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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하늘을 찌르는 권세

  • 와장창!
  • 그 충격에 티테이블이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에 한가득 널린 조각들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 날카로운 조각 하나가 강인호의 손바닥에 상처를 낸 것인지 방울 방울의 붉은 피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집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열몇 명의 총을 든 남자들은 그의 포효에 깜짝 놀라 흠칫 몸을 떨며 누구 하나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 그러던 그때, 그 문신을 한 남자가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오더니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 “마스터! 손님이 왔습니다!”
  • “누구야?”
  • 강인호가 티슈를 집어 손에서 흐르는 피를 가볍게 닦아내며 물었다.
  • “안씨 가문의 집사인 고성일이라는 사람입니다.”
  • 문신한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안씨 가문이라는 말에 강인호의 동공이 순간 격하게 흔들리더니 그가 냉소를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 “들여보내!”
  • “사람들을 적잖이 데리고 왔는데, 다들 무장한 상태더라고요.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할까요? 아니면 제압한 상태로 데리고 들어와 무릎을 꿇릴까요?”
  • 남자가 물었다.
  • “그럴 필요 없어. 고작 개미 몇 마리가 내 앞에서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어?”
  • 강인호는 눈썹을 추켜올렸다.
  • “알겠습니다!”
  • 남자가 밖으로 나갔다.
  • 이내, 혼잡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신을 한 남자와 열몇 명의 조직원들이 잔뜩 경계 태세를 취한 채 한 무리의 낯선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 그 한 무리의 낯선 이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은 둘이었다.
  • 그중 하나는 환갑을 넘긴 나이의 중절모를 쓴 남자였는데, 갸름하고 살집이 없는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채 빙그레 웃는 모습이 꽤나 음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로, 거대한 체구와 포악해 보이는 생김새의 안하무인인 듯 보이는 자였다.
  • 그런 그들의 뒤를 스무 명이 넘는 남자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다들 손에 총을 든 정예 보디가드들이었다.
  • 그리고 그 환갑의 노인이 바로 안씨 가문의 집사인 고성일이었다.
  • 그는 부산에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안씨 가문의 가주를 따르며 그와 생사를 함께 해온 인물로, 그 비열한 수단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마왕고라고 불렀다.
  • 하지만 그의 옆에 있는 건장한 젊은 남자의 정체는 알 수가 없었다.
  • 고성일은 꽤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강인호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 “안녕하십니까, 강 선생님.”
  • 강인호는 치얼스 소파 위에 앉아 멸시 어린 시선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 “당신은 나와 악수를 나눌 주제가 못 돼.”
  • 그 말에 고성일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어쨌든 그 또한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던 사람인지라 이내 다시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말이 심하시군요, 강 선생님.”
  • 말을 내뱉으며 그는 자신과 함께 온 건장한 남자를 데리고 자리에 앉으려 했다.
  • 하지만 그 순간, 문신한 남자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 “우리 마스터께서는 앉으라고 한 적 없어!”
  • 그러더니 순식간에 기관단총을 들어 올려 두 사람을 겨눴다. 그리고 이 같은 그의 행동은 곧바로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 촤라락!
  • 현장에 있던 양쪽 진영의 사람들은 모두 다 총을 들어 올리고 언제든 싸움을 시작할 자세를 취했다.
  • 정말이지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숨 막히는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 이 같은 상황에 고성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이들이 이 정도로 막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 ‘실수로 총이 발사되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살육의 현장이 되어버릴 수도 있을 텐데, 이들은 정말 전혀 걱정도 안 되는 건가?’
  • 하지만 그런 그와 달리 강인호는 표정 없는 얼굴로 그저 입을 열어 한마디 내뱉었을 뿐이었다.
  • “이봐 고씨, 안씨 가문에서 보내서 온 건가? 내가 아직 찾지도 않았는데, 그쪽에서 먼저 죽으러 온 거야?”
  • 그 말에 고성일은 냉소를 터트렸다. 안씨 가문의 집사로서 그는 조금이라도 겁먹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 “안씨 가문은 강 선생님이 건드릴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 고성일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 “불장난을 할 때는 조심하셔야죠.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 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 “헛소리 집어치워. 당신한테 낭비할 시간 따윈 없으니까.”
  • 강인호가 말했다.
  • “안씨 가문에서 당신 같은 개를 보낸 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아닌가?”
  • 그의 말에 고성일의 두 눈에 분노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화를 억누른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 “강 선생님의 아내분의 일은 꽤 복잡합니다. 오해인 부분도 많고, 얽혀 있는 분들도 여럿이죠. 실로 부득이하게도, 안씨 가문에서는 당신께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 이에 강인호는 잔뜩 화가 난 듯 한 자 한 자 날카롭게 말을 내뱉었다.
  • “안씨 가문에서 나더러 조사를 하지 말라고 하니, 난 꼭 해야겠어! 조사뿐만 아니라 죽이기까지 해야겠어! 그러니 돌아가서 안씨 가문에 전해. 관 짜놓고, 목덜미도 깨끗하게 씻어놓고, 유서까지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알아들었으면 꺼져!”
  • “화내지 마시고 우전 조건부터 들어보시죠.”
  • 고성일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그래? 무슨 조건인지 들어나 보지.”
  • 강인호가 그런 그를 노려보았다. 이에 고성일은 품 안에서 조심스레 수표를 한 장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 “확인해 보시죠!”
  • 강인호는 수표를 건네받아 힐긋 훑었다. 그 위에 적힌 액수는 자그마치 100억이었다. 그리고 수표 위에는 여진그룹의 재무팀의 도장이 찍혀있었다.
  • “100억이면 적은 액수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 고성일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
  • “또한 안씨 가문에서도 아내를 잃은 강 선생님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에 약속하건대, 강 선생님께서는 부산 내에서 마음대로 3명의 여인을 고르셔도 됩니다. 연예인이나 모델, 학생, 심지어 유부녀라도, 강 선생님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저희 쪽에서 무슨 수를 쓰든 그 여인들을 강 선생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음대로 데리고 놀거나 처리해 버리거나, 평생 당신의 노예로 쓰실 수 있도록 말이죠.”
  • 그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미세하게 변화했다.
  • 그들이 내민 조건은 보통 사람은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
  • 안씨 가문은 정말이지 하늘을 찌르는 권세를 부리는 가문이었던 것이다.
  • 하지만 유독 강인호만이 그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