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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이 순간만 기다려왔지

  • “루시 씨!”
  • 순번을 발표하던 남자가 여자를 보자 예의 바르면서도 아첨하는 표정을 지었다.
  • 효민은 루시라는 여자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 ‘이 사람이 백 대표님이랑 스캔들 난 여자군.’
  • “당신 말하는 거예요. 대표님은 예쁜 여자 좋아하는데, 당신은…….”
  • 루시는 잠시 멈칫하다가 코웃음 쳤다.
  • “백 대표님 취향은 저랑 상관없는데요. 이미 두 아이의 엄마니까요, 전.”
  • 효민은 차분한 말투로 정곡을 찔렀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고 루시는 정색했다.
  • “두 아이의 엄마라니! 정말 아줌마가 맞네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떻게 여기 왔지? 미혼만 가능한데!”
  • 몇몇 여자들이 쑥덕거렸다.
  • 마침 성천이 15층에 도착했다.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왔다.
  • “죄송합니다, 여러분. 몇몇 분들은 이미 탈락하셨으니 나가주시면 됩니다.”
  • 쑥덕거리고 있던 여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아직 면접도 안 봤는데 탈락이라니. 어떻게 최종면접까지 올라온 건데!’
  • 성천은 효민에게 가서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 “어이,이따가 면접에서 얼마나 잘하실지 기대됩니다.”
  • 성천은 일부러 이렇게 말해서 면접장을 잘못 찾아왔다는 걸 일러주고 싶었다.
  •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 똑 부러지는 말투에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효민의 성격이 드러났다.
  • 이때 진행요원이 10번을 불렀다. 효민의 차례였다.
  • 루시는 완전 폭발해서 성천에게 소리 질렀다.
  • “뭐 하시는 거예요. 이딴 여자가 새로운 CF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루시는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 ‘박성천, 당신! 두고 보자고!’
  • 효민이 대기실에서 주제를 뽑아 열어보니 ‘자신만의 방식으로 몸매를 뽐내보세요.’라고 적혀있었다.
  • 효민은 이 주제를 보고 잠시 벙쪄 있었다.
  • ‘기획부 면접인데 몸매를 뽐내보라니. 이게 뭐지? 누가 이런 문제를 낸 거야.’
  • “10번 분! 들어오세요. 곧 시작합니다.”
  • 뜻밖의 상황에 마음 속이 복잡해졌는데 자신의 번호가 불렸다.
  • ‘9번이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빨리 나온 걸 보면 탈락했나 보네.’
  • 효민은 손 안에 든 종이를 내려놓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어떻게 하면 예의 바르게 몸매를 뽐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 면접실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난 후 들어갔다.
  • 들어가면서 시선이 저절로 상석에 앉아있는 사람 쪽을 향했다.
  • ‘응? 가운데 앉아서 눈썹을 찡그린 채 파카 만년필을 손으로 빙빙 돌리고 있는 저 남자, 백현욱 아니야? 방금 1층 로비에서 마주쳤는데 여기서 또 보게 되다니.’
  • 그때 고개를 든 현욱이 펜 돌리던 것을 잠시 멈췄다.
  • 옆에 앉아있던 성천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 ‘이 순간만 기다려왔지.’
  • “자신만의 방법으로 몸매를 뽐내 보세요.”
  • 제일 오른쪽에 앉은 면접관은 웬 아줌마가 최종면접까지 올라온 게 이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 옆에 있는 두 명의 면접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효민은 시작하겠다는 표시로 손을 들었다.
  • 효민은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 “저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제를 받아 들고 모델이 런웨이를 걷는 모습을 떠올리긴 했지만…….”
  • “이 여자 대단한걸. 지금 면접장 잘못 찾아온 것도 모르잖아.”
  • 성천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숙이며 옆에 있는 현욱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