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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허망한 생각

  • 유시현은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이튿날 아침 일찍 그는 안영미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아래에서 기다렸다.
  • 유 여사의 재촉에 안영미는 급하게 흰 티를 입고 입에 빵 한 조각을 물고는 서둘러 내려왔다.
  • 차는 여전히 럭셔리한 그 마이바흐였고 안영미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그에게로 걸어갔다.
  •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원이 차 문을 열어주며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 아직 사모님이란 호칭에 적응이 안 된 안영미는 주원에게 어색한 웃음을 보이고는 돌아서서 차를 탔다.
  • 차에 타자마자 그녀의 시선은 옆에 앉은 유시현에게 끌렸다.
  • 오늘 유시현은 블랙 슈트를 차려입었는데 금욕적인 분위기를 물씬 자아냈다. 특히 정장 안의 맨 위 단추 두 개를 풀어헤친 블랙 셔츠는 섹시한 목젖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고 보고 있는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 유시현이 잘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유혹적일 줄은 몰랐다.
  • 이런 그를 바라보며 안영미는 허망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서류에 꽂혀있던 유시현의 시선이 안영미의 뜨거운 눈길에 불쑥 쳐다보았고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 유시현의 눈가에 비친 싸늘한 기운을 느낀 안영미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서 재빨리 고개를 숙였고 얼굴이 빨개져서는 무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 반면 유시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선을 다시 서류로 돌렸다.
  • 가는 내내 차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고 안영미는 시선을 줄곧 창밖에 두고 있었으나 머릿속은 온통 조금 전의 일과 그의 눈빛으로 가득 찼다.
  • 차가 멈췄는데도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앉아 있자 주원이 귀띔해 줬다.
  • “사모님, 도착하셨습니다.”
  • 주원이 차 문을 열고는 내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안영미는 차에서 내렸고 유시현도 차에서 내릴 줄 알았는데 내리기는커녕 그녀와 주원, 두 사람만 남겨놓고 그녀 앞으로 쌩하고 지나갔다.
  • 안영미는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우리 신혼집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었나?
  • 옆에 있던 주원이 안영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해명하듯이 말했다.
  • “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전에 급한 회의가 있으셔서 부득이하게 회사로 가셨고 점심에는 같이 식사하실 겁니다.”
  • 그렇구나.
  • 안색이 좋아진 안영미는 무슨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돌리며 주원에게 말했다.
  • “주 비서님, 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돼요?”
  • 듣기에 너무 이상했다.
  • 유 대표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게 오늘이 둘째 날이라 적응이 안 될 만도 했다.
  • “그냥 안영미라고 이름 부르세요.”
  • 주원은 안영미가 한 말을 뒤로한 채 맞은편의 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 “사모님, 여기가 평소에 대표님께서 지내시는 곳이고 오늘부터 사모님도 여기서 같이 지내실 겁니다.”
  • 주원의 손이 가리키는 쪽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아주 호화로운 독채 별장이 안영미의 눈에 들어왔다.
  • 유시현이 여기서 산다고?
  • 집안에 들어선 안영미는 두 눈을 굴리며 쉴 새 없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 별장의 내부 인테리어는 주로 고급스러운 그레이 톤 위주로 되었고 이는 유시현의 차가운 모습과 잘 어울린다고 안영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 안영미를 2 층으로 안내한 주원은 안방 옆에 있는 방문을 열며 안영미에게 말했다.
  • “사모님, 여기가 앞으로 사모님께서 지내실 방입니다.”
  • 이 방은 아주 간단하게 꾸며졌고 색상은 역시 집주인이 선호하는 색으로 꾸며졌다.
  • 시몬스가 깔린 큰 침대를 보자 안영미는 저도 모르게 갑자기 긴장감이 들었다.
  • 앞으로 그녀와 유시현이 이 침대에 함께 누워있는 장면을 상상하니 안영미는 저도 모르게 목이 타고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됐다.
  • 안영미의 얼굴이 빨개지자 옆에 있던 주원이 긴장하며 물었다.
  • “사모님,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십니까?”
  • “아니요, 아닙니다.”
  • 그의 물음에 안영미는 더욱 쑥스러워졌다.
  • 이런 안영미의 생각을 모르고 주원은 계속 말했다.
  • “대표님께서 이 방은 사모님 취향에 따라 꾸며야 한다고 아직 아무런 세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후에 백화점으로 모시겠습니다.”
  • “그래요.”
  • 안영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아 참, 사모님, 대표님은 바로 옆방에서 지내실 겁니다.”
  • 방 문을 나서자 주원은 옆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 이 말을 듣자 안영미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 알고 보니 유시현과 각방을 쓰는 것이었다.
  • 안영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안심했고 괜히 긴장했다고 생각했다.
  • 좀 전에 안 그래도 밤에 유시현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 안영미의 낯빛이 약간 변하자 주원은 그녀가 언짢아하는 줄 알았다.
  • 하긴 신혼부부가 각방을 쓰는 게 어디 있겠는가.
  • 그는 서둘러 말을 돌리며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 “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셔서 집에 가사도우미는 별도로 두지 않으시고 정해진 시간에 청소하시는 분이 와서 집 청소를 하는데 혹시 사모님께서 필요하시다면…”
  • “아니요, 아니요, 저는 필요 없어요…”
  • 안영미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주원을 따라 백화점으로 가는 길에 안영미는 주변 시설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 역시 부자 동네라 그런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면 반 시간은 걸어가야 했고 앞으로 출근하려면 그녀는 더욱 일찍 일어나야 했다.
  • 주원은 안영미를 유 씨 그룹 인근의 백화점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 “사모님, 천천히 둘러보세요. 저는 이만 회사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2 시간 뒤 대표님께서 오셔서 함께 식사하실 겁니다.”
  • 로열패밀리들이 주로 출입하는 백화점에 흰 티를 입고 있는 안영미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안영미가 한가롭게 쇼윈도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를 불렀다. 안영미가 뒤를 돌아보니 어떤 여자가 남자의 팔짱을 끼고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 “어머, 안영미, 정말 너였네.”
  • 여자는 가볍게 소리 내어 웃고는 연약한 척하며 옆의 남자 몸에 기대여 말했다.
  • “현우 씨, 그때 당신은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거야. 봐봐, 이 호구는 여전히 궁상맞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