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내 곁에 남고 싶어?
- 서이현은 박하준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분명 박씨 어르신의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지만 그녀의 악덕 계모와 언니는 당연히 받았을 테니까.
- 그럼 서이현이 돈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 서이현은 어떻게든 악독 계모와 서아린 손에서 받은 돈을 빼앗아 박씨 어르신에게 돌려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박하준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 “제가 지금 어떤 말을 해도 하준 씨가 안 믿을 거라는 거 알아요. 제가 행동으로 보여줄게요. 저는 정말 제가 원해서 하준 씨에게 시집온 거예요. 아무도 절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하준 씨 곁에 있을 수 있게 허락해줘요.”
- 박하준은 20년 넘게 살면서 단 한번도 이런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으며 더군다나 여자에게 이렇게 안겨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 지금까지 박하준의 본모습을 본 여인들은 너도나도 도망하거나 기절하기 바빴던 것이다.
- 이렇게 품에 안겨 곁에 남겠다는 여인을 보며 박하준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서이현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 “내 곁에 남고 싶어?”
- “네.”
- 서이현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내 가면을 벗겨봐.”
- 박하준은 가면에 숨겨진 화상 입은 얼굴로 서이현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다. 서이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 서이현에게 가장 추악하고 무서운 건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다.
- 그녀가 전생에 이 점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았다면 그런 처참한 일들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 서이현은 천천히 손을 뻗어 박하준 얼굴에 쓴 가면을 벗겼고 그 순간, 화상으로 짓무른 흉터가 눈앞에 드러났다.
- 서이현은 이내 박하준과 눈이 마주쳤고 박하준의 기대와는 다르게 서이현의 눈빛에는 전혀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 그녀는 되레 서글픈 눈으로 박하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너, 안 무서워?”
- 박하준은 서이현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물었고 서이현은 그런 박하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되물었다.
- “하준 씨는 제 남편인데 제가 왜 무서워해야 하죠?”
- 남편이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서이현을 보며 박하준은 흠칫 놀란 듯했다.
- “그렇게 남고 싶으면 남아.”
- 한 마디 남긴 박하준은 서이현의 손목을 풀어주고는 휠체어를 끌고 방을 나서려고 했다.
- 이때,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서이현이 박하준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 “여보, 오늘 당신과 나의 첫날밤인데 어디 가려는 거예요?”
- “처리할 문서가 남았어.”
- “하지만…”
- 서이현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박하준이 방문을 쾅 닫아버린 채 떠났고 그렇게 방에는 서이현 혼자 남아있게 되었다.
- 굳게 닫힌 문을 멍하니 쳐다보던 서이현은 마음이 씁쓸했다.
- 전생의 박하준은 서이현에게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 그녀가 배고프다고 하면 그게 새벽이라고 할지라도 박하준은 그녀와 함께 야식을 먹었고 그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줬지만 다시 태어난 지금, 지적 장애가 없는 서이현에게 박하준은 너무도 차갑다.
- 하지만 서이현은 박하준의 마음을 얻을 자신이 있기 때문에 뭐든 괜찮다.
- 천천히 다가가면 박하준의 마음은 언젠가 열릴 것이다.
- 자신을 다독인 서이현은 전생의 기억으로 옷장에 들어가 박하준의 셔츠를 꺼낸 채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 그녀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박하준은 여전히 서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밤 9시가 훌쩍 넘었다.
- 박하준은 평소에 너무 바빠서 식사를 제때에 챙기지 않을 때가 많았고 마침 서이현도 배가 조금 고팠기에 그녀는 박하준의 셔츠를 입은 채 간단한 음식을 만들려고 주방으로 향했다.
- 오늘은 박하준과 서이현의 첫날밤이었기에 별장 여기저기에 예쁜 촛불이 켜져 있었고 하인들은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서이현이 도망갈까 봐 별장 밖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 외에는 전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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