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뿐만 아니라 서이현은 박하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약혼자였던 고경민을 도와 박하준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았다.
그때 당시 박하준이 모든 걸 잃으면 더 이상 서이현을 묶어 둘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거라는 고경민의 말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서이현은 고경민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박하준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고 박하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박하준은 출장을 가게 되었고 서이현은 자신을 가두고 있던 그 별장에서 도망쳐 고경민의 집으로 찾아갔다.
고경민에게 자신을 데리고 떠나달라고 부탁하려던 서이현은 고경민과 서아린의 충격적인 대화를 듣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침대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두 사람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고경민은 귀국한 순간부터 서이현과 약혼을 취소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박하준과 결혼했다는 소식에 자신에 대한 서이현의 감정을 이용하여 박하준을 나락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이 모든 건 처음부터 거짓이었고 함정이었다.
서이현은 그렇게 악마 같은 인간 쓰레기 때문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던 박하준을 죽게 만들었고 자신의 행복마저 손수 망가트리게 되었다.
죽기 직전, 서이현의 머릿속에는 전부 그녀가 바보였을 때 박하준이 그녀에게 잘해줬던 기억들뿐이었다.
“앞으로 그 누구도 나의 서이현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거야. 난 이현이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평생 지켜줄 테니까.”
서이현은 예전에 박하준이 그녀에게 했던 약속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박하준은 약속을 지켰지만 서이현은 자신이 했던 약속을 어겼다.
전생에 서이현은 영원히 박하준 곁에 있겠다고, 영원히 박하준만을 사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상인으로 돌아온 순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박하준을 버리고 떠났다.
그때 당시 박하준은 얼마나 괴롭고 슬펐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가마 안에 앉아있던 서이현은 눈을 꼭 감은 채 눈물을 흘렸다.
‘하준 씨, 하늘이 저에게 전생에 못다한 아쉬움을 채우라고 이렇게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 것 같아요. 이번 생에는 제가 하준 씨를 지켜줄게요.’
“도착했어.”
네 명의 건장한 남자들은 서이현의 가마를 박씨 가문 저택 앞에 내려놓았다.
이때, 끽 소리와 함께 박씨 가문 저택의 대문이 열렸고 안에서 한 중년 여성이 걸어 나와 건장한 남자들에게 수표 한 장씩 건네며 이만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는 마당을 지키던 하인들에게 가마를 마당 안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마당에 들어서자 진미선은 가마를 가리고 있던 천을 거뒀고 그 안에 반듯하게 앉아있는 서이현을 보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전에 박씨 가문에 시집온 여덟 명의 신부들은 자신과 혼인한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된 순간, 전부 쓰러진 채로 가마에 실려 왔는데 아홉 번째 신부인 서이현은 전혀 겁을 먹지 않은 듯했다.
“사모님, 기절하지 않으셨다면 스스로 가마에서 내려오십시오.”
“네.”
서이현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가마에서 내렸다. 얼굴에 면사포를 쓴 서이현은 진미선의 부축을 받은 채 박하준이 있는 방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진미선은 서이현을 박하준 방에 있는 침대에 앉힌 뒤 주변을 쓱 훑어보았지만 박하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모님, 박씨 가문에 들어오셨으니 몇 가지 숙지하셔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저희 도련님 두 다리는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앓고 있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조금 뒤에 이어질 합방에서 사모님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 두 번째, 저희 도련님은 성격이 까탈스럽긴 하지만 마음씨가 악한 분은 아닙니다. 사모님이 도련님에게 진심을 보이시면 저희 도련님도 충분히 그 마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 저희 도련님께서 불의의 사고로 얼굴을 다치셔서 그 뒤로부터 늘 얼굴에 가면을 쓰고 다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