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조각 하나가 강인호의 손바닥에 상처를 낸 것인지 방울 방울의 붉은 피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집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열몇 명의 총을 든 남자들은 그의 포효에 깜짝 놀라 흠칫 몸을 떨며 누구 하나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그러던 그때, 그 문신을 한 남자가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오더니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마스터! 손님이 왔습니다!”
“누구야?”
강인호가 티슈를 집어 손에서 흐르는 피를 가볍게 닦아내며 물었다.
“안씨 가문의 집사인 고성일이라는 사람입니다.”
문신한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안씨 가문이라는 말에 강인호의 동공이 순간 격하게 흔들리더니 그가 냉소를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들여보내!”
“사람들을 적잖이 데리고 왔는데, 다들 무장한 상태더라고요.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할까요? 아니면 제압한 상태로 데리고 들어와 무릎을 꿇릴까요?”
남자가 물었다.
“그럴 필요 없어. 고작 개미 몇 마리가 내 앞에서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어?”
강인호는 눈썹을 추켜올렸다.
“알겠습니다!”
남자가 밖으로 나갔다.
이내, 혼잡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신을 한 남자와 열몇 명의 조직원들이 잔뜩 경계 태세를 취한 채 한 무리의 낯선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한 무리의 낯선 이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은 둘이었다.
그중 하나는 환갑을 넘긴 나이의 중절모를 쓴 남자였는데, 갸름하고 살집이 없는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채 빙그레 웃는 모습이 꽤나 음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로, 거대한 체구와 포악해 보이는 생김새의 안하무인인 듯 보이는 자였다.
그런 그들의 뒤를 스무 명이 넘는 남자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다들 손에 총을 든 정예 보디가드들이었다.
그리고 그 환갑의 노인이 바로 안씨 가문의 집사인 고성일이었다.
그는 부산에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안씨 가문의 가주를 따르며 그와 생사를 함께 해온 인물로, 그 비열한 수단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마왕고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의 옆에 있는 건장한 젊은 남자의 정체는 알 수가 없었다.
고성일은 꽤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강인호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강 선생님.”
강인호는 치얼스 소파 위에 앉아 멸시 어린 시선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나와 악수를 나눌 주제가 못 돼.”
그 말에 고성일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어쨌든 그 또한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던 사람인지라 이내 다시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이 심하시군요, 강 선생님.”
말을 내뱉으며 그는 자신과 함께 온 건장한 남자를 데리고 자리에 앉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문신한 남자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리 마스터께서는 앉으라고 한 적 없어!”
그러더니 순식간에 기관단총을 들어 올려 두 사람을 겨눴다. 그리고 이 같은 그의 행동은 곧바로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촤라락!
현장에 있던 양쪽 진영의 사람들은 모두 다 총을 들어 올리고 언제든 싸움을 시작할 자세를 취했다.
정말이지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숨 막히는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이 같은 상황에 고성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이들이 이 정도로 막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실수로 총이 발사되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살육의 현장이 되어버릴 수도 있을 텐데, 이들은 정말 전혀 걱정도 안 되는 건가?’
하지만 그런 그와 달리 강인호는 표정 없는 얼굴로 그저 입을 열어 한마디 내뱉었을 뿐이었다.
“이봐 고씨, 안씨 가문에서 보내서 온 건가? 내가 아직 찾지도 않았는데, 그쪽에서 먼저 죽으러 온 거야?”
그 말에 고성일은 냉소를 터트렸다. 안씨 가문의 집사로서 그는 조금이라도 겁먹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안씨 가문은 강 선생님이 건드릴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고성일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불장난을 할 때는 조심하셔야죠.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 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헛소리 집어치워. 당신한테 낭비할 시간 따윈 없으니까.”
강인호가 말했다.
“안씨 가문에서 당신 같은 개를 보낸 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아닌가?”
그의 말에 고성일의 두 눈에 분노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화를 억누른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강 선생님의 아내분의 일은 꽤 복잡합니다. 오해인 부분도 많고, 얽혀 있는 분들도 여럿이죠. 실로 부득이하게도, 안씨 가문에서는 당신께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강인호는 잔뜩 화가 난 듯 한 자 한 자 날카롭게 말을 내뱉었다.
“안씨 가문에서 나더러 조사를 하지 말라고 하니, 난 꼭 해야겠어! 조사뿐만 아니라 죽이기까지 해야겠어! 그러니 돌아가서 안씨 가문에 전해. 관 짜놓고, 목덜미도 깨끗하게 씻어놓고, 유서까지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알아들었으면 꺼져!”
“화내지 마시고 우전 조건부터 들어보시죠.”
고성일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래? 무슨 조건인지 들어나 보지.”
강인호가 그런 그를 노려보았다. 이에 고성일은 품 안에서 조심스레 수표를 한 장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확인해 보시죠!”
강인호는 수표를 건네받아 힐긋 훑었다. 그 위에 적힌 액수는 자그마치 100억이었다. 그리고 수표 위에는 여진그룹의 재무팀의 도장이 찍혀있었다.
“100억이면 적은 액수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고성일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
“또한 안씨 가문에서도 아내를 잃은 강 선생님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에 약속하건대, 강 선생님께서는 부산 내에서 마음대로 3명의 여인을 고르셔도 됩니다. 연예인이나 모델, 학생, 심지어 유부녀라도, 강 선생님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저희 쪽에서 무슨 수를 쓰든 그 여인들을 강 선생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음대로 데리고 놀거나 처리해 버리거나, 평생 당신의 노예로 쓰실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