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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전쟁의 신

아수라, 전쟁의 신

월야주점

Last update: 2021-12-10

제1화 남자의 눈물

  •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 하늘도 땅도 온통 하얗다.
  • 거기 일 년 내내 빙하와 눈으로 덮여있는 깊숙한 곳, 인공위성으로도 탐지해 내지 못하는 불모의 땅에 한 비밀 군사 기지가 우뚝 솟아 있다.
  • 그곳은 최정예의 병사들과 가장 완벽한 의료팀, 최첨단 과학기술 무기가 갖추어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연구를 하지도 첩보 활동을 하지도 않고, 다만 한 사람, 일찌감치 군신의 칭호를 받았고, 동화국의 삼백만 군인들이 영예롭게 생각하는 한 남자를 보호하고 있었다.
  • 눈보라가 칼처럼 매섭게 휘몰아치는 와중에, 군복을 입은 우람한 체구의 노인이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눈보라를 뚫고 걸어오고 있었다.
  • “그 녀석 또 발작했어? 상황이 어때?”
  • 노인이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어깨에는 별 세 개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 “대장님!”
  • 가운을 입은 군의관이 공손히 경례를 한 다음, 한숨을 쉬었다.
  • “용 대장의 병세가 더 심해졌습니다. 이번 달에 벌써 세 번째인데, 조울증의 정도와 파괴력이 세 배도 더 되는 것 같습니다.”
  • “특별히 방 벽에 더 견고하게 알루미늄 합금을 썼습니다. 용 대장이 감정을 발산할 수 있게 하려고, 그런데……”
  •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앞에서 십여 명의 정예 병사들이 20센티미터는 될 듯한 알루미늄 합금 벽을 어깨에 메고, 몹시 힘들게 운반해 나왔다.
  • 벽에는 공 같은 주먹 자국, 용맹한 발자국, 머리 자국 등이 선명하게 가득 튀어나와 있었다. 그 사나운 힘은 벽을 거의 뚫고 나올 것 같았다.
  • “이게 전부 그 녀석이 한 거야?”
  • “네!”
  • 노인은 머리 가죽이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
  • 20센티미터나 되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벽은 소형 로켓탄의 폭격도 견딜 수 있는데, 그 녀석에 의해서 이렇게 되다니, 이 사나운 힘은 탱크도 저리 가라고 할 기세다.
  • “내가 좀 만나야겠네.”
  • 노인이 평온하게 말했다.
  • 군의관은 긴장한 얼굴로 말렸다.
  • “대장님, 용 대장의 조울증이 방금 가라앉았는데, 언제 다시 발작할지 모릅니다. 지금은 너무 위험합니다……”
  • 노인은 두말하지 않고, 기지 내부로 걸음을 내디뎠다.
  • 특별히 제작한 합금 방안에는 한 젊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두 손과 발은 모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노출된 상반신은 구릿빛 피부와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고, 상처 자국과 칼자국이 전사의 영광처럼 온몸에 빽빽했다.
  • 그러나, 지금 그의 눈빛은 공허하고, 침울해 보였다.
  • 노인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고,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 “이번에도 안 죽었네요.”
  • 젊은 남자는 자조의 웃음을 웃었다. 칼로 새긴 듯 강인한 얼굴에는 비웃음과 쓸쓸함이 가득했다.
  • “그 난리를 쳤는데, 염라대왕도 참 무정하네요. 사람이 이렇게 되면, 귀신도 신경 쓰기 귀찮은가 봐요.”
  • “웃기는 소리 하지 마.”
  • 앞에 있던 노인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화가 난 그가 발로 앞에 있던 탁자를 걷어차 엎는 바람에, 옆에 있던 의사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 “염라대왕 따위가 감히 나 진세황의 병사를 건드려?”
  • 노인은 한 손으로 젊은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맹렬한 기세로 말했다.
  • “조이준, 잘 들어. 살아! 반드시 살아야 해!”
  •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네 목숨을 가져갈 수 없어, 아무도!”
  • 눈앞의 만신창이가 된 남자를 바라보며, 진세황이 오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은 칼로 에이는 듯했다.
  • 용 대장 조이준은 동화국 수십 년 이래 가장 우수하고 탁월한 군인이며, 나라의 보물이고, 그가 길러낸 최고의 자랑이다.
  • 어려서 군에 입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수백만 군인들의 숭배를 받았다.
  • 3년 전, 조이준은 부대를 이끌고, 서방의 한 지하 조직 ‘퍼스트’의 템플을 소탕했는데, 부대가 흩어진 상황에서 혼자 일곱 왕좌를 상대하여, 템플을 피로 물들였었다.
  • 그 일로 그는 군신의 칭호를 획득했다.
  • 그러나, 또한 바로 그때 템플에서 가장 독한 ‘만다라의 독’에 노출되어, 심각한 조울증을 앓게 되었다. 일단 발작하면 야수와 같이 변하여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며, 잔혹하고 파괴적이게 된다.
  • 이 독은 발작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해독 방법이 없다. 결국 무참하게 고통을 당하며 야수가 되어, 점점 죽어가는 것이다.
  • 너무나 잔인한 상황이다.
  • “살아요? 이런 상황에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 “매일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인적도 없는 이 오지에 갇혀서, 내가 언제 발작할지, 혹시 전우들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지 걱정하고 있어요. 영감님, 저 이제 전장에 나갈 수도 없고, 군인으로 적당하지도 않아요. 매일 양식을 축내는 것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어요?”
  • “사는 거, 저한테는 너무 괴로워요. 죽는 게 오히려 나아요!”
  • 담담하게 말하는 조이준의 두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차분했다.
  • 그가 생사에 대해 달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진작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고, 내일도 없다. 그저 매일 자신의 발작으로 다친 전우들을 바라보며 미안해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로 가책을 느낄 뿐이다.
  • 주위의 병사들은 남의 일 같지 않은 마음에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 진세황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 “대장님, 용 대장의 증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만일 용 대장이 계속 이렇게 소극적이면 상황은 낙관할 수 없고, 심지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 한 군의관이 하얀색 결정체 분말이 든 봉지를 꺼냈다.
  • “계속 이러면 이걸 쓸 수밖에 없습니다……”
  • 늘 맹렬하고 신속했던 진세황은 순간 멍해지면서 마음의 고통으로 한참을 망설였다.
  • 그는 진세황이 길러낸 군신이다. 수백만 군인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인데, 정말 이걸 써야 한다는 말인가?
  • 하지만, 만일 안 쓰면? 한 달에 세 번이나 발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그것은 그가 언제든지 아무 생각이 없는 야수, 즉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꺼져, 꺼지라고!”
  • 그때, 조이준이 갑자기 흥분하여 화를 내면서, 하얀 분말이 든 봉투를 발로 걷어차고, 힘주어 말했다.
  • “나는 군인이야. 군신이라고! 나한테 이걸 쓰라고? 약쟁이가 되라는 말이야? 만일 그렇게 되면 나는 죽은 형제들 앞에 어떻게 서? 어떻게 이 군복 앞에 당당하게 서냐고?”
  • 몇 명의 정예 병사들은 순간 식은땀이 났다. 비록 조이준이 수갑에 채워져 앉아있지만, 그의 존재감은 너무나 강렬하게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한 마리의 거친 야수처럼, 언제라도 흥분하여 그들을 덮칠 수 있다.
  • “아직 네가 군인인 건 알아? 네가 용 대장, 군신인 건 알아? 알면서, 왜 이 작은 일도 통제 못 하고, 죽느니 사느니 소란이야? 겁쟁이가 되고 싶어?”
  • 진세황이 돌연 화를 내며, 조이준의 눈앞에 손가락을 들이대고 말했다.
  • “네 존엄은 어디 갔어? 백절불굴의 정신은? 절대로 굴종하지 않는 그 기백은 다 어디 갔어?”
  • “앞으로 한 번만 더 죽는다는 말하면, 그 즉시 내 앞에서 꺼져! 내 밑에 절대로 겁쟁이 군인은 없으니까!”
  • 조이준은 눈 앞에서 격노하는 노인을 바라보다가, 울음을 삼키며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 진세황은 코웃음을 친 후, 잠시 망설이다가, 서류를 꺼내 조이준 앞에 던졌다.
  • “한 가지 지난 5년 동안 너한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있는데, 지금 알려줘야 할 것 같다. 보고 나서, 어떻게 할지 스스로 결정해.”
  • “계속 죽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고아와 과부로 평생 고독하게 살게 하고 싶으면, 그럼 죽어!”
  • 고아와 과부?
  • 조이준은 멍하니 있다가, 즉시 서류를 열고 보다가 놀란 소리를 냈다.
  • “나한테, 나한테 딸이 있어요?”
  • 조이준은 사진 속의 인형처럼 하얗고 귀여운 소녀를 보면서 두 손을 떨었다. 죽은 듯 고요하던 조이준의 눈동자가 갑자기 희망으로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나한테 딸이 있어? 나도 희망이 있다고?’
  • “이……이게 정말이에요?”
  • 조이준은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묻고, 혹시 꿈을 꾸는 것인가 하여 힘껏 자신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 “용혼의 정보가 언제 가짜가 있었어? 내가 너를 속여 뭐하게? 5년 전 장릉에서 있었던 임무 기억나지?”
  • 진세황이 담담하게 말했다.
  • 조이준은 5년 전 그날 술집의 온화했던 풍경과 감미로운 여자의 모습이 생각났다. 조이준 생애의 유일한 여자였다.
  • 그때, 진세황이 서류를 그의 앞에 던지며 말했다.
  • “이건 너의 퇴역 신청서야. 사인하면 바로 효력이 시작된다. 너의 걸출한 공헌을 생각해서, 나라에서는 너의 군사적 권한만 회수하고, 너의 대장 계급과 직위는 계속 유지하도록 했다.”
  • “밖으로 나가서, 딸도 보고 부인도 봐.”
  • “영감님, 이래도 돼요? 경도 쪽에서 어르신들이 이러는 거 동의했어요?”
  • 조이준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마음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 한번 용혼은 영원히 용혼이다!
  • 용혼에 들어온다는 것은 일생을 군대에 투신하여, 나라에 헌신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철칙이다.
  • 그런데, 지금 진세황은 강제로 용혼 부대 대장인 조이준을 퇴역시키려는 것이다. 그것은 국법에 대한 도전이므로, 그 과정에 어떤 어려움과 좌절이 있을지 능히 상상할 수 있었다.
  • “흥! 나 진세황이 하려는 일을 누가 감히 막아?”
  • 노인은 오만하게 코웃음을 쳤다. 포스가 작렬했다.
  • 그러나, 조이준은 문득 진세황의 어깨에 네 개였던 별이 세 개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 이건……
  • “영감님, 계급장이……”
  • “여자들처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 진세황이 짜증을 내며 손을 휘젓고, 발로 조이준의 엉덩이를 찼다.
  • “나는 너만 보면 짜증이 나. 어서 꺼져. 어디서 발작해서 행패 부리면 창피하니까, 약은 꼭 챙겨가고!”
  • “그럼, 저는 갑니다.”
  • 조이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영감님 죽을 때, 내가 반드시 와서 임종해 줄게요. 술도 마셔주고!”
  • 진세황이 소리쳤다.
  • “꺼져!”
  • 조이준은 하하 웃으며 손을 흔들고 떠났다. 그는 손에 딸의 사진을 쥐고 있었는데, 아주 따뜻하게 느껴졌다. 앞날에 희망이 가득한 것 같았다.
  • “조이준!”
  • 막 두 걸음 나서는데, 갑자기 진세황이 뒤에서 불렀다. 눈보라를 무릅쓰고 문밖에 선 노인의 우람한 체구는 꿈쩍도 하지 않는 우뚝 솟은 산 같았다.
  • “나가서도 잊지 마라. 한번 용혼은 영원히 용혼이다!”
  • “하늘은 내가 떠받치고 있을 테니까!”
  • “땅은 네 맘대로 걸어!”
  • “세상의 모든 부귀 권세 따위, 모두 네 앞에서 허리를 굽힐 거야.”
  • “그게 우리 용혼의 군신이고 나 진세황이 배출한 전사다.”
  • 척!
  • 진세황이 갑자기 오른손으로 경례를 했다.
  • “나 진세황 용혼 군신을 배웅합니다.”
  • 휘잉!
  • 눈보라가 온 하늘을 덮고 있는 가운데, 강철 전사들이 줄지어 서서 경례를 하며, 소리쳤다.
  • “용혼 군신을 배웅합니다.”
  • 눈 보라가 더욱 심해졌지만, 조이준은 고개를 들고 성큼성큼 눈보라를 헤쳐나가며, 한 걸음도 멈추지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 그가 무정해서가 아니다. 어려서 군에 입대한 이래, 피를 흘리고 땀을 흘렸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그였는데, 그 순간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 남자의 눈물이 더욱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