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길게 심호흡한 뒤, 씁쓸한 마음을 억지로 참으며 눈을 떴다. 그러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구정현에게 물었다.
“대표님, 내가 당신을 사랑할까 봐 그렇게 겁나요?”
구정현은 말없이 침대에서 내렸다. 남자의 완벽한 몸매가 눈앞에 드러났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옷을 입고는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는 진아리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진아리, 난 당신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 위험한 생각은 그냥 접어. 그러지 않으면 이 결혼생활을 당장 끝내 버릴 테니까.”
진아리는 침대에서 내려서 구정현에게 다가가서 그를 안았다.
“대표님,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아무리 계약 결혼이라고 해도 내가 당신 와이프인데 듣기 좋은 말 한마디 해줄 수는 있잖아요?”
울먹이며 말하는 진아리 때문에 셔츠 단추를 채우던 구정현의 손길이 잠시 멈칫했다.
‘우는 건가?’
그는 어쩐지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녀의 턱을 치켜올렸다. 그런데 웬걸, 진아리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구졍현은 그녀의 턱을 꽉 잡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않고 얌전히 있으면 사모님 생활을 좀 더 오래 하게 할 수도 있어.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진아리는 다가가서 그의 턱에 입을 맞추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주제를 알거든요. 아까는 장난이었어요.”
“알면 됐어.”
구정현이 말했다.
그는 진아리의 고분고분한 성격이 좋았다. 애초에 그녀와 결혼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양가희를 닮은 외모도 있었지만, 돈을 사랑하고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름 놓고 그녀에게 구씨 가문 작은 사모님의 자리를 주었고 4년 동안 그녀도 그를 실망시킨 적 없었다.
구정현은 그녀의 턱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얌전히 살아. 변호사한테 이혼 협의서 작성하라고 시켰으니까 다음 주에 가서 사인만 하면 돼. 위자료는 섭섭지 않게 줄게.”
진아리가 웃었다.
“그럼 미리 감사드려요.”
구정현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다.
긴 키스가 끝나자 진아리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오늘은 저랑 같이 씻어요.”
구정현은 심취한 표정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면서도 목소리는 차갑게 말했다.
“피곤해. 내일 일어나서 혼자 씻어. 오늘은 그냥 자자.”
진아리의 눈가에 실망감이 스쳤다. 구정현과 함께 산 지 4년이나 흘렀지만 그에게 그녀는 와이프가 아니라 도구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