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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방귀나 한 방씩 드세요!

  • 수백 명의 사람이 성문을 나가 곧 장정에 도착했다. 장정 밖에는 배웅하러 나온 가족이 가득했다. 이것은 유배 가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 나장들도 이런 상황을 막지 않았다. 죄인들이 가족에게서 은자라도 받으면 결국 자기들의 주머니에 들어오게 될 테니까. 그래서 오히려 시간을 더 끌었다.
  • 사람들은 기대를 품고 자기 가족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이어 많은 여인이 친정 식구들에게서 여비를 받았다.
  • 심씨 가문의 사람들도 왔다. 심씨 가문은 여전히 심계향을 아주 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큼직한 보따리를 보내왔다.
  • 송 노부인은 그제야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줄곧 우거지상이던 심계향은 이 보따리를 받고 마침내 약간의 존재감을 찾았다. 그녀는 일부러 강슬기를 힐끗 보았다.
  • “우리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걱정하시네. 어떤 사람과는 다르지. 인제 곧 떠날 텐데 아직도 친정 식구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으니.”
  • 이것은 분명히 강슬기를 비웃는 소리였다. 그러나 강슬기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그냥 의식을 잃은 송호연의 얼굴만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 “상서부의 사람이야.”
  •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멀리서 상서부의 마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기대 어린 눈빛으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 노부인마저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지경까지 몰릴 줄은 몰랐구나.’
  • 곧 마차가 앞에 와서 멈춰 섰다. 그러나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계집애 한 명뿐이었다. 이 계집애는 완전히 낯설었다. 강슬기의 기억 속에는 이런 사람이 전혀 없었다.
  • 게다가 계집애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소매 속에서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 “큰아가씨, 그날 아가씨께서 굳이 군신부로 시집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재난을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리께서는 비록 이러고 싶지 않지만, 다른 도련님과 아가씨들을 위해 마음을 모질게 먹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친서입니다. 나리께서는 이제부터 큰아가씨가 상서부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 이것은 분명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었다. 만약 원주가 그대로 살아 있다면 아마도 화가 나서 미쳤을 것이다. 역시 책 속의 원주만 나쁘다고 탓할 수는 없었다.
  • 군신부의 사람들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오만한 계집애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가슴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 ‘이 강 상서는 정말 매정한 사람이구나!’
  •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지만, 당사자인 강슬기는 오히려 담담하게 단친서를 받아 들고 계집애를 바라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 “상서 대감에게 전해. 나 강슬기는 앞으로 죽든 살든, 가난하든 잘살든 상서부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 강슬기는 당당한 현대 한의학의 후계자인 자기가 앞으로 그렇게 못살지는 않을 거로 믿었다.
  • ‘언젠가 상서부의 사람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 때가 있을 거야!’
  • “그리하기를 바랍니다!”
  • 계집애는 거만하게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사람들은 그 마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야 정신이 들었다.
  • 심계향은 시큰둥한 눈빛으로 강슬기를 바라보며 사람들을 충동질했다.
  • “난 또 큰 성님의 친정 식구들이 돈이라도 보낸 줄로 알았는데 관계를 끊다니.”
  • 이 말은 대뜸 사람들의 비웃음을 부추겼다.
  • 여태껏 꾹 참고 있던 노부인마저도 오만상을 찡그리며 강슬기를 바라보았다.
  • 둘째 댁과 셋째 댁 식구들은 더더욱 강슬기를 경멸했다. 둘째 부인 왕씨는 자기 며느리 심계향의 말에 맞장구치며 비아냥거렸다.
  • “내 며느리 말이 맞는 것 같다. 넌 원래 재수 없는 사람이야. 네가 시집오자마자 우리 저택을 몰수당하지 않느냐? 인제 네 친정 식구들까지 너와 관계를 끊었으니 네가 화근이 아니면 누가 화근이겠느냐?”
  • “너 강슬기뿐만 아니라 너희 큰댁 모두가 우리 둘째 댁과 셋째 댁을 끌어들인 것이야. 너희가 다 책임져야 할 것이다.”
  • 셋째 부인 허씨는 의식을 잃은 송호연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 ‘송호연이 아니면 우리 집도 말려들지 않았을 것이야.’
  • “우리 어머니 말씀이 맞아. 큰형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유배 가지 않았을 것이야.”
  • “난 유배 가고 싶지 않아. 다 큰형님과 형수님 탓이야. 다 큰형님과 형수님 때문이야!”
  • “…”
  • 둘째 댁과 셋째 댁 아이들도 큰댁 사람들을 비난하고 노부인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편심이 너무 심했다.
  • 원래 정신이 좋지 않은 큰 부인은 화가 나서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송호진도 송호연을 업고 있지 않았다면 그 불같은 성격에 절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 강슬기는 몇 사람의 뻔뻔한 얼굴을 차갑게 스쳐보았다.
  • “예전에 제 서방님이 군신일 때는 모두 아무 말도 없다가 지금 재수 없는 일이 생기니 모든 탓을 우리 큰댁으로 돌리네요. 그것도 협박까지 하면서. 방귀나 한 방씩 드세요!”
  • 이때 마침 정신을 차린 송호연은 이 속된 말을 듣고 눈꺼풀이 풀떡 뛰었다. 그는 잔꾀를 잘 부리는 이 색시가 이렇게 혀끝이 날카로울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