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준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기세가 이미 민나연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민나연씨, 제가 저의 가족을 대신해 사과드리죠, 우리 할아버지가 정신이 혼미 해진지 이미 일주일이 됐어요. 만약 당신이 정말 치료할 수 있다면 도와주세요.”
그의 태도는 그나마 예절이 있다고 할 수 있었고 민나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용준씨는 저의 인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요? 인품이 별로인 제가 중간에서 어르신에게 해코지 할까 두렵지 않아요?”
용준은 길고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의사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믿어요. 민나연씨가 환자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민나연은 그를 흘겨보며 속으로 더 이상 기고만장하지 못하는 그를 비웃었다.
“돕는 건 문제가 안 되는 데 일단 듣기 싫은 소리부터 하죠.”
민우빈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알 수 없는 흥분에 잠겨 엄마가 복수하는 것을 기대했다. 용준의 눈썹도 부자연스럽게 찌푸려졌으며 민나연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용준씨, 제가 치료한다고 대답을 했으니 빨리 완치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의 자신은 있어요. 원래는 저와 임현씨 사이의 관계로 인한 거래라 진료비를 받지 않으려 했는데 저는 받은 게 있으면 꼭 갚아 주는 사람이라서요. 용 대표님, 저의 진료비는 아주 비싸답니다!”
용준은 이 여자가 말하는 받은 게 있으면 꼭 갚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용월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포함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다행히 용준은 종래로 돈을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요, 진료비는 마음대로 부르세요. 우리 할아버지만 구할 수 있다면 상관없어요.”
민나연은 남자를 힐끗 보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으며 그 웃음은 아주 오만했다.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의 병은 제가 방금 봤어요. 회복될 때까지 아마 한달 정도 걸릴거예요, 하지만 제가 한 시간 내에 할아버지께서 깨실 수 있게 해드릴 거예요.”
용월은 그녀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허풍 치는데 세금은 안내죠? 진찰도 안 하고 저의 할아버지께서 무슨 병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한 시간 안으로 깨어나신다고요? 벼락이 혀를 내리칠까 두렵지도 않아요?”
민나연은 눈썹을 찌푸리고 이 여자가 앵앵거리는 것이 꼭 파리처럼 귀찮다고 생각하며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입 다물어!”
“이것이 바로 당신과 저의 엄마의 차이예요.”
부자가 같이 변호하고 있었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말을 했다. 용준은 목소리를 듣고 잠시 주춤하다가 민우빈의 눈빛과 마주쳤다. 이 아이는 침착하고 얼굴에 같은 또래의 애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차분함이 묻어나 있었으며 반짝이는 두 눈을 가지고 있어 용준처럼 어린아이를 싫어하는 사람마저 이 아이가 귀엽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귀찮은 민나연이라는 여자한테 이런 귀여운 아들이 있다니.
민우빈은 처음 자신의 아빠와 만났고 그의 눈빛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용준은 그가 예전에 만났던 다른 남자들과는 달랐다.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온몸에 아우라가 비쳤으며 이것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원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민우빈은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묵묵히 민나연의 옆에 다가섰으며 용준은 그를 힐끗 보고는 민나연에게 말을 했다.
“민나연씨, 신경 쓰지 마시고 할아버지를 진찰해 주세요!”
민나연은 화가 잔뜩 나 있는 용월을 보고는 몸을 돌려 병상으로 걸어갔다. 환자의 앞에 선 민나연은 얼굴이라도 바꾼 듯 아주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검은 가방에서 맥박을 짚을 때 쓰는 작은 베개를 꺼내고 어르신의 맥을 짚었으며 눈꺼풀을 열어보았다. 자신의 생각을 확정한 뒤 가방에서 돌돌 감은 하얀 천 가방을 꺼내 풀어놓았는데 안에는 길고 짧은 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떨리게 하였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고 눈빛으로 의심을 주고받았다. 이 여자가 정말 침구를 사용할 예정인가? 그렇다면 이 여자는 한의사인가? 한의사는 모두 백발의 할아버지여야 하는 게 아닌가? 많은 의심들이 있었지만 용준의 카리스마에 다들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민나연은 은 침 하나를 꺼내 어르신의 백회혈, 인중, 천추, 중완 및 대횡에 각각 침을 놓았으며 사람들은 그 모습에 입이 벌어졌다. 그녀의 침을 놓는 손놀림은 아주 숙련되었으며 혈맥도 아주 정확하게 찾아냈고 한눈에 보통 사람이 아니라 이런 치료를 몇 천 번을 해서 이루어낸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각, 방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으며 사람들은 모두 민나연만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용월도 포함해서 말이다. 민나연은 한눈팔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고 은 침을 손에 들고 어르신의 곡지, 합곡, 고맹과 내정 등 곳에 침을 놓았다. 용준의 두 눈은 줄곧 눈앞의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녀가 침을 하나하나 집중해서 놓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걱정하고 의심을 했었는데 점점 놀라움과 탄복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 여자에 대해 탐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