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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할 얘기가 있다

  • 인터내셔널 호텔.
  • 이 휘황찬란한 16층짜리 건물 안에는 5성급 레스토랑에서부터 나이트클럽, 카지노, 바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 온 부산시내에서 이곳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이 빌딩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 그 빌딩 문 앞에는 은백색의 호화로운 롤스로이스 한 대가 멈춰 서 있었다. 그 뒤로는 일곱 대의 벤츠 S클래스가 따르고 있었다.
  • 달칵.
  • 차 문이 열리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년남성이 차에서 내렸다.
  • 회색의 개량 한복 차림의 그는 위엄 있는 생김새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그의 양옆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여덟 명의 보디가드들이 따르고 있었다.
  • “용 회장님!”
  •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그를 보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담아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그는 바로 조필용이었다.
  • 가난한 집안 출신의 그는 수년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밑바닥에서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지금의 이곳까지 올라온 인물이었다.
  • 그리고 현재 정당한 사업은 물론 어둠의 세계까지 휘어잡고 있는 그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 그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로비로 들어서자, 세 명의 젊은 남자들이 그를 맞이했다. 다들 정장에 가죽구두를 신은 멀끔한 모습들이었다.
  • “아버지.”
  • 세 남자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들은 조필용의 친아들들이자 그의 수족과도 같은 인물들로 이름은 모두 외자로 지어 준, 석, 건이었다.
  • “아버지, 우선 사무실로 가시죠. 상회의 부회장이 오늘 밤 저희와 사업상 미팅을 갖는데 아버지께서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답니다.”
  • 조준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그래.”
  • 조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이내 한 무리의 사람들은 로비를 가로질러 회장실로 향했다.
  •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서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 벽에는 먹으로 그려진 산수화가 걸려있었고, 병풍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방안 이곳저곳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진기한 골동품들과 강향단 나무를 조각해 만든 티테이블과 의자들이 보였다.
  •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자단나무로 만든 커다란 사무용 책상이 떡하니 놓여있었다.
  • 티테이블에 앉아 차를 한잔 마시려던 그들은 순간 그 커다란 사무용 책상 앞에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조용히 앉아 있는 한 훤칠한 남자를 발견했다.
  • 남자는 조금의 기척도 없이 그곳에 앉아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턱을 추켜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 부자 넷을 노려보고 있었다.
  • 그 남자는 바로 강인호였다.
  • “누구냐!”
  •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 “얼른 보디가드들더러 들어오라고 해!”
  • 조씨 집안의 세 아들들은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필용을 보호했다.
  • 반면 가늘게 뜬 두 눈으로 강인호를 쳐다보고 있던 조필용은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 그러던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열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보디가드들이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의 그들은 손에 총을 든 채 순식간에 강인호를 둘러쌌다.
  • 죽음을 부르는 새까만 총구들이 강인호를 겨누고 있었다. 조필용이 명령만 내리면 강인호는 곧바로 총알받이가 되어버릴 상황이었다.
  • 하지만 강인호는 여전히 침착하고도 느긋한 모습으로 미동도 없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 그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보디가드들이 마치 투명 인간이라도 된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자네가 누군지 알아.”
  • 조필용이 입을 열었다.
  • “아내가 건물에서 투신한 그 불쌍한 남자구먼.”
  • 그 말에 사람들은 순간 어리둥절해하다 그제야 다들 뒤늦게 생각이 난 듯한 기색을 보였다.
  • 그는 바로 그 운수 지지리도 없는 남자였다! 이에 강인호 역시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내뱉었다.
  • “틀렸어. 당신은 날 몰라. 만약… 날 알아봤다면 진즉에 내 앞에 무릎을 꿇었겠지.”
  • 그의 진짜 정체는 바로 의성이었다. 오랜 세월 이 바닥에서 몸담고 있었던 조필용 역시 당연히 의성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 심지어 한때 의성을 한번 만나보려고 수십억을 썼었지만 아쉽게도 그의 손끝 하나 보지 못했었다.
  • “모두 나가봐.”
  • 잠시 주저하던 조필용이 보디가드들을 향해 나가라는 듯 손짓하자 보디가드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우르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용 회장의 사람답게 물 흐르듯 방을 빠져나가는 보디가드들의 모습은 감탄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 “너희들도 나가 있거라. 저 젊은이와 할 얘기가 있으니.”
  • 조필용이 자신의 세 아들을 향해 지시했다.
  • 이에 잠시 망설이던 그들은 사나운 눈빛으로 강인호를 노려보았다.
  • 그 뜻인즉 감히 자신들의 아버지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죽여버리겠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