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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아빠는 영웅

  • 조이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 “네!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는 군인이래요. 영웅이래요!”
  • 조이준이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송이의 까맣고 커다란 눈은 자랑과 행복으로 가득 찼다.
  • “우리 아빠는 슈퍼맨보다 세고, 아이언맨보다 멋있어요.”
  • “비록, 비록 아빠는 한 번도 송이를 보러오지 않았지만, 엄마가 아빠는 더 많은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랬어요. 나쁜 놈들을 전부 붙잡아야 하니까, 송이는 아빠 원망 안 해요. 송이는 그냥, 그냥 아빠가 보고 싶어요......”
  • 송이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지만, 아이는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 “하지만, 엄마가 그랬어요. 송이가 위험에 빠지면, 엄마하고 송이가 괴롭힘을 당하면, 아빠가 틀림없이 송이 앞에 나타나서 송이를 보호해 준다고!”
  • 조그만 여자아이는 희망과 갈망을 가득 담은 까맣고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 “아저씨, 아저씨는 아주 세니까, 틀림없이 아빠가 송이를 보호하라고 보낸 사람일 거예요. 아빠가 곧 송이를 보러 올 거지요? 그렇죠?”
  • “네? 그래요?”
  • 조이준은 속이 뭔가로 꽉 막힌 것 같았고, 괴로워서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는 눈시울을 붉힌 채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맞아. 송이 정말 똑똑하구나!”
  • “와! 아빠가 돌아온다, 송이도 아빠가 있다!”
  • 송이는 신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조그만 여자아이의 웃는 얼굴은 꿈처럼 너무나 맑고 순수해서 살짝만 만져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 윤다정의 눈도 발개졌다. 그녀는 몰래 몸을 돌려 눈물을 훔쳤다.
  • 그동안의 쓰라린 고통이 어떠했는지는 그들 모녀만이 안다. 다른 사람들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 “이상한 아저씨, 내가 아저씨한테 비밀 하나 보여줄게요. 우리 둘만 알아야 돼요. 선생님하고 엄마도 몰라요.”
  • 송이가 작은 손으로 조이준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가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낙서 같은 그림을 꺼냈다.
  • “이상한 아저씨, 이것 보세요. 이건 내가 그린 아빠예요. 군복 입고 총 든 사람이 우리 아빠예요. 뒤에 빨간색으로 그린 두 사람은 나하고 엄마예요.”
  • “아빠가 돌아오면 나쁜 사람들이 엄마를 괴롭히지 못할 거예요. 무서운 개 때문에 멀리 돌아서 집에 올 필요도 없어요. 인우 녀석도 다시는 송이를 아빠 없는 아이라고 놀리지 못할 거예요.”
  • “이상한 아저씨, 송이는 정말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요.”
  • 조이준은 떨리는 두 손으로 유치하고 단순한 그 낙서를 들고 있었는데, 마음이 울컥하면서 견딜 수 없는 가책과 자책이 밀려들었다.
  • ‘딸아, 미안해. 네 아빠는 영웅이 아니야.’
  • ‘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이기적인 찌질이, 나쁜 놈이야.’
  • 그는 당장이라도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
  • “이상한 아저씨 왜 그래요?”
  • 송이는 순진한 큰 눈을 깜빡거리며, 조이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 “아저씨 왜 울어요?”
  • “송이야 미안하다. 아저씨가 일이 좀 있어서, 다음에 다시 올게.”
  • 조이준이 몸을 돌려 큰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있던 모든 생각은 다 사라지고, 그는 다만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부끄러운 자신에게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 “조이준 씨......”
  • 윤다정은 따라 나가서 큰 소리로 불렀지만, 조이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윤다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 “이상한 사람이네.”
  • 조이준은 단풍나무 옆에 서서,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 그는 이전에 머릿속으로 윤다정 모녀와 만나는 수천 가지의 장면을 시뮬레이션해 보았고,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미움받을 마음의 준비를 모두 하고 있었다.
  • 그러나 그는 두 모녀와 정말로 만났을 때, 자신이 아이 아버지라고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윤다정은 그렇게 분별력 있고 부드러우며 지혜로운 사람인데, 자신을 위해 딸을 낳고, 5년을 독수공방했다. 심지어 집안에서 쫓겨나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다 끊어졌다.
  • 송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신을 영웅이라며 숭배하고 있었다. 그 조그만 아이의 마음속에서 그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 그는 어떻게 그들의 그 큰 기대에 부응하며, 어떻게 그들 모녀를 볼 면목이 있겠는가?
  • 5년 동안 털끝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조이준이 어떻게 그들 모녀 앞에 나타나며, 한 가족으로 자리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들 모녀에게 잘못한 게 너무 많아. 적어도 지금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될 자격이 없어.”
  • 조이준은 먼 곳을 바라보며 탁한 공기를 내뱉었다.
  • “잠시 아이 아빠라고 밝히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모녀 옆에 남아서, 그들을 보호하고, 그동안 못 해준 것을 보상해줘야지. 내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될 때까지.”
  •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무슨 신분으로 그들 옆에 남아야 자연스럽고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지?’
  • 조이준은 생각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 그는 담배를 비벼끄고, 내내 생각하면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 “용 대장님, 돌아오셨습니까?”
  • 계속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진강은 황급히 차에서 나와 공경의 표정으로 몸을 곧게 세웠다.
  • “응.”
  • 조이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 “용 대장님 누구하고 싸우셨습니까?”
  • 나진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같은 군인이라 조이준 몸에 흐르는 사나운 기운을 느낀 것 같다.
  • “제가 가서 없애버릴까요?”
  • 나진강의 양미간에 살벌한 살기가 드러났다.
  • 비록 조이준이라는 군신 앞에서 나진강은 초등학생처럼 공경하는 모습이지만, 동시에 그는 또한 장릉에서 막중한 권력을 가진,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대단한 인물이다.
  • 적어도 윤씨 집안이나 이씨 집안 같은 이류 집안은 그의 앞에서 굽신거려야 하는 수준이다.
  • “그냥 조무래기들이야. 관둬.”
  • 차에 앉은 조이준은 귀찮은 듯 손을 내저었지만, 눈은 번뜩이고 있었다.
  • 윤씨 집안은 윤다정의 가족들이다. 저 바보 같은 여자는 마음이 여려서 여전히 가족들을 신경 쓴다. 자신도 너무 심하게 해서 여자를 상심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 하지만, 그들이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마지노선을 자꾸 건드린다면, 조이준은 자기 손으로 그들 일가를 다 끝장내 줄 수도 있다.
  • “네!”
  • 나진강은 조금의 다른 의견이나 감정적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 복종은 군인의 본분이다.
  • “용 대장님, 그럼 우리 이제 어디로 갈까요?”
  • ‘어디로 가지?’
  • 조이준은 차창을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장릉 시는 그의 제2의 고향으로, 너무 많은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이 있는 곳이다.
  • 예를 들면 자신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데도 자신을 한결같이 대해준 그의 양부모 주상열 부부!
  • 그리고, 꽃무늬 치마에 양 갈래머리를 하고, 늘 자신을 따라다니며, 이준 오빠 이준 오빠 하던, 주하영!
  • 자신이 말도 없이 군대로 가버린 그 날 이후 이미 10년이 지났다.
  • “10년이나 지났네. 많이 늙으셨겠지? 가서 봐야 하는데......”
  • 조이준의 눈에 진한 그리움이 드러났다.
  • ‘윤다정과 송이 쪽은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니, 우선 두 분을 뵙고 효도라도 좀 하자.’
  • “나진강, 집으로 가자!”
  • “집? 용 대장님, 경도엘 가시려고요?”
  • 나진강이 놀라서 말을 꺼냈다가 곧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속으로 아차 하고 중얼거렸다.
  • 용 대장의 금기를 건드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