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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널 장비라고 불러야 한다

  • “사모님, 대표님은 시간에 맞춰 6시에 오실 겁니다.”
  • 안영미가 차에서 내리고 주원이 덧붙였다.
  • 안영미는 오래된 교직원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그녀가 고급스러운 외제차에서 내리자 수많은 이웃 주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 안영미는 주원이 어떻게 자신이 사는 곳을 알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만 끄덕인 후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 안영미는 단숨에 6층으로 올라가 집 앞에 도착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 그녀가 문을 두드리려고 할 때 그녀의 엄마 유 여사가 장바구니를 들고 그녀의 뒤에 서있었다.
  • “영미야, 너 꼴이 이게 뭐니? 얌전하지 못하게.”
  • 유 여사는 문을 열며 그녀의 행동이 맘에 안 든다는 듯 말했다.
  • 안영미는 혀를 내밀고 문이 열리자마자 신발을 벗어던지며 거실로 뛰어 들어가 아침에 마시다 남은 물을 들이 마셨다.
  • 유 여사는 철없는 안영미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안영미 이 가식적인 계집애야,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잘못 지어도 한참 잘못 지었어. 장비라고 지었어야 했는데!”
  • 유 여사는 말을 하면서 장바구니를 주방에 놓더니 다시 나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아까 올 때 장 씨 아줌마한테서 들었는데 방금 어떤 집 딸은 고급스러운 외제차를 타고 왔대! 어느 집인지 모르겠지만 팔자가 좋네!”
  • 안영미는 켕기는 듯 힘없는 소리로 말했다.
  • “그거 나야.”
  • “허, 너라고? 있는 집안이 너를 거들떠보기나 하겠어?”
  • 유 여사는 무시하는 듯 비웃었다.
  • “그 나물에 그 밥인 거야. 영미 너, 거울을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랑 어울리는지 알 수 있을 거다.”
  • 유 여사의 무자비한 탄압에 안영미는 할 말을 잃었다.
  • 유 여사와 안 교수는 둘 다 대학교수이니 안영미는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셈이다.
  • 안 씨 집안은 안영미의 상대에 대해서는 그저 두 집안의 형편이 비슷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닭이 봉황이 되는 일을 그들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또 그런 일이 안명미에게 일어나리라 바라지도 않았다. 필경 부잣집 사모님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안영미도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유 여사에게 자신이 정말로 부잣집에 시집을 갔다고 말하면 유 여사가 놀라서 기절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 “참, 너 오늘 소개팅은 어떻게 됐어?”
  • 유 여사는 걸어와 소파에 앉으며 딸을 심문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 현재 유 여사는 퇴직하고 평일에 댄스를 배우는 것 이외에는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 유 여사가 이번에 딸에게 시킨 소개팅 상대가 바로 그녀가 봉사하고 있는 병원의 이 씨 할머니의 손자였다.
  • “엄마, 이 사람 어떻게 아는 사람이야?”
  • 안영미는 옆에 있던 소파에 앉았다.
  • “이 씨 할머니 손자야. 듣기론 서른이라던데 항상 일이 바빠 아직 만나는 사람이 없다더라. 사진을 보니 점잖아 보이던데.”
  • 유 여사는 유시현의 얘기를 하자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만족스러워했다.
  • 안영미는 입술을 깨물며 엄마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녀는 유시현의 정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 “묻고 있잖아, 사람은 괜찮더냐?”
  • 안영미가 다른 소리를 하자 유 여사는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 안영미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얼버무렸다.
  • “사람, 사람은 괜찮아.”
  • 조심하지 않아 혼인 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말해버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 “그럼 다행이네, 자고로 사람은 지내봐야 아는 거니까 한번 잘 만나봐.”
  • 마음속으로 혼인 신고 이야기를 할까 말까 뜸 들이고 있을 때, 유 여사는 일어나 주방으로 가 장 봐온 재료를 씻을 준비를 했다.
  • 유 여사가 일어나서 방금 사 온 채소를 씻으려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안영미는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 유 여사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물었다.
  • “엄마, 아빠는? 오늘 저녁은 집에 와서 식사하셔?”
  • “응, 무슨 일 있어?”
  • 유 여사가 물었다.
  • 안영미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또다시 끄덕이고는 결국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 그 사람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겠대.”
  • 생각하다 우선 유시현이 집에 오는 것부터 이야기하고 혼인 신고에 대해서는 안 교수가 오면 자신의 편을 들어줄 테니 그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 사람?”
  • 유 여사는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부끄러워하는 딸을 보는 순간 누구를 얘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좋지!”
  • 유 여사는 장바구니에 담긴 야채를 힐끗 보고는 즉시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 “생선이랑 고기 좀 사 올게.”
  • 안영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 여사는 이미 집을 나섰다.
  • 유 여사가 나가고 난 뒤에야 안영미는 한숨을 돌렸다. 그녀는 자기의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있던 서류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