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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심통을 부리다

  • 구정현은 주먹에 힘을 주어 문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 “진아리, 문 열라고!”
  • 그렇게 한참을 두드렸을 때, 안에서 문이 열렸다.
  • 금방 목욕을 마친 진아리는 물기 가득한 머리에 욕실 가운을 입고 그를 마주 보았다. 양 볼은 목욕 때문에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하얀 목덜미에도 물방울이 그대로 있었다.
  • 너무 유혹적인 모습에 구정현의 눈빛이 어둡게 변하더니 꿀꺽 침을 삼켰다.
  • 그의 변화를 눈치챈 진아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 “대표님, 저 피곤해요.”
  • 구정현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보다가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는 그녀를 소파에 밀치고 손으로 거칠게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무엇 때문에 심통이 난 거야?”
  • 진아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살짝 밀치며 말했다.
  • “그냥 좀 피곤해서요.”
  • 구정현은 그런 진아리를 조용히 응시하다가 말했다.
  • “그 말 진심이길 바랄게! 애초에 고분고분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서 당신이랑 결혼했으니까. 당신도 다른 여자들처럼 욕심을 부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야.”
  • 이것은 차가운 경고였다.
  • 진아리는 가슴에서 피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완벽한 미소를 지었다.
  • “대표님, 자꾸 우리가 계약 결혼이라는 것을 일깨워줄 필요는 없어요. 저도 바보는 아니에요. 저는 대표님 돈을 사랑하고 대표님은 제 몸과 쓸데없는 여자들을 쳐내기 위해 제가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 구정현은 그녀의 얼굴에서 거짓말의 흔적이라도 찾아내려는 듯이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 “알면 됐어.”
  • 그가 말했다.
  • 진아리는 갑자기 온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구정현을 위한 연기도 하기 귀찮아졌다. 그녀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 “대표님, 저 오늘 진짜 피곤해서 좀 자야겠어요. 그래도 되죠?”
  • 한참 그녀를 내려다보던 구정현은 그녀를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는 그 위에 올라탔다.
  • 30분 뒤, 뜨거웠던 정사가 끝이 났다.
  • 진아리는 구정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특유의 남성적인 향기를 맡으며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몸도 지쳤지만 마음이 더 지쳤다.
  • 구정현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고 턱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 “도대체 왜 그래?”
  • 진아리는 눈을 감은 채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 “자기야, 만약 우리한테 아이가 생겼다면 낳기를 바라요?”
  • 깊은 밤, 뼛속 깊이 느껴지는 고독을 참지 못한 진아리가 속에 오래 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구정현이 고용주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임신했어?”
  • 구정현이 속을 알 수 없는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 “만약 진짜 임신했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 진아리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담담히 물었다. 아마 그녀는 구정현도 아이를 원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