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가 일부러 애매한 말투로 제안했다. 만약 다른 여자였다면 오해했겠지만 상대는 김연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업무상 수요로 만났다는 것을 진아리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아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연이는 내 친구예요. 그리고 김씨 가문 구씨 가문은 최근 협력관계에 있고요. 그러니 연이는 당연히 업무상 수요로 방문했겠죠. 대표님 비서로서 이런 뜬금없는 소문을 막지는 못할망정 같이 퍼뜨리면 어떡해요? 혹시 계속 일하기 싫어요?”
당황한 리사가 다급히 말했다.
“사모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됐으니까 가서 일 봐요. 그리고 이 소문은 다시 듣고 싶지 않아요. 알겠죠?”
리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진아리는 문 앞에 다가가서 노크했다.
“자기야, 저 왔어요.”
잠시 후, 안에서 구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안으로 들어간 진아리는 구정현과 김연이 진지하게 업무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소파로 가서 두 사람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30분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열렬한 논쟁을 끝마쳤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연이 진아리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리야, 왔어?”
김연은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이었다. 독립적이고 자존심 강하며 능력 있고 완벽한 몸매, 아름다운 외모와 훌륭한 집안 배경까지 갖춘 완벽한 여자였다. 그러니 회사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의논할 만도 했다.
진아리는 다가가서 다정하게 그녀를 포옹하며 말했다.
“연아, 한 달 만이네. 나 안 보고 싶었어?”
김연도 진아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왜 이제야 돌아온 거야? 회사에 일이 좀 있어서 구 대표님이랑 얘기해. 우린 나중에 밥 같이 먹자.”
진아리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식사만 하고 가지….”
진아리는 책상 위에 널려 있던 서류들을 챙기며 빙그레 웃었다.
“아니야. 요즘 좀 바빠. 우리 주말에 나가서 쇼핑하자. 간만에 회포도 풀 겸. 그럼 먼저 간다. 데이트 잘해.”
김연이 사무실을 나가자 구정현이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아.”
진아리는 다가가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 뒤, 그의 옆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자기야,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정현은 그런 그녀를 힐끗 보고는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것은 부동산 양도 증명이었다.
진아리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구정현이 양가희 앞에서 자신에게 이혼 협의서를 내밀까 봐 꽤 걱정했던 그녀였다. 비록 이 유명무실한 혼인 관계가 언젠가는 끝날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양가희 앞에서 비참히 버려지는 건 싫었다.
진아리는 서류를 집어 들고 꼼꼼히 살폈다. 구정현은 교외에 있는 별장 두 채와 중심가에 있는 아파트를 그녀의 명의로 양도했다. 별장 두 채만 해도 가치가 200억이 넘었고 중심가의 아파트도 최소 6억 이상은 되는 어마어마한 선물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이 양도 증명만 받아도 그녀는 이미 억만 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