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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변했다

아내가 변했다

이윤슬

Last update: 2021-11-08

제1화 환생

  • “란유미, 앞으로 내가 있는 곳이 너의 지옥이 될 거야!”
  • “언니, 나 더는 버티기 힘들 거 같아요. 심장을 나한테 줘요, 부탁이에요…”
  • “네가 이렇게까지 뻔뻔할 줄 몰랐어. 감히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도용하다니. 란유미, 실망이야. 넌 Modena의 디자이너가 될 자격이 없어…”
  • 극심한 통증이 온몸에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란유미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차가운 수술대에 올랐고, 옷이 벗겨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뼈가 앙상하게 마른 몸, 축 늘어진 피부, 여자는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 예리한 칼날이 가슴을 찔렀다. 마취약도 없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칼날이 혈관을 파고들었다.
  •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고,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고통과 어둠 속에서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란유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번쩍 떴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 ‘나 살아 있었어?’
  • 놀라움도 잠시, 사지를 찢어버릴 듯한 고통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란유미는 차가운 수술대가 아니라, 푹신하고 널찍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그녀는 자신이 속옷도 입지 않고 얇은 잠옷 하나 달랑 걸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 ‘여긴 어디지?’
  • 이런 차림으로 낯선 곳에 있기가 두려워진 그녀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다리를 옮기자 하반신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고 란유미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곳에 더 머무르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그녀는 아픈 몸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
  • 침실 문이 열리고, 그녀는 마침 방으로 들어오던 남자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금방 샤워를 끝냈는지 남자는 목욕 타월 한 장만 걸치고 있었고 몸에 물기도 그대로 있었다. 넓고 따뜻한 품, 희미한 재스민향, 잘 단련된 근육, 타월 아래로 느껴지는 탄탄한 허벅지와 허리라인, 남자는 치명적인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란유미가 고개를 들자 밤하늘을 닮은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날카로운 눈빛에서 풍기는 음산한 분위기에 그녀는 흠칫하며 황급히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 최시한은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불빛 아래 남자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 ‘최, 최시한… 이 사람이 왜 여기에?’
  • 최시한은 여자의 가녀린 팔목을 붙잡고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이제 만족해?”
  • ‘만족? 뭘 만족한다는 거지?’
  • “할머니를 몸져눕게 만들고, 더러운 수작으로 안연을 쫓아내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내 침대에 기어들어 왔지…성취감이 장난 아니겠네?”
  • “너 같이 재수 없는 년은 남을 해치는 것 빼고 뭘 할 줄 알아? 우리 집에서 그 난리를 피운 것도 모자라 감히 내 주변 사람들까지 꼬시려 들어? 소윤, 사람이 왜 그렇게 비열해!”
  • 영문을 알 수 없는 란유미는 극심한 통증에 머리까지 복잡해져서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끄떡도 하지 않고 손에 더 힘을 주었다.
  • 최시한은 보는 사람이 섬뜩할 만큼 온몸으로 차가운 냉기를 뿜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짙은 화장을 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경멸에 찬 눈길로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감히 자신의 음식에 약을 탄 이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 “이거 놔요…”
  • “할 거 다 해놓고, 왜 이렇게 약한 척이야? 넌 스스로 역겹지도 않아?”
  • 최시한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더니 그녀의 흐트러진 원피스 자락에 닿았다. 치마 아랫단에 선명하게 묻은 핏자국은 조금 전에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 란유미가 설명할 틈도 없이 최시한은 그녀를 힘껏 밀어 침실 밖으로 쫓아냈다. 일말의 배려도 없는 거친 손길에 란유미는 상처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녀는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문밖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 “꺼져!”
  • 남자는 이 한마디 던지고는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란유미는 온몸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힘겹게 벽을 짚고 일어나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얼른 물을 틀어 세수를 마친 그녀가 세면대에 비치된 거울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철렁하며 온몸이 굳어버렸다.
  • ‘이건…내가 아니야!’
  • 동공이 확장되고 란유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볼을 힘껏 꼬집은 뒤에야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 깨끗한 거울이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비추고 있었다.
  • 아기자기한 이목구비에 유난히 작은 얼굴, 얼룩덜룩 번진 고딕 메이크업, 부스스한 머리. 하지만 어떤 것도 그녀의 숨 멎을 듯한 아름다움을 다 감출 수는 없었다.
  •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거울을 쳐다보는 란유미의 어깨가 심하게 떨렸다.
  • ‘나 살아 있어…’
  • 눈을 휘둥그레 뜬 그녀의 마음이 충격으로 휘몰아쳤다.
  • 그녀는 한 여인의 몸을 빌려 환생했다.
  • 그녀의 이름은 소윤, 열아홉 살 꽃다운 나이.
  • 란유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 ‘소윤이라면…내가 알고 있는 그 소윤?’
  • 지옥에서 금방 나온 것 같은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던 최시한을 떠올리자 그녀는 경악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 최시한, X 시티 부식 그룹 대표이자 대한민국 상계를 휘어잡고 있는 최연소 사업가.
  • 그리고 이 몸의 주인 소윤은 최시한의 아내이자…전 X 시티 가장 큰 웃음거리였다.
  • 얼빠에 멍청하고 비열하기까지…각종 최악의 수식어들을 달고 다니는 여자가 바로 소윤이었다. 언론과 기자들의 집필하에 소윤은 X 시티의 치욕이자, 돈 많은 남자를 꾀려 자존심도 버리고 영혼까지 팔아버린 지독한 악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 최씨 가문에 시집오기 위해 소윤은 최씨 가문 연장자인 최 여사의 총애를 업고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까지 해가며 끝내는 최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꿰차지했다. 할머니 사랑이 지극했던 최시한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던 것이다.
  • 결혼 당일, 결혼식도 하객도 웨딩드레스도 없이 혼인신고서 한 장 들고 나온 최시한은 그것마저 소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다.
  • “소윤, 네 뜻대로 내 아내가 되어서 좋겠네!”
  • 그날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세상 두려운 것이 없던 소윤도 그의 위압적인 태도에 겁을 집어먹고 식은땀을 흘렸다.
  • 휴…
  • 회상을 마친 란유미는 가슴에 돌이라도 얹은 듯 답답하고 괴로웠다.
  • 어렵게 환생했는데,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결혼도 좋고 남편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까진 괜찮았다. 심지어 환생해서 처음 눈을 뜨고 본 광경이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은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난 뒤였다는 것도 참을 수 있었다.
  • 하지만 몸을 빌린 상대가 왜 하필이면 이 얼빠에 멍청하기로 소문난 소윤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