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6화 딸을 맡기다

  • 소개팅 첫날에 혼인신고를 마쳤다.
  • 이 소식은 두말할 것 없이 핵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무서웠다.
  • 하지만 유시현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평범했다.
  • 반면 잔뜩 긴장한 안영미는 유 여사의 표정을 살피며 수시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런데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안 교수와 유 여사는 정신을 차리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그래, 잘했네! 혼인신고.”
  • 설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 안영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안 교수와 유 여사를 번갈아 보았다.
  • “엄마, 아빠, 나를 원망하지 않아?”
  • 안 교수와 유 여사는 안영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시현에게 딸을 맡기듯이 부탁했다.
  • 안 교수는 안영미의 손을 잡더니 그녀의 작은 손을 유시현의 손바닥에 놓았다.
  • “시현아, 앞으로 우리 영미를 잘 부탁하마. 얘가 좀 덤벙대고 조심성이 부족해도 장점이 많단다. 착하고 활발하고 순진한 애야.”
  • 두 사람의 손이 맞닿는 순간 감전된 듯한 짜릿함이 안영미의 온몸에 퍼졌다.
  • 안영미는 그만 얼굴이 빨개지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 반면 유시현은 아무 약속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짤막하게 대답했다.
  •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 몇 글자 안 되는 말이지만 안영미는 더없이 따뜻하고 안전감을 느꼈다. 그러고는 슬쩍 곁눈질로 유시현을 살폈다.
  • 역시 잘생긴 사람은 어느 각도로 봐도 사각지대가 없었다.
  • 이번 식사는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 명령을 받고 유시현을 배웅하러 나온 안영미는 그와 앞뒤로 나란히 걸었다.
  • 유시현의 커다란 뒷모습을 본 안영미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고는 좀 전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봤다.
  • 그녀는 원래 엄마 아빠가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 이 모든 것은 다 곁의 이 남자 덕분이었다.
  • 이런 생각을 하던 안영미는 또 몰래 유시현을 훔쳐보았고 시선은 반지를 낀 그의 손에 꽂혔다.
  • 그러자 그녀의 심장이 다시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고 유시현과 맞닿았던 손도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유시현은 겉으로 보기에는 얼음처럼 차가워 보였지만 손바닥은 무척이나 따뜻하여 그녀에게 안정감을 줄 줄 몰랐다.
  • 그가 있으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 마치 신분증이 없어도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역시 유시현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안영미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 자기만의 생각에 몰두하던 그녀는 앞서 걷던 유시현이 멈춰 선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 “아!”
  • 유시현의 단단한 등에 부딪힌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는 고개를 들더니 유시현과 시선이 마주쳐 쑥스러운 듯 뒤로 세 발 물러섰다.
  • 그때 뒤로 돌아선 유시현은 그녀를 보고는 카드 한 장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 “부족하면 다시 얘기하세요. 비밀번호는 공 여섯 개예요.”
  • 불빛 아래에서의 유시현의 얼굴은 좀 더 부드러워 보였고 눈빛마저도 덜 차가워 보였다.
  • “이거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 멍하니 카드를 받은 안영미는 손에 든 골드 카드를 보면서 믿기지 않은 듯 물었다.
  • 유시현의 골드 카드면 이게 한도가 얼마일까?
  • 돈에 홀린 듯한 안영미의 모습이 유시현의 눈에 들어왔다.
  • 그때 유시현을 태우러 온 주원이 차를 몰고 왔다.
  • 자기만의 생각에 잠긴 안영미를 본 유시현은 섹시한 입술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
  • 하지만 그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다시 예전과 같은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 차에 오른 유시현은 차창을 내리고 안영미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 “내일 우리 신혼집으로 갑시다. 데리러 올게요.”
  • “네?”
  • 유시현의 말을 듣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안영미가 고개를 들고 올려봤더니 유시현은 이미 차창을 닫고 떠나갔다.
  • 안영미에게 아예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 몇 초가 지난 뒤에야 안영미는 방금 그가 한 말의 포인트를 파악했다.
  • 유시현이 신혼집이라고 말했던가?
  • “우리의 신혼집.”
  • 카드를 든 안영미는 유시현이 한 말을 되새기고는 자기도 모르게 또 얼굴이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