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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내줄지어니

내 심장을 내줄지어니

울면

Last update: 2025-04-23

제1화 다시 태어나다

  • 이날, 서이현은 목숨을 잃었다. 자신이 가장 믿고 따르던 친언니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손에 죽게 되었다.
  • 숨을 거둔 서이현의 시체는 인적이 드문 황야에 버려졌다. 매일 강한 햇볕에 쪼이고 뱀과 각종 야생 동물에 살점이 물리고 뜯긴 탓에 삼일 만에 서이현의 시체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 서이현은 이게 자신의 최후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영혼이 곧 사라지던 그때, 그녀의 남편 박하준이 나타났다.
  • 박하준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어두컴컴한 서이현의 세상을 비췄다.
  • 엉망진창이 된 서이현을 소중하게 품에 꼭 끌어안은 박하준은 서이현이 생전에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 서이현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박하준은 손을 뻗어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아? 왜 날 기다리지 않은 거야? 왜 나한테서 도망친 거야?”
  •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박하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이와 동시에 계속 켜져 있던 티브이에서 실시간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점심 해선 그룹 대표 고경민 씨와 시아 그룹 회장 딸 서아린 씨가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폭발 사고가 일어나 두 사람 모두 사망했습니다. 현재, 범인은 태우 그룹 대표 박하준 씨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 말도 안 되는 뉴스에 서이현은 떨리는 눈빛으로 부패된 자신의 시신에 입을 맞추고 있는 박하준을 바라보았다.
  • “하준 씨.”
  •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하준에게는 서이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이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박하준은 침대 곁에 놔둔 독약을 들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서이현이 손을 뻗어 박하준을 제지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독약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 “하지 마요! 하준 씨! 그러지 마요!”
  • 순간, 새까만 피를 왈칵 토하던 박하준은 서이현 곁에 누워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 “다음 생이 있다면 꼭 너와 다시 만나고 싶어. 그리고 내가 예전에 너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목숨을 걸어서라도 널 평생 지켜줄 거야. 이현아, 이번 생에 널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 생에는 약속 꼭 지킬게. 꼭…”
  • 박하준의 눈이 감긴 순간,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서 흘러내렸고 그대로 숨이 멈추었다.
  • “안 돼! 하준 씨!”
  • 곁에 누워 이 모든 걸 지켜본 서이현은 미친 듯이 오열했다.
  • ……
  • “좀 빨리 움직여! 박씨 가문에서 기다리고 있잖아.”
  • “이 아가씨도 참 불쌍하네. 이 많은 남자들 중에서 하필 박씨 가문 도련님과 혼인을 하게 됐으니. 그 가문 도련님은 장애인인 데다가 얼굴도 괴이할 정도로 못 생겼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그 도련님에게 시집갔던 신부들은 하룻밤 사이에 다 죽었다잖아! 이 아가씨는 벌써 내가 박씨 가문에 모셔가는 아홉 번째 신부인데 오늘밤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 “됐어. 어차피 우리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잖아. 돈을 주는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속도 좀 올려봐. 오늘 저녁 여덟 시가 되기 전에 이 아가씨를 산 꼭대기에 모셔다 드려야 돼.”
  • 서이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가마 안에 앉아있었다.
  • 가마를 가리고 있던 천을 살짝 거둔 서이현은 어두컴컴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마에 그녀를 태운 채 산 위로 올라가고 있는 건장한 네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이 상황과 주변 환경이 왜 이렇게 눈에 익지?
  • 서이현은 전생에도 지금처럼 가마에 태워진 채 산 꼭대기로 올라가 그날 밤 바로 박하준의 아내가 되었다.
  • 그때 당시 서이현은 지적 장애를 앓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으며 그렇게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언니 서아린 대신 박하준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지적 장애가 치료된 서이현은 정상인으로 살게 되었고 자신이 바보였을 때 박하준과 있었던 일들을 전부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 서이현은 서아린과 고경민에게 살해되어 황야에 버려졌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박하준과의 기억들이 전부 떠올랐다.
  • 전생에 정상인으로 돌아온 서이현은 가면 속에 가려진 박하준의 추한 본모습을 보자마자 역겨운 마음이 들었고 그 뒤로 이런저런 일들을 저질러 박하준에게 상처를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