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고마워요
- 유시현의 긴 다리와 큰 보폭에 안영미는 뒤따르는 내내 작은 뜀박질로 뒤쫓았다. 두 사람은 한 가정식 레스토랑에 들어갔고 가게 사람들은 유시현과 아는 사이인 듯 그가 온 것을 보고는 바로 룸으로 안내했다.
- 룸에 자리를 잡자마자 종업원이 들어왔고 마치 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사전에 세팅해 놓은 것처럼 요리들이 잇따라 나왔다.
- 안영미는 다시 한번 유시현의 대단한 능력에 감탄했다.
- 룸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고 유시현은 처리할 업무가 있는 듯 좀 전에 주원이 건네준 태블릿 PC를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 두 사람뿐인데 이렇게 큰 룸에 이렇게 많은 요리들을 보니 안영미는 좀 낭비라고 생각됐다.
- 하지만 유시현의 몸값으로 말하자면 이런 겉치레가 또 일상이 아닐까 싶었다.
- 안영미는 옆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들어 유시현에게 말했다.
- “좀 전의 일은 고마웠어요.”
- 유시현이 일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그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유시현은 듣지 못한 듯 계속 일에 집중했고 안영미도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고맙다는 인사는 진심이었다.
- 사실 아까 양월과 마주했을 때 비록 그녀가 겉으론 센척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두려웠었다. 양월과 진현우 두 사람이 함께 덮쳐와 때릴까 봐 두려운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사실 그녀는 과거를 떠올리는 게 더 두려웠다.
- 2년 전에도 오늘과 같이 두 사람이 함께 서서 그녀에게 굴욕적인 말을 퍼부었었다.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다른 여자 옆에 서서 과거 그녀의 잘못을 일일이 늘어놓았고 또 그녀와 함께했던 날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털어놓았었다.
- 이를 떠올리자 안영미는 코끝이 빨개지고 눈시울도 따라 붉어지기 시작했다.
- 그녀가 상상했던 아름다운 사랑은 이렇게 진현우와 양월에 의해 망가지고 말았다.
- 갑자기 슬픈 기억에 빠진 안영미는 유시현이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안영미 씨.”
- 몇 초간 짧게 지켜본 유시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불렀다.
- 냉랭한 목소리가 안영미의 고막에 닿자 그녀는 깜짝 놀라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번쩍 들고는 유시현의 담담한 눈빛과 마주했다.
- 안영미는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 “미안해요. 저…”
-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
- “기억하세요. 당신은 나 유시현의 아내이니까 그 누구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 안영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시현이 소리 내어 말을 끊었다.
- “누구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요.”
- 유시현의 얼굴에는 냉랭함이 묻어났고 말투에도 화가 조금 섞여 있었다.
- 이런 유시현의 모습에 겁을 먹은 안영미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속으로는 방금 그녀가 그에게 망신을 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 양월과 서로 욕하는 모습은 확실히 창피했기 때문이다.
- “저…”
- 잘못한 걸 알았다.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안영미는 사과의 말을 하고 싶었으나 유시현의 눈빛을 보고 바로 입을 다물었고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이 혼나기를 기다리듯이 앉았다.
- 이 모습을 본 유시현은 얼굴빛이 누그러지더니 말투도 부드러워졌다.
- “식사합시다.”
- 식사를 마치고 유시현은 곧바로 회사로 돌아갔고 안영미도 이 일로 더는 쇼핑할 기분이 없자 주원이 운전해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 가는 길에 안영미의 시무룩한 모습을 본 주원이 입을 열었다.
- “사모님, 이후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에게 연락하십시오. 제가 무조건 빨리 달려가겠습니다.”
- “저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저 때문에 그이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제가 망신 준 건 아니겠죠?”
- 안영미는 밥 먹을 때 유시현의 화난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 어쨌든 공공장소에서 사람을 때리는 것은 교양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 안영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주원이 한 박자 느리게 깨닫고는 말했다.
- “사모님, 대표님이 왜 사모님께 화를 내시겠습니까? 나셨어도 저 때문에 나셨겠죠.”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사모님, 대표님께서 비록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만 절대적으로 사모님을 감싸고 계십니다. 바로 조금 전에도 사람을 보내 양 씨 회사를 인수하게 시키셨습니다.”
- 주원의 말을 듣고 안영미는 유시현이 양월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 그가 그냥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렇게 진행할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 안영미는 갑자기 기분이 반 이상 풀렸다.
- 주원이 이어서 말했다.
- “사모님, 대표님이 화나신 것은 사모님께서 손해 보실까 봐 그런 겁니다. 대표님은 엄청나게 자기 사람을 챙기는 분이십니다.”
- “정말요?”
- 해명을 들은 안영미는 반신반의했지만 기분이 좋아진 것은 분명했다.
- 의외로 유시현은 겉모습만 차가웠던 것이었다.
- 안영미가 웃자 주원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한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불안했다. 대표님이 알면 아마 그의 가죽을 벗길지도 모른다.
- 하지만 대표님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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