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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아버지의 상처

  • 하영은 이를 더욱 악물었다. 그녀는 이 불청객이 너무도 미웠다.
  • 신이 난 주상열은 큰 소리로 웃어 재꼈다.
  • “이 녀석, 자, 아버지랑 한잔하자!”
  • “아버지, 제 술 받으세요.”
  • 이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주상열과 술과 고기를 먹으며 즐겼다. 그가 예비 사위 손명헌을 완전히 무시하자, 명헌의 얼굴은 한층 어둡고 무거워졌다.
  • 그러자 하영은 명헌의 손을 덥석 잡으며 살뜰하게 말했다.
  • “이 집의 사위는 너니까 아빠는 신경 쓰지 마.”
  • 그 말인즉 주상열이 아무리 이준을 예뻐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미인을 손에 얻은 자는 결국 손명헌이 아니던가? 손명헌은 그녀의 말에 기분이 풀려 웃으며 말했다.
  • “그럼, 장인어른 솔직하신 성격은 이미 익숙해.”
  • 그는 그저 뒤에서 이준을 흘끗 바라보며 차갑게 웃음 지어 보일 뿐이었다.
  • ‘주상열도 어쩔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조이준은……. 감히 사람들 앞에서 내게 망신을 줘? 이 몸이 너한테 어떻게 할지 한번 두고 보자고.’
  • 술과 음식이 몇 번 돌고 나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금수저 손명헌에게 술을 권하며 그의 환심을 사려 했다.
  • 손명헌이 호기롭게 일자리를 요청하거나, 돈을 빌리려 하거나, 심지어 집안의 일과 연관된 것까지 쿨하게 받아주다보니,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환호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자 하영도 더욱이 자신감이 넘치고 흥분해 얼굴마저 상기되었다. 그녀는 당시 자신이 정신 못 차리고 이준이라는 가난뱅이에게 시집을 갔다면 이런 날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안도했다.
  • 그러던 중 마음이 조금 무거웠던 엄마 영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사위, 자네 집안이 큰 회사를 운영하니까 믿을만한 사람이 도와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준이 이제 막 퇴역하고 돌아와서 잠시 할 일이 없을 텐데, 자네가 조금 도와줄 순 없겠는가?”
  • 영은은 술잔을 든 주름진 손을 떨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 “자네가 우리 하영이와 교제하고부터 내가 부탁 같은 거 한 적 없잖는가, 오늘 한 번만 내 부탁 좀 들어주게. 응?”
  • 영은은 온전히 이준을 생각하는 마음에 그리 한 것이었다. 그 순간 이준은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어머니에게 자식이란 그가 얼마나 컸든 상관없이 영원히 어린아이와 같았다. 어머니는 늘 보답을 바라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어 하는 그런 존재였다.
  • “어머니, 괜찮아요.”
  • 이준이 영은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그녀의 아들 조이준은 이름난 군신으로,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 하물며 경도에 있는 조씨 집안까지도 말이다!
  • 손명헌도 얼른 영은을 붙잡으며 한마디 하려 했으나, 곁에 있던 하영이 먼저 짜증을 내며 입을 열었다.
  • “엄마, 그만 좀 할 수 없어? 명헌 씨 회사가 무슨 자선 기구도 아니고, 모든 직책, 모든 업무에 전문 인력들이 필요해. 모두 하나하나 걸러서 선발된 사람들이야. 학력도 능력도 없는 이준이 거기 가면 밥만 축내기밖에 더 하겠어?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명헌 씨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
  • 주상열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 “왜, 아직 문을 넘어선 것도 아닌데 네 엄마한테 큰 소리야?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 하영이 억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 “아빠는 왜 항상 이준한테만…….”
  • “그만, 그만.”
  • 그러자 손명헌이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급히 나섰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 “장인어른, 장모님, 하영이 말이 틀리진 않습니다. 기술과 전문성이 중시되는 회사이다 보니 자리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사위가 한번 힘써보겠습니다!”
  • 그러자 영은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명헌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이준에게 말했다.
  • “그럼, 저희 회사 화장실 청소 직원이 하나 모자라거든요. 거기 잘 맞을 것 같은데, 한번 생각해 보실래요? 그냥 바닥 좀 닦고 변기 세척하고 하는 간단한 일이에요.”
  • 이준의 눈동자가 매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 “허튼소리!”
  • 주상열이 벌떡 일어나 손명헌을 가리키며 욕을 했다.
  • “개놈 자식, 내 아들한테 네놈 변기나 닦으라는 거냐? 저 자식이!”
  • “아이고, 장인어른 너무 그러지 마세요.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 손명헌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술잔을 들었다.
  • “장인어른, 술 한잔 드릴 테니 화 푸세요…….”
  • 탁!
  • 주상열이 손을 뻗어 그의 술잔을 쳐냈다.
  • “누가 네 장인어른이야? 내 눈앞에서 꺼져! 나한테는 너 같은 사위 없어! 내 딸한테서 떨어져!”
  • 손명헌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주변 사람들도 순간 당황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아빠, 너무하는 거 아냐? 명헌 씨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 하영이 참지 못하고 눈물을 닦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그동안 우리 집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잊었어? 명헌 씨가 줄곧 뒤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길거리에 나앉았어. 그런 사람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 하영이 씩씩대며 이준을 가리켰다.
  • “이준은 우리가 키워줬는데도 말 한마디도 없이 집 나가서 10년 동안이나 연락도 없었어. 이 자식이 우리 집을 위해 뭘 해줬어? 집에 돈이라도 한 푼 준 적 있어? 뭘 근거로 그런 사람을 명헌 씨랑 비교해?”
  • 이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꺼냈다.
  • “내가 가기 전에 땅문서 남기고 가지 않았어? 족히 20만 평은 되는 땅인데. 상업지역 개발되어서 아무것도 안 해도 연간 임대료만 사오억은 나왔을 텐데?”
  • 그 땅은 이준 자신이 주씨 집안에 남겨준 땅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경도에 있는 조씨 집안에 부탁해 자신의 뒷일을 부탁하는 의미로 주상열에게 남겨준 것이었다.
  • 이준도 자신이 그렇게 큰 재산을 남겼는데 주씨 일가가 10년 동안 여전히 옛집에서 낡은 가구들을 쓰며 살고 있는 모습이 의아하긴 했었다. 옛 생각을 하며 사치를 부리지 않는 것이리라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그런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 그의 말에 하영이 더 차갑게 대꾸했다.
  • “하하, 지금 그 땅문서를 입에 올려? 그 땅문서가 아니었다면, 우리 집에 그런 큰 재앙도 없었을 거야!”
  • 주상열의 안색이 일순 변했다.
  • “시끄러워! 말하지 마!”
  • “왜 말하면 안 돼요? 난 말해야겠어요!”
  • 하영이 머리끝까지 화를 내며 악을 썼다.
  • “그 땅문서 때문에 아빠가 사해 상회 마재동한테 찍힌 거잖아!”
  • “장릉에서 그 악랄하고 짐승만도 못한 놈들을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땅문서 가져간 것도 모자라 아빠의 한쪽 다리까지 부러트렸다고! 그 때문에 아빠 다리에는 아직도 철심이 박혀있어. 비가 오는 날이면 고통스러워하신단 말이야. 그걸 알기나 해?”
  • 윙-.
  • 이준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고, 현장은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손명헌만이 유일하게 이준이 망신을 당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 영은은 몰래 눈물을 훔쳤고, 주상열은 눈빛을 피하며 슬쩍 오른쪽 다리를 뒤로 빼더니 괜히 웃으며 말했다.
  • “저 계집애가 헛소리를 하네. 조금 다쳤을 뿐이야. 그리고 다 나은지가 언젠데? 나도 정찰병 출신인데, 그놈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하하, 그놈들은 나보다 더 심하게 다쳤어.”
  • 이준은 다만 침묵하고 있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주상열의 오른쪽 다리를 한 손으로 잡았다. 족히 십여 센티미터는 되는 철심이 박힌 자리가 눈에 띄었다.
  • 이준이 상처를 누르며 말했다.
  • “아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