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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아주 기세가 등등하구나

  • “스읍, 시원해! 아주 시원하구먼!”
  • 주상열은 이를 악물었다. 이마에는 식은땀마저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 “녀석아, 내가 평생 짬밥을 먹다가 퇴역하고 나니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 정도 상처라도 생겨서 흐리고 비 올 때마다 답답함이 풀린단다. 하하, 좋은 일 아니냐!”
  • 그는 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 “녀석아, 사해 상회의 그 패거리들은 건달 놈들이야. 그놈들이랑 실랑이하면 안 된다. 복수도 안 되고, 그놈들 찾아가서도 안 돼. 그랬다간 넌 내 아들 아닌 줄 알아.”
  • 그는 혹여라도 이준이 그들을 찾아갔다가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다. 자신이야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조금 억울한들 어떠하리?
  • “알겠어요.”
  • 이준은 바로 약속하고 입을 다물었다.
  • “못났다. 어디 배짱 있으면 마재동한테 사과받고 땅문서도 가져와 보시지. 그럴 수 있겠어?”
  • 이준이 하영의 옆을 지나던 그때, 하영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 그러자 주상열이 노하여 소리쳤다.
  • “주하영!”
  • “그럴 수는 없지.”
  • 이준은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 ‘곧 죽을 놈이 어떻게 사과를 하겠어?’
  • 파티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운이 빠지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손명헌만큼은 유달리 기뻐하며 신나게 술을 마셨다. 이준이 10년간 집을 떠났던 불효막심한 자식놈이라는 것을 이제야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사위인 자신은 고생을 마다치 않고 그들을 3년이나 넘게 도와왔다. 그런 자신과 그를 비교하는 것은 정말이지 그에게 얼토당토않았다.
  • 손명헌은 지금 자신을 충분히 드러냈고, 또 이준을 모질게 한번 밟아주었기 때문에 너무도 통쾌했다.
  • “하영아, 널 위해 아주 특별한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
  • 파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기분이 좋아진 손명헌은 등등한 기세로 손을 휘저었다.
  • “이 선물은 내가 심혈을 다해 준비한 거야. 너를 기쁘게 해주려고 마지막까지 기다렸어.”
  • 그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 “자, 들어와!”
  • 부왕!
  • 엔진이 울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파티장을 덮쳤다. 마당에 있던 모든 손님들은 술이 깨며 하나둘씩 그 모습을 주시했다. 붉은색의 빛을 뽐내는 마세라티 한 대가 천천히 들어왔다. 세련된 외관과 그 위엄을 본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 “하영아, 마음에 들어?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 손명헌은 그윽한 눈빛으로 하영에게 말했다.
  • “오늘부터 네가 이 차의 주인이야!”
  • 여자들은 부러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억대가 넘는 자동차를 선물로 받다니, 정말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하영은 감동에 겨워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 “고마워, 자기야!”
  • 그녀는 감격하고 기뻐하며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구석에 있는 이준을 바라보았다. 이준은 여전히 담담하게 몸을 곧게 펴고 서 있었다. 마치 산봉우리처럼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 “흥! 뻐기기는!”
  • 하영은 시큰둥하게 냉소를 지었다.
  • ‘속으로는 분명 창피해서 참을 수 없을 거야. 질투심에 부끄럽고 또 분하겠지.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일걸! 보여? 이게 바로 실력의 차이야. 아무리 아빠가 너를 지극히 예뻐해도, 네가 아무리 그렇게 거만하게 굴어도 어쩔 도리가 없단 말이야. 우린 이제 사는 세상 자체가 달라! 한때 넌 나를 본체만체 했었지. 이제 나는 네가 올려다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
  • “어머니, 아버지. 저 가볼게요. 시간 될 때 다시 올게요.”
  • 이준도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자리를 뜨려 했다.
  • “아니, 벌써 가려고?”
  • 유영은은 아쉬웠지만 생각을 한번 해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 “가는 길 조심하렴.”
  • 모두 한 식구인데 하영은 저렇게 축하를 받는데, 자기 자신의 행색은 초라하니 분명 내심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상열은 눈을 부릅뜨며 이준에게 말했다.
  • “알겠지? 절대 사해 상회는 가지 마. 네가 거기 갔다간 이 아비 다시는 못 볼 줄 알아!”
  • “알겠어요.”
  •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방에서 나가려던 그 순간!
  • 부르릉!
  • 길쭉한 링컨 리무진이 천천히 문 앞으로 들어왔다. 위엄있고 중후한 차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었다. 리무진은 비록 페라리처럼 배기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마치 천하를 군림하는 대왕과 같은 특별한 기질을 가졌다.
  • 피식.
  • 차가 멈춰서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손명헌의 마세라티 스포츠카는 호랑이 앞의 고양이나 마찬가지인 꼴이 되었다. 급이 전혀 달랐다!
  • 손명헌의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하영의 얼굴에 피었던 웃음꽃은 그대로 굳어져 갔다.
  • 스읍.
  •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숨을 들이켰다. 뜨거운 기름 솥에 물을 붓는 것처럼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 “저, 저……. 링컨 리무진 30억은 넘지 않아? 전국에 몇 대 없을걸?”
  • “그뿐이겠어? 미국 대통령이 타는 차야.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고. 저런 차를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겨우 세 명뿐인데!”
  • “대체 어떤 대단한 분이 오셨길래? 혹시 명헌 씨 아버지 아냐?”
  • 하영도 의아해하며 명헌을 한번 살펴보았지만, 똑같이 놀란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분명 그와 상관없는 차일 것이다.
  • “힘내. 우리도 언젠가 저런 차 가질 수 있을 거야!”
  • 하영은 손명헌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명헌은 그녀의 말에 자신감이 조금은 돌아왔는지 살짝 웃어 보였다. 그때, 이준이 걸어 나오더니 손을 뻗어 그 링컨 리무진에 갖다 댔다.
  • “이 차를 좀 아시나 보죠?”
  • 손명헌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 “잘 모릅니다.”
  • 이준이 대답했다. 손명헌은 오만한 얼굴로 나서서 의기양양하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 “이 차는 내부 구성부터 선 하나하나까지 모두 고전적인 수공 방식으로 제작된 링컨 리무진이에요. 당신이 몸을 팔아도 여기 들어가는 나사 하나 살 수 없…….”
  • 탁!
  • 이준이 바로 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버젓이 차에 올라탔다.
  • ‘차에 탔어?’
  • 부릉-.
  • 차체가 굉음을 내며 떠나갔고, 그 자리에는 배기가스만 흩어졌다.
  •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하나하나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조이준이 그 차에 탈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 그러자 주상열은 눈빛을 반짝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 “봤지, 내가 잘못 보지 않았어! 우리 아들이 얼마나 능력 있고 대단한지 봤지? 이준이 차 한 대 값이면 명헌이 자네 손씨 그룹 회사 전체를 사들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애한테 화장실 청소를 시키려 해? 아주 기세가 등등하구나!”
  • 주상열이 비꼬며 차갑게 웃었다. 손명헌은 갑자기 사지가 뻣뻣해지고 찬바람이 드는 것을 느꼈다. 마치 한 대 또 한 대, 그의 거만한 얼굴을 누군가 세차게 때리는 것만 같았다.
  • 하영의 마음은 더욱 철렁했다. 바보처럼 자신과 이준 사이에 있던 어떤 중요한 것을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내버린 것 같았다. 다시는 붙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 차에 오른 이준은 바로 진강에게 분부했다.
  • “사해 상회로 가.”
  • 그의 온몸에 살기가 넘쳐흘렀다.
  • “죽여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