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2화 의성의 복귀

  • 홍광건설 빌딩.
  •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강인호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 그가 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로비에서 바삐 움직이던 직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다들 그를 바라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 수십 쌍의 눈동자들은 각기 다른 빛을 띠고 있었다. 동정도 있었고, 조롱도 있었으며, 멸시도 있었고, 냉정함도 있었다.
  • 그들 모두 이 남자가 바로 몹쓸 짓을 당한 뒤 투신자살한 장민영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재수도 지지리도 없는 남자 말이다.
  • 하지만 자신을 향한 각양각색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강인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아예 그들을 무시했다.
  • 그에게 있어 그들은 조금의 가치도 없는, 심지어는 관심을 줄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 그는 곧바로 로비 프런트에 있는 남성 매니저 앞으로 걸어갔다. 이에 매니저가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
  • “강인호 씨,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그러자 강인호가 명령하듯 말했다.
  • “제 아내가 사고를 당했던 날의 모든 감시카메라 영상을 원합니다.”
  • 그의 아내는 바로 이 회사의 마케팅팀 과장으로 일했었고,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 그녀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 그렇기에 감시카메라 영상만 손에 넣는다면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매니저의 안색이 살짝 바뀌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죄송합니다, 강인호 씨. 며칠 전 선로에 문제가 생겨서 모든 감시카메라 영상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그러자 강인호가 순간 두 눈을 부릅뜨며 냉소 지었다.
  • “세 살짜리 아이도 안 믿을 그 말을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겁니까?”
  • ‘그렇게 공교로울 리가? 그토록 중요한 증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 “정말입니다, 강인호 씨.”
  • 매니저가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에 강인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럼 원본 하드드라이브를 저한테 주시죠. 제가 직접 사람을 찾아 복구할 테니.”
  • 그의 인맥이라면 세계 정상급의 전문가를 동원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 그리고 하드드라이브만 아직 남아있다면 영상을 복구하는 것도 전혀 문제없었다.
  • 그가 하드드라이브를 요구하자 매니저의 안색이 순간 파리해지더니 난감한 듯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 “강인호 씨, 그건 직원들의 프라이버시와 회사의 기밀에 관계된 문제라 드릴 수 없습니다.”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죠!”
  • 강인호에게는 더 이상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 “당신 사장더러 나오라고 하세요. 제가 직접 그쪽 사장과 얘기하죠. 대체 누가 뒤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지 보고 싶군요!”
  • 그의 말에 다들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매니저가 망설이듯 말했다.
  • “우선 약속부터 잡으셔야 합니다. 다른 날 다시 찾아오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 쾅!
  • 강인호가 화가 난 듯 프런트를 내려쳤다. 그 충격에 프런트 위에 올려진 대리석이 진동할 정도였다.
  • “이 강인호가 누구 하나를 만나는 데 약속 따위가 필요한가? 3분 줄 테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해. 1초라도 늦었다간 그 후과는 알아서 책임지라고 하고!”
  • 그는 현재 사건의 원흉을 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에 그는 더는 자신의 제멋대로 날뛰던 본성을 억누르지 않았다.
  • 그렇게 모두가 난처해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 3분이 지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한번 보고 싶군!”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VIP 엘리베이터에서 두 개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 앞서 걸어 나온 건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 정장에 가죽구두를 신고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채, 손목에는 롤렉스 금시계를 차고 있는 남자는 과도한 음주로 인한 것이 분명한 핏기 없는 얼굴에 눈빛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 그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사람은 덩치가 큰 남자였는데, 건장한 체격에 온몸의 근육 때문에 입고 있는 정장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했다.
  •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말없이 서있는 남자는 품 안에 아마도 총인 것 같은 딱딱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 “정 대표님!”
  • 그의 등장에 그곳에 있던 모든 직원이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 그자는 바로 홍광건설의 오너인 정진우라는 인물로, 신진 건설사 상인이었다.
  • 그의 뒤를 따른 덩치 큰 남자는 그의 보디가드였는데 퇴역 군인으로 특기는 격투기와 제압술이었고, 각종 총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인물로 이름은 양현이었다.
  • “말해봐! 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
  • 정진우가 재밌다는 듯 걸어왔다. 강인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불쌍한 생쥐를 보고 있는 듯했다.
  • “당신에게 감시카메라 증거를 숨기라고 지시한 자가 누구지?”
  • 강인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 “왜? 아직도 그 사건을 손에서 놓지 못한 건가? 경찰도 포기한 사건인데 말이야.”
  • 정진우가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 “이봐 형씨, 당신은 사실 기뻐해야 해. 와이프가 죽어서 보상금도 수억씩이나 받아 가고, 젊고 예쁜 애로 하나 더 찾을 수 있게 됐잖아. 안 그래? 그것도 아니면… 보상금을 더 뜯어내고 싶은 건가?”
  • “감당 못 할 상대를 화나게 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겠어?”
  • 강인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 “어디서 허세야!”
  • 정진우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 “형씨, 수억이면 충분히 챙겨준 거야. 당신 와이프 같은 여자는 기껏해야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된다고! 더는 못 줘.”
  • 그 한마디가 강인호의 역린을 건드린 듯 그의 두 눈이 순간 번뜩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가 손을 들어 정진우의 뺨을 내려쳤다.
  • 짜악!!
  • 모든 사람들이 다 똑똑히 들었을 만큼 커다란 마찰음이 울려 퍼지더니 하얀 치아 두 개가 정진우의 입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