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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늘 가던 곳

  • 구미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엄마, 저 밖에 좀 나가 있을게요. 누구 때문에 집안 공기가 삭막해서 견딜 수가 없네요.”
  • 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밖으로 향했다.
  • 구 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아리야, 너무 신경 쓰지 마. 미정이 성격 너도 알잖아. 다 우리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래.”
  • 진아리가 웃으며 말했다.
  • “아가씨도 이제 이십 대 초반이잖아요. 한창 노는 것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할 나이죠.”
  • 구 부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다독였다.
  • “우리 며느리는 어쩜 이렇게 착할까? 아리야, 미정이가 한 말은 속에 두지 말고 그냥 흘려버려. 그리고 양가희 그 여자는 그냥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돼.”
  • 진아리는 양가희가 누구냐고 굳이 묻지 않았고 물을 이유도 없었다.
  • “어머님, 가족끼리 그런 얘기 저 신경도 안 써요.”
  • 진아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비록 곧 한 가족이 아니게 될 테지만.
  • “내가 며느리 하나는 정말 잘 뒀어.”
  • 구 부인은 진아리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 진아리는 구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 식사까지 같이했다. 식사를 마친 구 부인은 피곤하다며 방으로 돌아갔고 진아리는 산책 겸 정원으로 나갔다. 구미정도 그녀를 따라 나왔다.
  • “진아리 씨, 엄마한테 이쁨 좀 받는다고 평생 구씨 가문 며느리로 살 것 같죠? 하지만 어떡해요? 오빠 마음에는 양가희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힘 빼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해요.”
  • 구미정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 진아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구미정을 바라보았다.
  • “아가씨, 난 양가희가 누군지 몰라요. 하지만 지금 오빠의 마누라는 나라는 거,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이혼하기 전에는 내가 아가씨 올케예요. 그러니까 예의 지켜줘요.”
  • 구미정은 비웃음 가득한 시선으로 진아리를 쏘아보았다.
  • “올케? 곧 아니게 될 것 같은데요? 우리 엄마가 바보같이 착해서 당신 같이 아무것도 없는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였지만 난 달라요.”
  • 잠시 뜸을 들이던 구미정이 말을 이었다.
  • “신데렐라처럼 재벌가에 시집와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은 이제 그만 꾸고 오빠랑 이혼해요. 그러면 누가 알아요? 거액의 위자료라도 받을 수 있을지? 계속 버티고 있어봤자 올케만 손해예요.”
  • 진아리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 말 듣기 전까진 오빠랑 이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네요.”
  • 말을 마친 진아리는 집 안으로 향했다.
  • “진아리 당신….”
  • 열 받은 구미정이 이를 갈며 말했다.
  • “후회나 하지 마세요.”
  • “걱정하지 마요. 난 후회할 일은 절대 안 하니까.”
  • 말을 마친 진아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으로 돌아온 그녀는 바로 구정현의 방으로 직행했다. 방 안에 들어온 그녀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뭔가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 그녀는 침대에 놓인 인형을 끌어안고 힘껏 냄새를 맡았다. 그제야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 휴대폰을 꺼낸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생글생글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 “자기야, 보고 싶어요.”
  • 전화를 받은 구정현은 멈칫하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 “장난하지 마! 지금 회의 중이야. 밤 아홉 시에 늘 만나던 곳에서 만나.”
  • 말을 마친 그는 차갑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 진아리는 멍한 표정으로 이미 끊어진 전화를 내려다보았다.
  • 같이 산 지 4년, 하지만 진짜 마음을 나눈 적은 극히 드물었다. 아니,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있었다.
  • 구정현에게 그녀는 돈만 밝히는 여자일 뿐이었다.
  • 진아리는 본가에서 한참 노닥거리다가 저녁때가 되어 구 부인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야 차를 운전해서 시내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데이트에 입을 옷을 골랐다. 구정현이 말한 늘 만나던 곳이란 그들이 자주 갔던 호텔이었다.
  • 진아리는 구정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에게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 저녁 아홉 시, 진아리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호텔에 도착했다. 스위트룸 문을 열자마자 남자가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잠시 후, 그녀는 남자의 품 안에 완전히 갇힌 신세가 되었다. 익숙한 남성의 향기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 “대표님, 오늘 본가에서 어머님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안 물어봐요?”
  • 구정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 “우리 엄마는 당신 지극히 아끼시잖아. 조금 전에도 전화 와서 당신한테 잘하라고 하시던데?”
  • “그래요? 어머님까지 한 말씀 하셨는데 대표님은 왜 항상 저 괴롭혀요?”
  • 진아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