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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촌수가 헷갈리다

  • 다음 날은 민나연이 임현의 증조할아버지의 병을 봐주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오전 10시가 넘도록 민나연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임현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여러 번 시간을 체크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핸드폰을 꺼내 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니, 증조 외할아버지에게 병을 고쳐드릴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왜 이렇게 시간을 못 지켜요?”
  • 전화기 너머로 임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당연히 고쳐드려야죠! 이미 저의 엄마한테 상황을 얘기했으니 저의 엄마가 사람을 보내 민나연씨를 모시고 갈 거예요. 나연씨, 그럼 우리 증조 외할아버지의 병을 잘 부탁해요. 저는 빨리 가야 돼요. 지금 공항이에요!”
  • “아니, 왜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가는 거예요? 우빈의 학교 문제는 해결했어요?”
  • “걱정 마세요. 이미 다 준비했어요. 입학 절차를 다 밟았어요. 금성에서 가장 좋은 귀족 유치원인데 그냥 가면 돼요. 지금 비행기를 타야 돼서 말을 더 이상 못해요.”
  • 임현은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을 하여 민나연이 말을 할 기회를 주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할 말만 다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민나연은 어이가 없어서 죽이고 싶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자신을 한국에 데려다 놓고 본인은 결국 돌아가다니?
  • “엄마, 왜 그래요?”
  • 민우빈은 의아하게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이럴 때만 이 꼬맹이가 6.7살의 어린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너의 현이 삼촌이 우리를 속여 귀국시켜 놓고 정작 본인은 미국으로 가버렸어.”
  • 민우빈은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현이 형이 원래 일을 변변치 못하게 하잖아요. 이런 일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 민우빈은 커다란 두 눈을 깜박이며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만약 모든 음모가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면 엉덩이를 때리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아빠가 필요했고 친아빠가 우선순위에 있었다.
  • 용준이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돈이 많고 잘 생겼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친아빠라는 것이었다! 이 사실만으로 민우빈이 그를 아빠의 후보 1위에 올려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민나연은 한숨을 내쉬고 그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농담은 그만하고 현이 삼촌이 엄마보다 5살밖에 어리지 않은데 자꾸 형이라고 부르면 어떡해? 촌수가 헷갈리잖아.”
  • 민우빈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촌수가 헷갈린다는 거지? 그의 아빠가 현이 형의 외삼촌이니 그가 형이라고 부르는 게 무슨 문제라도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감히 말할 수 없었다. 말을 했다간 엄마한테 혼날 테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 “저도 알아요, 엄마, 현이 형이 화내지 않을 거예요.”
  • 모자가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민나연은 다급히 몸을 일으켜 화면으로 보니 밖에 40대의 여성이 보디가드 두 명을 거느리고 서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 “누굴 찾으세요?”
  • 문밖에 있던 여자는 놀라 멍해 있다 한걸음 물러나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나서 물었다.
  • “혹시 민나연씨인가요?”
  • “맞는데 누구시죠?”
  • 용시연이 말했다.
  • “아, 안녕하세요, 저는 임현의 어머니입니다. 임현이 저한테 민나연씨를 찾아오라고 했는데 이렇게 젊으실 줄을 몰랐네요. 임현이 얘기했었죠? 우리 집 어르신이 아프셔서 이렇게 찾아온 거예요.”
  • 민나연도 웃으며 대답했다.
  • “안녕하세요, 임현씨가 이미 얘기했어요. 들어오세요.”
  • 민우빈은 이마를 감싸고 이게 도대체 무슨 촌수인가 하고 생각했다. 임현의 엄마라고 하면 자신의 엄마와 같은 촌수인가? 용시연은 다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 “아니요, 민나연씨가 준비됐으면 그냥 출발합시다.”
  • 민나연이 대답했다.
  •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말을 마치고 나서 방에 돌아가 검은색 가방을 메고 나왔다.
  • “그럼 지금 가요. 사람을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죠.”
  • “맞아요, 갑시다.”
  • 용시연은 말을 하면서 앞장서 문을 나섰다. 두 사람은 말을 하면서 같이 검은색 부가티 베이론에 올라탔고 차는 용씨 가택을 향해 질주했다.
  • ——
  • 용씨 그룹. 용준은 컴퓨터의 화면에 쓰여있는 손실 100억과 회개를 모른다는 글을 보면서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두 번이나 회사 내부 인터넷에 침입한 이 해커에 대하여 점점 더 흥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 이 사람이 회사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침입하였다는 것은 용씨 그룹의 손실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인데 그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 말인즉 그 사람은 그에게 손실을 가져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무의식중에 그 사람을 건드렸기에 경고를 하는 것이다.
  • 하지만… 자신이 도대체 언제 그 사람을 건드린 걸까? 하루에 두 번이나 공격을 당했고 저녁에 진행된 공격은 11시가 넘어서였으니 그때 그는 아직 경매장에 있었는데 누굴 건드린 걸까?
  • 그의 눈썹은 점점 찌푸려졌고 혹시 그 여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 여자를 회사에서 내쫓은 뒤로 회사의 방어 시스템이 누군가에 의해 침입당했고 어젯밤에도 그 여자와 경매가를 겨루고 나서 방어 시스템이 또다시 공격을 당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도둑일 뿐만 아니라 IT 고수이기도 하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훔칠 이유가 없지 않을까?
  • 이때 울려 퍼진 핸드폰 벨 소리가 그를 생각에서 끌어냈다. 그는 핸드폰을 힐끗 보니 승건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승건은 한동안 어른신 옆에서 그쪽 일을 돌보고 있었다.
  • “대표님, 큰 아가씨가 여자 한 명을 데리고 가택에 돌아와서 어르신의 병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돌아와서 보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 용준은 눈썹을 찌푸렸다. 어르신의 몸이 허약하여 아무한테나 병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일단 막고 있어. 내가 지금 돌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