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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받은 만큼 돌려주다

  • 임연아는 울음을 멈추고 란유미를 쏘아보았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그녀를 향한 미움이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 “소윤아, 우린 가장 친한 친구라고 네가 그랬잖아.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다 용서해 줄 거라며? 그런데 너 왜 이렇게 변했어?”
  • 그녀는 흐느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 란유미는 끄떡도 하지 않고 임연아를 쏘아보았다. 진짜 소윤은 눈앞의 이 여자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살인자 주제에 지금 피해자 앞에서 용서를 구걸하고 있다.
  • “임연아, 그건 내가 그때 어려서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너한테 속았던 거야.”
  • 란유미는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 “매번 내가 사고 쳤을 때마다 다 네가 뒤에서 시킨 거잖아. 계속 얘기해 볼까?”
  • 임연아가 소리 없이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긴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아프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애원의 눈길로 최시한을 한번 바라본 뒤 답했다.
  • “소윤아, 네가 날 용서해줄 때까지 기다릴게.”
  • 란유미는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조용히 그녀를 쏘아보기만 했다. 더 욕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옆에서 냉랭한 표정으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최시한을 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 “그래. 그렇지만 한 오백 년쯤 기다려야 할 거야. 그때 다시 용서해 줄게.”
  • 란유미는 예전 일을 들추는 대신, 비웃음 섞인 말투로 답했다.
  •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 한 번에 덮치는 건 재미가 없다. 숨통을 끊어 놓기 전에 실컷 괴롭혀 줘야 제맛인 법.
  • 임연아는 그제야 안도한 듯 표정을 풀었다. 최시한은 이런 변화를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 임연아에게 중요한 건 소윤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최시한 곁에 머무를 수 있느냐였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을 테니까.
  • ‘언젠가는 최시한을 내 것으로 만들 거야!’
  • “최 대표님, 곧 있으면 채용박람회가 시작되잖아요. 이번에는 실수 없이 마무리할게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 임연아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장담했다.
  • 란유미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 ‘이런 가식적인 여자를 채용박람회에 내보내면 안 되지. 또 무슨 짓을 저지르라고.’
  • 그녀는 한참 고민하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여보, 언제든 실수할 가능성이 큰 직원을 곁에 두는 건,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거랑 같아요.”
  • ‘여보’라는 두 글자가 소윤의 입에서 나오자 임연아는 질투로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 ‘소윤만 없었더라면 내가 이 집 안주인인데!’
  • “최 대표님, 다시는 그런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 란유미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그녀를 비웃었다.
  • “매번 나한테 다신 없을 거라 해놓고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여자예요.”
  • 어쨌든 절대 임연아가 채용박람회에 심사위원으로 나오게 그냥 둘 수 없었다.
  • “너!”
  • 임연아가 언성을 높이며 란유미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전부 사실이라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최시한한테 안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 최시한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란유미를 쏘아보았다. 예전에 있었던 일들은 최시한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이가 좋던 두 여인이 왜 갑자기 서로 물어뜯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 차가운 시선을 느낀 란유미가 활짝 웃으며 최시한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피부에 닿기도 전에 최시한이 그녀의 팔목을 낚아챘다.
  •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여보, 나 아파요.”
  • ‘제길! 너무 아프잖아! 어떻게 매너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거야!’
  • 최시한은 그제야 누그러진 표정으로 손에 힘을 풀었다.
  • “앞으로 또 이러면 손목 부러뜨릴 줄 알아.”
  • 란유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최시한에게 오만 가지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최시한은 한다면 하는 놈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지라 겉으로는 상냥한 웃음을 유지했다.
  • “여보, 옆에 사람이 있어서 불편해서 그런 거죠? 여보를 위해서라면 팔목 하나쯤 아깝지 않은데, 할머니가 보시면 가슴 아파하실 거예요.”
  • 최시한은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는 고개를 돌려 임연아에게 말했다.
  • “임연아, 회사는 너처럼 조심성 없는 직원은 필요 없어.”
  • 한 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말투였다.
  • 임연아는 입술을 깨물고 속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더 애원하지도 않았다. 최시한 옆에서 오랜 세월 일해 온 그녀는 이제 어떤 말로 애원해도 최시한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소윤, 과연 만만치 않네. 너만 없었으면 최시한이 이토록 매정하게 날 내치진 않았을 텐데.’
  • “최 대표님, 내일 사무실로 가서 정리할게요.”
  • 한참을 침묵하던 임연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사에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 란유미는 몸을 돌려 침실로 향했다. 최시한에게 잡혔던 팔목이 아직도 얼얼했다. 사실 최시한이 그렇게 힘을 준 것도 아닌데도 소윤의 민감한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 종일 바쁘게 돌아쳤으니 지금은 휴식이 필요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햇살이 밝게 비추는 오전이었다.
  • 란유미는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침대 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아직도 가슴이 쓰라렸지만 이번 채용박람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별장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등 뒤로 그녀를 쫓는 듯한 음산한 시선이 느껴졌다. 란유미는 소름이 쫙 돋았다. 그녀는 일부러 놈들을 골목으로 유인한 뒤, 침착하게 뒤돌아섰다. 뒤에는 음탕한 미소를 짓고 있는 두 망나니가 서 있었다. 란유미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 “누가 보내서 온 거지? 사실대로 말하면 곱게 돌려보내 줄게.”
  • 험상궂은 얼굴을 한 망나니들이 피식 웃더니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 “예쁜아, 곧 예뻐해 줄 테니 얌전히 기다려.”
  • 란유미는 차가운 미소와 함께 다리를 올려 칼을 쥔 망나니의 손을 걷어찼다. 칼이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지자 그녀는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망나니의 멱살을 잡아 땅에 내동댕이쳤다.
  • 그녀는 손을 훌훌 털고는 힘껏 망나니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걷어찼다. 그러고는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다른 한 놈한테 손가락질했다.
  • “빨리 대답해. 나 바빠.”
  • 놈은 급기야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 “말해, 누가 보냈어?”
  • 부드러운 음성이었지만 소름 돋는 냉기가 흘러넘쳤다.
  • 키 큰 망나니가 버벅대며 입을 열었다.
  • “한 예쁘장한 아가씨가 저희한테 오십만 원을 주면서 아가씨랑 재미 좀 보고 사진 몇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이름은 저희도 잘 몰라요.”
  • 란유미는 휴대폰을 꺼내 임연아의 사진을 찾아 놈들에게 보여주었다.
  • “네, 네. 이 여자 맞아요. 제발 저희를 보내 주세요. 저희가 생각이 짧았어요.”
  • 키 큰 망나니가 힘겹게 애원했다.
  • 란유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 ‘임연아가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 생전에 소윤이 그렇게 잘해 줬건만 임연아는 옛정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 그녀의 민망한 사진을 찍게 했다.
  •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망나니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면 곱게 보내 줄게.”
  • “무슨 부탁이요?”
  • “이 여자가 시킨 대로 똑같이 이 여자한테 돌려줘.”
  • 란유미가 차갑게 명령했다.
  • 망나니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일로 임연아한테 가서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분명 임연아는 상대가 연약한 여자라고 했거늘, 이렇게 강한 상대일 줄 상상도 못했다.
  • 란유미는 연락처를 남긴 뒤 놈들을 놓아주었다. 간만에 좀 했더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숨도 가빠졌다.
  • ‘시간 내서 운동 좀 해야겠네. 몸이 너무 약해 빠졌어.’
  • 이래서는 예전 실력의 절반도 발휘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