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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윗선의 개입

  • 서울, 총사령부, 최고 사령관 사무실.
  • 사무실 벽에는 진귀한 붓글씨 그림이 걸려 있었고, 거기에는 “국가를 위하여!”라는 몇 글자가 쓰여 있었다.
  • 문 앞에는 경위 두 명이 꼿꼿하게 선 채로 수시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고, 커다란 나무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 기밀문서는 물론 장식용으로 놓아둔 클래식 라이플과 열 개의 가지런히 놓인 유선 전화기도 있었다.
  • 매 하나의 유선 전화기 위에는 글자가 쓰인 종이가 한 장씩 붙어있었다.
  • 비서.
  • 군사 사무.
  • 가족.
  • 미팅.
  • 등등.
  • 그중 가장 앞쪽에 놓여있는 첫 번째 유선 전화기 위에 붙여진 종이에는 눈에 띄는 커다란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 “의성”이었다!
  • 그리고 한 백발의 몸집이 우람한 노인이 그것들이 놓여있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 그의 신경이 온통 책에 집중되어 있던 그때.
  • 따르릉~
  • 전화기가 울렸다. 이에 건장한 체구의 노인은 불쾌한 듯 고개를 들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질 못하게 하는군. 정말 모든 일을 내가 직접 처리해야겠나?”
  • 하지만 울리고 있는 전화기가 바로 그 첫 번째 전화기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 ‘뭐야!’
  • 콰당.
  •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갑작스러운 동작에 하마터면 의자까지 뒤로 넘어갈 뻔했다.
  • “사령관님!”
  • 두 경위가 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들 역시 이토록 긴장한 사령관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 건장한 체구의 노인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넋이 나간 듯 제자리에 서 있었다.
  • ‘전화가, 드디어… 울렸다!’
  • 거의 5, 6년 만이었다. 그는 재빨리 전화기를 집어 들어 귀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흥분되는 감정을 진정시키고자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입을 열었다.
  • “강 선생님?”
  • 수화기 너머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 “사령관님, 접니다, 봉석원.”
  • 이에 건장한 체구의 노인은 상대가 누군지 알겠다는 듯 말했다.
  • “석원이 자네였구먼.”
  • 그 역시 의성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수하 몇 명을 알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이 바로 봉석원이었다.
  • “석원이, 의성께서… 자네더러 전화하라고 하신 건가?”
  •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 물었다.
  • “그렇습니다.”
  • 봉석원이 나직이 말을 이어갔다.
  • “마스터께서 사령관님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서요.”
  • 그 말에 노인은 기쁜 기색을 내비치며 급히 입을 열었다.
  • “선생님께서 뭐든 필요하신 일이 있다면 말만 하게. 그해의 은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갚을 것이니!”
  • 이에 잠시 망설이던 봉석원은 결국 그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 “마스터의 아내분께서 몹쓸 짓을 당하셨습니다. 그 일로 마스터께서 크게 분노하셔서 부산에서 연루된 사람을 몇 명 죽였는데, 그 일로 현재 협박을 당하고 계십니다. 정부에서는 지명수배까지 내렸고요. 사령관님께서 나서주셔야겠습니다.”
  • “뭐라고!!?”
  • 노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강 선생님의 아내분께서 몹쓸 짓을 당하셨다고? 게다가 협박을 당하고 계신다니?’
  • 그 순간,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 ‘감히 의성의 아내를 건드리다니, 대체 어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란 말인가?’
  • “석원이! 그 일은 내가 지금 당장 처리할 테니 의성께 걱정 마시라고 전해주게.”
  • 노인이 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 “그리고 의성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는가?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전용기를 타고 바로 가지. 의성을 위해 범인을 쏴 죽여버려야겠어!”
  •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 봉석원이 말했다.
  • “마스터께서는 직접 복수를 하시길 원하십니다.”
  • “그… 그래.”
  • 노인이 뭔가 불안한 듯 답했다. 이내 두 사람의 통화는 끝이 났다. 통화를 마친 노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 ‘의성이, 그 존귀하고 오만한 분께서, 직접 복수를 하신다고?’
  • 이는 그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의미였다. 또한, 그것은 부산 전체를 뒤집어엎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될까!’
  • 노인은 감히 태만하지 못했다. 그는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들어 부산시 사령부에 전화를 걸었다.
  • 뚜뚜뚜.
  • 이내 전화가 연결되었다.
  • “여보세요!”
  • 노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장연석.”
  • 그의 한마디에 상대방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 “사… 사령관님, 사령관님께서 어쩐 일로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까?”
  • “이런 한심한! 뭐 하나 묻겠네. ‘강인호’ 혹은 ‘강호운’이라는 이름의 사람에게 지명수배를 내리지 않았나?”
  • 노인이 화가 난 듯 책상을 내려치며 물었다. 이에 상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그 일이 사령관님 귀에까지 들어갔을 줄은 몰랐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최대한 빨리 그자를 잡아들이겠습니다.”
  • “이 멍청한 놈.”
  • 노인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호통쳤다.
  • “당장 그분에 대한 지명수배를 철회하게. 또한 그분의 일에 대해 더는 그 어떤 조사나 간섭도 하지 말게. 알아듣겠나!”
  • “네?”
  • 상대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 “하지만… 그자는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인 사람입니다.”
  • “몇 명이고 몇십 명이고 간에, 자네와는 상관없는 일이네! 나조차도 간섭지 못하는 일이란 말일세!”
  • 노인이 나직이 말을 이어갔다.
  • “게다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겠지. 그분이 죽인 자라면 분명 좋은 사람은 아닐 거야. 그렇게 따지면 그분은 자네들을 도와 악을 처단하고 계신 거란 말이야!”
  • ‘뭐라고?’
  • 상대는 순간 긴장하며 흠칫 몸을 떨었다.
  • ‘최고 사령관님께서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대체 누구길래!? 설마 서울의 어느 재벌가 도련님인 건가!’
  • 노인이 호통쳤다.
  • “알아들었냐고!”
  • “네! 알겠습니다!”
  • 상대가 겁에 질린 듯 답했다.
  • “당장 철회하겠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렇게 파격적으로 지명수배를 내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안씨 가문의 그 집사라는 자가 협박을 해오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수배를 내린 것뿐입니다. 그러니 사령관님께서 저 대신 강 선생님께 사정을 잘 설명해 주십시오. 저에 대한 오해가 없으시도록 말입니다.”
  • “안씨 가문의 집사라니? 제까짓 게 뭐라고 감히 강 선생을 상대로 그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 노인이 극대 노했다.
  • “그자에 대한 모든 자료를 나한테 넘기게. 그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한 번 보도록 하지!”
  • “네! 알겠습니다!”
  • 상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몸을 파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