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다음 화
막시무스

막시무스

익섹큐션어

Last update: 2025-04-30

제1화 아내에게 벌어진 비극

  • “부탁이에요. 제발 저희 남편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요. 그이가 알게 되면 미쳐버릴 거예요.”
  • 외진 곳에 위치한 버려진 공장 안에서 한 여자의 흐느낌 섞인 애원 소리가 흘러나왔다.
  • “알겠어요. 말하지 않을게요.”
  • 나이가 지긋한 한 여자가 연신 흐느끼는 여자를 위로하며 말했다.
  • “그 남자들의 생김새를 말해줄 수 있겠어요? 어떻게 이곳까지 끌려온 건지, 그들은 몇 명이었는지요.”
  • “몰라요! 모른다고요!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 여자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 문 앞에 도착한 강인호는 단번에 그것이 자신의 아내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이에 그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하지만 곧이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그의 이성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 그 녹슨 막사 아래, 아내인 장민영이 옷매무새가 잔뜩 흐트러져 있는 모습으로 바닥에 앉아 여경들을 붙잡은 채 오열하고 있었다.
  • 그리고 바닥에는 온통 몸부림친 흔적들과 끌린 듯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 “민… 민영아?”
  • 강인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 하지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의 아내 장민영은 남편의 모습에 기쁨도 슬픔도 아닌 처절한 절규를 내뱉으며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마치 자신의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더러운 모습을 감추려는 듯이.
  • “아니야! 안돼! 보지 마. 보지 말라고!”
  • 강인호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경찰들이 그를 말렸다.
  • “선생님, 잠시 아내분 혼자 진정할 수 있게 내버려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큰 충격을 받으셨어요. 자책도 심하게 하시고, 굉장히 겁에 질린 상태세요. 저희 쪽 정신과 의사가 얘기해 보도록 맡겨주세요.”
  • 그들 중 한 경찰이 난처한 기색을 띠며 나직이 그를 설득했다.
  • “민영아! 민영아!”
  • 강인호는 흐느끼며 외쳤다.
  •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여기 있어! 내가 곁에 있을게!”
  • ……
  • 그날은 강인호에게는 두말할 것 없이 가장 절망스러운 하루였다.
  • 그의 아내인 장민영이 세 명의 남자에게 강제로 몹쓸 짓을 당한 것이다.
  • 그로 인한 충격으로 그녀는 우울증에 걸려버렸고, 죽어도 강인호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 죄책감이 형체가 없는 커다란 손이 되어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 한때의 그 찬란하고 예뻤던 미소는 더는 그녀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영혼을 빼앗긴 듯 고통에 가득 찬 표정뿐이었다.
  • 그녀는 자주 비명을 내질렀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 눈을 감으면 그 흉악한 얼굴의 남자들이 자신을 덮쳐오는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몇 달 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병원 7층에서 몸을 던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피바다가 되어버린 바닥과 한 장의 유서뿐이었다.
  • “사랑해, 여보. 다음 생에도 당신의 아내로 태어날게.”
  • 눈물에 젖은 유서에는 이 같은 몇 자가 적혀있었다.
  • 유서를 읽고 난 강인호는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 ‘죽인다!’
  • ‘죽인다!’
  • ‘죽인다!’
  • 발인하던 날, 그는 아내의 관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 “민영아, 네 죽음의 이유를 내가 꼭 밝혀낼 거야. 하늘에서 똑똑히 지켜봐. 내가 어떻게 네 복수를 하는지. 내가 그놈들을 하나하나 다 부숴버릴 거야. 뼛조각 하나도 남지 않도록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 ……
  • 며칠 뒤,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동신 은행 본점 내의 VIP 금고.
  • 귀한 사람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고, 억만장자가 아니면 그 문턱조차도 밟지 못하는 공간.
  • “고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은행장인 이상욱은 동경 어린 표정으로 누군가를 향해 깊게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다.
  • 그의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깔끔한 검은 옷차림의 강인호였다. 그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여시죠!”
  • 강인호가 입을 열었다.
  • “알겠습니다.”
  • 이상욱은 열쇠를 꺼내 앞에 있는 최고 보안 등급의 황금 금고를 열었다.
  •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안에서 네모난 모양의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 그러자 강인호가 손을 내저었다.
  • 그의 동작에서 우위에 서있는 자의 오만함이 가득 묻어났다.
  • 이상욱이 공손하게 물러나며 말했다.
  • “문밖에 있을 테니 필요하시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 이윽고 문이 닫히고, 강인호는 복잡한 얼굴로 손을 뻗어 그 네모난 상자를 열었다.
  • 그 안에는 열세 개의 금침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 일곱 개의 큰 침과 여섯 개의 작은 침, 매 하나가 다 정교하게 만들어져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 이 열세 개의 금침은 수많은 신화와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비밀들을 지니고 있는 물건이었다.
  • 십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한 사람이 있었다.
  • 그는 열세 개의 금침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한 산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기도 했다.
  • 서울의 3대 가문과 M 국의 6대 재벌가, 유럽경제협회까지, 이 자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 수많은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그의 침술 치료를 받지 못해 큰절을 하며 애걸할 정도였다.
  • 그는 지하 세계의 의성이라고 불리는 자였고, 현대의학도 따라잡지 못한 기적과도 같은 인물이었으며, 국내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대 의술의 계승자였다.
  • 이렇듯 신비로운 인물은 본인이 가장 정점에 서있던 때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종적을 감추었었다.
  • 그리고 그가 바로 강인호였다.
  • 당시 그는 장민영을 만나고 은퇴 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면서 이 열세 개의 금침을 동신 은행 본점에 봉인해 두었던 것이었다.
  •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번 생에는 다시는 이 열세 개의 금침을 사용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 하지만 운명은 그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 “하늘이시여! 절 다시 세상 밖으로 내몰았으니 어디 한번 거센 피바람을 몰고 와 드리죠.”
  • 강인호는 나직이 말을 내뱉으며 눈 깜빡할 사이에 손을 뻗어 열세 개의 금침을 챙겨 그곳을 떠나갔다.
  • 그가 은행 대문을 나서는 순간, 피할 수도, 걷어낼 수조차도 없는 사악한 안개가 온 세상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