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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사인해

  • “이의 없으면 사인해. 다음 주에 이혼 협의서에 사인하면 이건 당신 것이 되는 거야.”
  • 구정현이 말했다.
  • 진아리는 서류를 내려놓고 밝게 웃었다.
  • “대표님은 역시 통이 크시네요. 대표님 여자가 돼서 참 행복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주 이혼 협의서에 얌전히 사인할 테니까요.”
  • “당신은 말만 잘 들으면 돼.”
  • 구정현이 말했다.
  • 진아리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럼 고맙게 받을게요.”
  • “이따가 회의 있으니까 식사는 나중에 하지. 카드 줄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사 먹어.”
  • 구정현이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 진아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카드를 받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 “그럼 먼저 갈게요. 저녁은 집에 돌아와서 드실 거예요? 오씨 아줌마한테 대표님 좋아하는 반찬 만들어달라고 할게요.”
  • “저녁엔 고객사랑 미팅이 있어.”
  • 진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그럼 저 먼저 돌아갈게요.”
  • 말을 마친 진아리는 또각또각 당당한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 구정현은 소파에 앉아 복잡한 눈빛으로 멀어지는 진아리의 뒷모습을 문이 닫힐 때까지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사무실을 나선 진아리는 직원들의 깨 고소해하는 눈빛 속에서 당당히 회사를 나섰다.
  • 차에 탄 그녀는 줄곧 유지하던 가면을 벗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 그렇게 한 5분쯤 지났을까, 진아리는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 “구정현 씨, 가식적인 관심이라고 해도 난 당신이 날 조금은 사랑한다고 믿고 싶어요.”
  • 한참 지난 뒤, 진아리는 차를 운전해 주차장을 나섰다.
  • 그녀는 한 오피스텔 앞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 엘리베이터를 나선 진아리는 908호 앞에 멈춰서서 문을 두드렸다.
  • “효정아, 안에 있어?”
  •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머리가 산발이 된 채 캐릭터 잠옷을 입은 여자가 등장했다.
  • “진아리, 나 원고 마무리하느라 새벽 세 시에 잤단 말이야. 굳이 점심때 와야겠어? 졸려 죽겠네.”
  • 진아리와 같은 성씨를 가진 진효정이라는 여자는 진아리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 말없이 안으로 들어선 진아리는 잔뜩 어질러진 집안 상태를 보고 입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 “효정아,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여자 혼자 사는 집이 이게 뭐야? 발 디딜 자리가 없네!”
  • 진효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침실에 들어가더니 바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이 들었다.
  • 진아리는 고개를 흔들고는 어쩔 수 없이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집을 청소했다.
  • 청소가 끝나자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 진아리는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 “진효정, 이 나쁜 계집애. 무슨 여자가 이렇게 게을러?”
  • 말을 마친 진아리는 걸레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손을 씻고 침실로 들어갔다.
  • “효정아, 일어나. 배달이랑 맥주 시켰으니까 같이 먹자.”
  • 진아리가 말했다.
  • 힘겹게 눈을 뜬 진효정이 몽롱한 눈빛으로 진아리를 보며 대꾸했다.
  • “구정현 씨랑 또 무슨 일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