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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승진

  • 지각 1 분 전에야 드디어 회사에 도착한 안영미는 지문 카드를 찍었다.
  • 이번 달 개근상금은 그래도 건진 셈이다.
  • 안영미는 자신의 책상에 엎드려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 남들에게 들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유시현이 개인 통로를 이용하고 있어서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 이렇게 되면 앞으로 교통을 걱정하지 않고 대놓고 차를 얻어 탈 수 있게 되어 생각만 해도 매우 기뻤다.
  • 안영미가 자신의 행운에 자못 만족하고 있을 때 부서 회의가 열렸다.
  • 안영미는 잽싸게 노트를 챙겨 회의실로 가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 유 씨 그룹의 행정 부문은 인원이 아주 많았다. 무려 50명이나 넘는 인원이 각 부서의 사람들과 협업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 회의 내용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외모와 의상에 신경을 쓰고 출퇴근 시간을 지키라는 것이었는데 조금 지루했다.
  • 그런데 그때 갑자기 행정 부서 팀장인 란 언니가 안영미의 이름을 불렀고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차리고 안영미를 바라보았다.
  • 안영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오늘부터 안영미 씨는 행정 부서 대리로 승진했습니다.”
  • 말을 마친 후 란 언니가 먼저 안영미에게 박수를 쳐줬고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팀장을 따라 그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 그리고 회의는 바로 끝났다.
  • 당사자인 안영미는 얼떨떨해하며 얼른 팀장을 쫓아가서 물었다.
  • “란 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저, 지금 승진한 거예요?”
  • 팀장은 안영미를 힐끔 쳐다본 후 차갑게 대답했다.
  • “저도 오늘 아침 인사팀에서 통지를 받은 거예요. 상세한 건 저도 몰라요.”
  • 말을 마치고 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 안영미는 하루아침에 부서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 유 씨 그룹에는 엄격한 승진 기준이 있었다.
  • 인턴은 3개월의 인턴 기간을 채우고 시험과 면접을 모두 통과해야 정규 직원이 될 수 있었고 말단 직원이 대리로 승진을 하려면 3년 동안 일한 후 팀장이 직접 심사를 본 후에야 승진이 가능했다.
  • 안영미는 근무를 한 지 아직 2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그녀는 충분하지 않았다.
  • 때문에 직원들 모두 그녀의 승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 “안영미 쟤가 어떻게 승진이 됐지? 맞다, 너 올해 이미 3년 됐지. 팀장님도 네가 괜찮다고 했는데. 이 대리는 네가 승진되어야 하는데.”
  • “쟤는 운이 참 더럽게 좋다니깐!”
  • 화장실 안에서 다들 안영미의 승진을 축하하는 말보다 비꼬는 말이 더 많았다.
  • 화장실 안쪽에 숨어 힘없이 그녀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안영미는 마음이 아팠다.
  • 그녀가 2년 동안 회사에서 일하면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직원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왔는데 어떻게 승진했다고 왕따를 당하는 걸까?
  • 안영미가 풀이 죽은 채 자리로 돌아오자 황리가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나서는 사과를 그녀에게 건넸다.
  • “영미 언니, 승진 축하드려요!”
  • 황리는 올해 금방 20살이 된 회사 인턴 직원이다.
  • 3개월의 실습을 곧 채워가는 황리는 입사할 때부터 안영미의 후배가 되어 곁에서 배우며 여태까지 같이 근무를 해왔다. 안영미는 황리를 줄곧 여동생으로 대했다.
  • 황리는 처음으로 안영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한 사람이었고 이로 인해 안영미의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 “황리야, 고마워.”
  • 그녀는 황리를 향해 웃었고 그녀의 손에 있는 사과를 받았다.
  • 이번 승진으로 안영미는 예전에 하던 업무를 황리한테 인계하게 되었다.
  • 뒤에 서서 열심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황리의 시선이 갑자기 안영미의 약지에 낀 반지에 집중되었다.
  • 흥분한 황리는 안영미에게 말했다.
  • “영미 언니, 이 반지 너무 예뻐요!”
  • 비록 반지에 다이아몬드는 박혀있지 않았지만 라인이 예쁘게 디자인돼 있어서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 황리의 말을 들은 안영미도 잠시 손을 멈추고 시선을 반지로 향했다.
  • 이 반지를 보고 있노라니 안영미는 자기도 모르게 유시현이 반지를 끼워주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 비록 로맨틱하지는 않았지만 잘생긴 남자는 그 자체로 로맨틱했다.
  •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절로 얼굴이 빨개졌다.
  • “영미 언니, 저 이거 한 번 껴보면 안 돼요?”
  • 황리는 안영미가 끼고 있는 반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그녀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 안영미는 황리가 이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다.
  • 황리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는 안영미는 조금 난처했다.
  • 유시현이 언제 어디서든 절대 이 반지를 빼면 안 된다고 했었다.
  • 안영미는 망설이다가 황리에게 미안한 듯 말했다.
  • “미안해, 이건 나의 결혼반지라 안 돼.”
  • 대답을 들은 황리는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연신 안영미에게 사과를 했다.
  • “아, 네, 네, 죄송해요. 저는 몰랐어요. 제가 당돌했네요.”
  • 하지만 황리의 눈에는 순간 한 가닥의 실망이 스쳤고 표정도 시큰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