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누구도 백현욱의 말에 대든 적이 없었다. 지효는 이런 효민의 카리스마에 감탄했다. ‘역시 Te에서 일했던 내 친구!’
백현욱은 불쾌함에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앞으로 한발 걸어갔다. 그리고는 효민과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내려봤다.
“대표님, 이분은 TE 기획부 부장입니다.”
지효는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말했다. 그는 백현욱이 화가 나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무례한 여자가 Te사 직원이었구나.’
해외사장에서 Te와 부 씨 그룹은 크게 경쟁한 적이 있다. 작년 부 씨 그룹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한 이유가 바로 Te사 기획이 부 씨 그룹보다 훨씬 잘했기 때문이다. 현욱은 그 중요한 프로젝트 기획안이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한 것이라는 알아챘다.
“데리고 들어가요.”
현욱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순식간에 띄고는 다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주변 사람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현욱의 말에 지효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는 신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때 효민이가 멍한 표정으로 현욱을 쳐다보는 걸 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효민은 혼이 나간 듯 했다. 현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효민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 익숙하게 느껴진 효민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대표님 직원들이 뒤에서 조급하게 기다리는 것 같은데 급한 일 있으신 거 아니에요?”
효민은 여유러운 표정을 다시 찾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현욱은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떠났다.
‘눈매가 조금 비슷하긴 한데 그 여자였으면 나한테 고분고분하지는 않았겠지.’
백현욱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떠났다. 현욱의 보이지 않자 로비는 순식간에 웅성웅성해지면서 모두 효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여자 일부러 그런 거죠?”
“이런 하수로 대표님 관심 끌려고요.”
“소용없지. 부 대표님 옆에 널린 게 이쁜 여자인데”
“그러니까요. 거울이나 좀 보지. 어디 감히 대표님한테 주제도 모르고요.”
지효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제스쳐를 하면서 말했다.
“효민아 신경 쓰지 마. 우리 대표님이 업계에서 소문난 잘생긴 싱글이라 저 여자들이.......”
지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효민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나 신경 안 써. 애 둘 낳은 엄마인데 그런 말 신경 안 써.”
효민은 마음속으로 아들딸을 절대 백현욱한테 들키지 않게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네 말이 맞아. 그럼 난 먼저 서류 정리하러 올라갈게. 상사가 빨리 달라고 해서 넌 알아서 면접장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 15층이야. 아 맞다. 근데 너 방금 목소리 어떻게 된 거야?”
“집에 가서 얘기해줄게.”
효민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뜻하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게 효민은 백 씨 그룹에서 변조된 목소리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지효는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말을 끝낸 효민은 엘리베이터를 타러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총 3대 있었고 효민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가장 왼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에서 무테안경에 뽀얀 피부, 그리고 짙은 눈썹을 가진 왠 남자가 내려왔다. 박성천은 효민을 보더니 가던 길을 멈추고는 신기한 듯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같이 못생긴 여자가 어떻게 우리 회사에 들어올 수 있죠?”
“정정당당하게 내 힘으로요.”
효민은 박성천을 쳐다보며 한마디 던지고는 엘리베이터를 타러 들어갔다. 박성천은 닫친 엘리베이터와 올라가는 숫자를 지켜봤다.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멈추자 그는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15층이면 광고기획팀 면접장인데 인물이 별 볼 것 없는 여자가 어떻게 최종면접까지 갈 수 있는지 의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