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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미팅 있다면서요?

  • 감동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녀와 진효정은 친구를 넘어선 친자매 같은 사이였다. 두 사람 사이는 오래전부터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진아리는 진효정의 집에서 저녁 일곱 시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갔다.
  • 구정현이 당연히 미팅 때문에 집에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거실에 전등이 켜져 있었다. 구정현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우아하게 와인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녀가 집에 들어서자 그는 담담한 눈빛으로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 진아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대표님, 미팅 있다면서요?”
  • 말을 마친 그녀는 허리를 숙여 실내화로 갈아신었다.
  • “어디 갔다가 이제 와?”
  • 구정현이 물었다.
  • 진아리는 다가가서 구정현의 무릎에 앉더니 두 팔을 벌려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 “혹시 나 보고 싶어서 일찍 왔어요?”
  • 구정현은 잔을 내려놓은 뒤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 “오늘은 왜 이렇게 예쁜 짓만 하지? 혹시 돈이 부족해?”
  • 진아리가 생긋 웃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대표님 통 크시잖아요. 매달 주시는 용돈으로 매일 쇼핑만 해도 일 년은 살아요. 그러니 어떻게 돈이 부족하겠어요?”
  • 구정현은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 “얌전히 있으면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거야.”
  • 진아리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았다.
  • “술 마셨어요?”
  • 구정현은 더듬거리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조금 마셨어.”
  • “파티에 가셨으면 예쁜 여자도 많았을 텐데 왜 한 명 골라서 놀지 않고 집에 오셨을까요?”
  • 진아리는 주인의 품을 파고드는 고양이처럼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 “난 당신처럼 게으름 피우는 고양이가 더 좋아.”
  • 진아리는 점점 더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만약 대표님이 저를 파티에 데려가신다면 저는 아마 가장 주목을 받는 페르시안고양이가 될 거예요.”
  • 구정현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 “당신은 그냥 집에 얌전히 있으면 돼.”
  • 진아리의 눈빛이 순간 실망감이 스쳤다. 이 남자는 줄곧 그녀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았고 한 번도 파티나 술자리에 그녀를 파트너로 데려가지 않았다.
  • 그녀는 구정현의 품을 벗어나며 약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대표님, 종일 쇼핑했더니 좀 피곤하네요. 저는 먼저 씻고 잘게요.”
  • 말을 마친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 홀로 남겨진 구정현은 복잡한 눈빛으로 방에 들어가서 문을 쾅 닫는 진아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 잠시 넋을 놓고 있던 구정현은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침실로 갔다.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 구정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 “문 열어!”
  • 한참 지났지만 진아리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 구정현은 문을 두드리며 짜증 난 목소리로 재촉했다.
  • “진아리, 짜증 그만 부리고 문 열어. ”
  • 하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