 들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서이현이 손을 뻗어 박하준을 제지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독약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 마요! 하준 씨! 그러지 마요!”
순간, 새까만 피를 왈칵 토하던 박하준은 서이현 곁에 누워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꼭 너와 다시 만나고 싶어. 그리고 내가 예전에 너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목숨을 걸어서라도 널 평생 지켜줄 거야. 이현아, 이번 생에 널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 생에는 약속 꼭 지킬게. 꼭…”
박하준의 눈이 감긴 순간,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서 흘러내렸고 그대로 숨이 멈추었다.
“안 돼! 하준 씨!”
곁에 누워 이 모든 걸 지켜본 서이현은 미친 듯이 오열했다.
……
“좀 빨리 움직여! 박씨 가문에서 기다리고 있잖아.”
“이 아가씨도 참 불쌍하네. 이 많은 남자들 중에서 하필 박씨 가문 도련님과 혼인을 하게 됐으니. 그 가문 도련님은 장애인인 데다가 얼굴도 괴이할 정도로 못 생겼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그 도련님에게 시집갔던 신부들은 하룻밤 사이에 다 죽었다잖아! 이 아가씨는 벌써 내가 박씨 가문에 모셔가는 아홉 번째 신부인데 오늘밤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됐어. 어차피 우리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잖아. 돈을 주는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속도 좀 올려봐. 오늘 저녁 여덟 시가 되기 전에 이 아가씨를 산 꼭대기에 모셔다 드려야 돼.”
서이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가마 안에 앉아있었다.
가마를 가리고 있던 천을 살짝 거둔 서이현은 어두컴컴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마에 그녀를 태운 채 산 위로 올라가고 있는 건장한 네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과 주변 환경이 왜 이렇게 눈에 익지?
서이현은 전생에도 지금처럼 가마에 태워진 채 산 꼭대기로 올라가 그날 밤 바로 박하준의 아내가 되었다.
그때 당시 서이현은 지적 장애를 앓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으며 그렇게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언니 서아린 대신 박하준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지적 장애가 치료된 서이현은 정상인으로 살게 되었고 자신이 바보였을 때 박하준과 있었던 일들을 전부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서이현은 서아린과 고경민에게 살해되어 황야에 버려졌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박하준과의 기억들이 전부 떠올랐다.
전생에 정상인으로 돌아온 서이현은 가면 속에 가려진 박하준의 추한 본모습을 보자마자 역겨운 마음이 들었고 그 뒤로 이런저런 일들을 저질러 박하준에게 상처를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