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현은 말을 하면서도 박하준이 안 믿을까 봐 손으로 박하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여보 얼굴 다쳤을 때 진짜 아팠겠네요. 그러니까 앞으로 당신이 더 이상 다치지 않게 제가 잘 지켜줄게요.”
서이현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박하준은 섣불리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이 모든 게 꿈일까 봐 두려웠고 꿈에서 깨면 전부 사라질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너무 오랜 시간동안 혼자 갇혀 있은 탓에 박하준은 아무도 쉽게 믿을 수 없었으며 눈앞에 환한 빛이 비춰도 그저 자신의 허상이라고 여겼다.
손을 뻗은 순간, 그를 비추고 있던 햇살이 한순간에 사라질까 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깔끔하게 한 서이현은 곧바로 방으로 돌아왔지만 박하준은 이미 방에 없었다.
침대에 앉은 서이현은 한참동안이나 박하준을 기다리다가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다음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서이현은 창문으로 비춘 햇살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점점 더 다급해졌다.
“사모님, 도련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박하준 상황이 좋지 않다고?
화들짝 놀란 서이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신을 겨를도 없이 문 밖으로 달려 나갔고 조급해 보이는 진미선을 보며 물었다.
“이모님, 무슨 일이에요? 하준 씨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어디 다쳤어요?”
“다치신 건 아닌데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회사 주주들이 집에 쳐들어와서 도련님에게 태우 그룹 대표 자리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지금 도련님께서 그 주주들에게 둘러싸여서 협박을 받고 있는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제가 회사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도련님을 도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모님이 시아 그룹 장녀인데 도련님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시아 그룹 장녀는 서이현 그녀가 아니라 서아린이다. 그런데 첩이 낳은 딸이 과연 장녀라고 불리울 자격이나 있단 말인가?
“이모님, 이모님께서 언급한 시아 그룹 장녀 서아린은 제가 아니에요. 전 서이현입니다.”
‘서이현? 서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지적 장애가 있는 둘째 딸?’
진미선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서이현은 이미 거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거실은 시끌벅적했다. 우르르 몰려온 주주들은 너도나도 한 마디씩 보태며 박하준에게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강요했다.
“하준아, 여기 있는 삼촌과 아저씨들은 널 어릴 때부터 봐왔어. 우리도 방법만 있다면 너에게 대표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 외부에서 네가 독에 감염되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다들 수군거리잖아. 이 상황에서 네가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태우 그룹은 네 손에 망할 거야.”
“하준아, 너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잖아. 만약 정말 외부 소문대로 네가 독에 감염됐다면 하루 빨리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맞아. 그래야 우리도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빨리 찾을 거 아니야. 그리고 넌 이제 얼른 결혼해서 가문의 뒤를 이어야지.”
“그래, 하준아, 지금 너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몸부터 추스르는 거야. 회사 일은 걱정 말고 이 아저씨들에게 맡겨.”
“하준아…”
주주들은 너도나도 한 마디씩 보태며 박하준에게 대표 자리를 내놓으라고 설득했지만 박하준은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과 고고한 자태로 날뛰는 주주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태우 그룹은 박하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박하준에게 물려준 회사로 박하준은 죽는 순간까지 태우 그룹을 지킬 것이며 절대 다른 사람 손에 빼앗기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