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일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의 웃음은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보기에 이는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거절할 수 없을 매혹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강인호는 대놓고 웃음을 터트리며 두말없이 수표를 갈기갈기 찢어 공중에 흩뿌렸다.
이에 바닥에 한가득 종이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보세요!”
고성일이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그건 자그마치 100억짜리 무기명 수표란 말입니다!”
“돈? 여자?”
강인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깔보듯 말을 내뱉었다.
“내가 그딴 게 필요한 걸로 보이나?”
“마음이 전혀 동하지 않았을 리가요.”
고성일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150억은 어떠십니까? 200억은요! 얼마가 됐든 만족할 만한 액수가 있으실 것 아닙니까! 말씀만 하시면 안씨 가문은 드릴 수 있습니다!”
강인호는 웃었다. 찬란하고도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그가 손뼉을 치더니 말했다.
“내 지갑 가져와.”
“알겠습니다!”
문신한 남자가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검은색의 서류 가방을 하나 들고나와 강인호에게 건넸다.
“뭐죠?”
고성일은 의아하다는 듯 그 서류 가방을 바라보았다.
“내가 돈이 필요하다고? 이게 뭔지나 확인하고 얘기해!”
강인호가 서류 가방을 열더니 그대로 뒤집어 들자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바닥에 한가득 쌓였다.
놀랍게도 그것들은 전부 다 은행카드였다. 게다가 보통의 은행카드가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어떤 것들을 은빛으로 빛났으며,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카드 위에는 작은 VIP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이에 고성일은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카드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가 무언가 알아차린 듯 입을 열었다.
“그… 그럴 리가!”
그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는 알아본 것이다. 그 카드들은 전부 세계 각지의 이름만 대면 아는 은행의 최고 등급 VIP 카드였다.
예를 들자면, 스위스 은행의 바우히니아 VIP 카드는 전 세계를 통틀어 단 10명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고, 체이스 은행의 블랙카드는 자산이 2조 이상인 사람만이 카드 발급 신청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카드들은 그중 하나만 소유하고 있어도 그 누구도 감히 업신여기지 못했고, 세계 어디를 가든 엄청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그 모든 카드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고성일은 머리가 띵해져 왔다. 더는 논리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고, 그저 이 상황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껏 보고 들은 것도 많았고 눈썰미도 좋았다. 그 카드들은 분명 위조가 아닌 진짜였다!
“당신…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고성일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강인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그제야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강인호는 그의 말에 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돈은 나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어. 여자에도 관심이 없지! 내가 여자를 원한다면, 말 한마디면 모든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얌전히 내 침대로 기어들어 올 거고, 내가 여자를 원한다면 Y 국 왕실의 공주도 받아달라고 애원할 거야! 고작 그딴 장난질로 내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아? 정말이지 어이가 없군!”
그 말을 들은 고성일의 무리는 당연하게도 반신반의하며 그의 말을 그저 지나친 망언 정도로 치부했다.
“그럼 강 선생님께서는 기어코 안씨 가문과 맞서시겠다는 겁니까?”
고성일이 이를 갈았다.
“안씨 가문은 반드시 망하게 될 거야.”
강인호가 불쾌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절대 그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강 선생님.”
고성일은 비통한 심경으로 입을 열었다.
“왜 굳이 양쪽 다 다치게 될 싸움을 하려 하십니까. 아무리 강한 용이라도 그 땅에서 자란 뱀을 이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죠. 당신은 이기지 못할 겁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이곳에 오기 전 조금 알아보았죠. 듣자 하니 당신이 정진우를 죽이고, 그다음으로는 조씨 가문의 네 부자를 죽였다던데요. 이 일로 온 도시가 혼란합니다. 정부에서도 화가 많이 나서 당신에게 지명수배령을 내렸죠. 전국적으로 당신을 쫓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정부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가 계속해서 회유를 시도했다.
“이렇게 하시죠. 저희 안씨 가문은 한 입으로 두말은 하지 않습니다. 저희 쪽 인맥을 동원해 당신에게 내려진 지명수배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앞으로 도망자가 되어 국가에 의해 밤낮없이 쫓기게 될 겁니다!”
하지만 강인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허허허.”
고성일 역시 웃었다.
“그저 서로 돕고 살자는 거죠.”
“좋아!”
강인호는 고개를 돌려 문신을 한 남자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원아, 전화해. 전화해서 지명수배에 관해 물어봐!”
이에 문신을 한 남자, 봉석원은 깜짝 놀라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윗선까지 끌어들이실 겁니까? 일이 너무 커져서 마스터의 행적이 드러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드러나게 되면 드러나라지 뭐! 일은 커질수록 좋아!”
강인호가 소리쳤다.
이에 봉석원은 헛숨을 들이켰다. 그제야 그도 알아챌 수 있었다. 강인호는 정말로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봉석원은 얼른 품 안에서 전화기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가 꺼낸 전화기는 특수 제작한 것으로 기능이 꽤 다양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일반 휴대폰이라기보다는 더욱이는 군용 전화기 같았다.
띠띠띠~
봉석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버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눌러내려 갔다. 행여 잘못 누를까 봐 두렵다는 듯이.
그리고는 다른 이들이 통화 내용을 듣지 못하도록 멀찍이 떨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다들 의아해했다. 모두들 강인호의 속셈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